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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함콩 Sep 29. 2020

우리의 잃어버린 마음

6살 첫째와 4살 둘째의 수술 예약을 잡다

"엄마, 다 쌌어요!!"

밥 먹다 말고 배가 아프다고 화장실에 간 둘째 녀석이 나를 부르는 소리에 밥 한술 입에 넣고 달려간다. 예전에는 먹던 흐름이 끊기면 밥맛도 떨어졌는데 요샌 그런 것도 없다. 화장실에 잠깐 다녀와도, 아이들의 뒷수습을 하다 먹어도 여전히 밥은 꿀 맛이다. 솔직히 비위가 강한 편은 아니다. 그런데 엄마가 되니 내 자식에 관련된 건 비위도 강해지나 보다. 하루에도 몇 번이나 반복되는 일에 가끔 강하게 현타가 올 때가 있다. 어제는 좀 심했다. 아직 막내는 두 돌이 채 안돼서 혼자서 하기엔 미숙한 것들이 많다. 먹겠다고 따라 준 우유를 쏟고, 매실을 엎질러 바닥이 끈적거렸다. 식탁 바닥만 세네 번은 더 닦은 것 같다. 휴- 한숨이 절로 나온다. 아침부터 시작된 밥 주고 치우고 간식 주고 치우고의 사이클을 반복하다 보면 현타가 종종 온다. 식사 자리를 치우고 간식까지 먹여 뒤돌아서면 다음 밥 준비 시간이다. '내가 지금 뭐 하고 있는 건가' 쳇바퀴 같이 반복되는 일상에 무기력하게 잠길 때쯤 작년이 떠올랐다.




2019년은 정말 잊지 못할 해다. 한꺼번에 모든 나쁜 일이 나에게 몰려온 것만 같던 그 시절. 싱그러운 3월, 2달 간의 긴 겨울방학을 마치고 친구들을 만날 생각에 설레 하던 6살 된 첫째는 입학식을 마치고 그 날 저녁부터 열이 나기 시작했다. 힘 없이 축 쳐져 있는 아이를 데리고 급하게 동네 소아과에 갔다. 결과는 a형 독감. 그날 밤 육아 인생 최초 40도가 넘어가는 체온계의 숫자를 보았다. 무서웠다. 아래로 4살, 2살의 동생들이 있어서 더욱. 다행히도 아이는 4일째 되는 날 열은 거의 잡혔다. 그런데 문제는 6개월도 안 된 막내 동생과 신랑이 독감에 옮았다는 것이다. 겨울 방학 내내 집콕 육아해도 나름 괜찮게 잘 보냈는데, 아픈 사람이 있어서 집콕을 해야 하는 건 완전히 다른 문제다. 다행히 막내는 하루 이틀 약간의 열만 올랐다가 좋아졌다. 독감 검사하지 않았으면 그냥 감기로 지나갔을 법한 그런 정도로 말이다.




독감 완치 판정을 받은 후 유치원에 등원한 첫째는 친구들과 태권도 학원에 다니게 되었다. 아이가 다니는 병설 유치원은 1시 반 하원이 원칙이다. 등원시키고 집에 와서 집안일 좀 하면 급하게 또 하원 하러 가야 할 시간이 된다. 몇몇 엄마들과 함께 하원 후 태권도 학원에 보내기로 했다. 워낙 활동성이 많은 아이라서 그렇게라도 풀었으면 했다. 사실 내가 편하자고 보낸 마음이 크다. 하지만 아이는 태권도를 가기 싫어했다. 그 이유로 너무 힘들다고 했는데 당시에는 그저 핑계인 줄만 알았다. 적응 기간에는 그런 거라고 하다 보면 재밌고 튼튼해진다고 아이를 달래어 보내곤 했다. '유치원 - 태권도 - 놀이터 2시간' 코스를 밟은 1주일 차. 아이를 목욕시키다가 목 옆이 아프다고 해서 보니 작은 멍울이 생겨 있었다. 너무 놀라서 대충 씻겨놓고 아이와 소아과로 달려갔다. 동네 소아과에서는 일단 약을 처방해 주었고, 더 커진다면 병원으로 다시 오라고 했다. 아이들이 면역이 떨어지면 올 수 있는 증상이란다.







겉으로는 괜찮아 보였는데, 독감 완치 후에도 아이는 힘들었나 보다. 힘들어서 가기 싫다는 아이를 태권도까지 꾸역꾸역 보낸 내가 한없이 원망스러웠다. 그렇게 일주일 만에 태권도는 그만두었다. 병원에서 처방받은 약을 먹였지만 혹이 하나 더 생기고 기존의 혹도 더 커졌다. 결국 소견서를 받아서 종합병원으로 갔다. 종합병원에서도 비슷한 말과 약을 처방해주었다. 일단 약을 먹어보고 커지면 다시 오라는 같은 말을 남기고. 그렇게 애타는 마음으로 주말 동안 지켜보았지만 멍울은 더 커져만 갔다. 매일매일 마음이 타 들어가는 것 같았다. 처음 생겼을 때는 눈으로 봤을 때 티는 안 났는데, 이젠 가만히 두어도 볼록 튀어나온 것이 보였다. 결국 대학병원으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우연인지 뭔지, 3월 말 아이는 자신의 6번째 생일날 입원해서 피검사, 초음파, 소변검사 등 여러 가지 검사를 받았다.




아직 모유수유 중인 어린 막내 때문에 첫째 아이와 병원에 함께 있어줄 수가 없었다. 양가 어머님들이 번갈아 가시면서 아이를 돌봐주셨다. 아이에게 엄마가 필요할 때 정작 옆에 있어줄 수가 없으니 어찌나 미안하고 무기력하던지. 다행히도 각종 검사 소견상 이상은 없었지만 의문을 모를 혹이기에 수술해서 조직검사를 받아야 했다. 5월로 수술 예약을 잡고 퇴원하는 날 마음이 착잡하다. 6살에 전신마취 수술이라니.. 이 모든 게 내 탓 같이 느껴졌다. 그때 태권도 학원에 보내는 게 아니었는데.. 얼마나 편하자고..




수술 일주일 전부터는 감기에 걸리면 안 된다고 했다. 하지만 약한 우리 첫째는 계속 감기에 걸려서 수술 일정은 3번 더 미뤄져 8월 중으로 잡혔다. 그런데 정말 이럴 때 설상가상이라는 말을 쓰는 걸까. 그해 6월 초, 둘째 아이의 오른쪽 사타구니가 튀어나와서 이상한 마음에 소아과에 가보니 탈장이란다. 대학 병원에 가서 수술해야 한다고. 허헛. 웃음밖에 나오지 않는 상황이다. 첫째, 둘째 모두 같은 대학병원에서 같은 해에 수술이라니. 나의 힘으로 어찌할 수조차 없는 상황들이었다. 왜 이런 시련이 한꺼번에 나에게 찾아오는 건지 원망스러웠다. 감기도 잘 안 걸리는 둘째는 일사천리로 수술이 진행됐다. 푸른 녹음의 계절 7월의 어느 날. 3돌을 코 앞에 남겨놓고 받은 첫 수술. 수술이란 게 뭔지도 모르는 나이, 당당하게 가족들에게 자기 수술하고 온다고 말하는 아이를 보니 콧잔등이 시큰해진다. 그렇게 둘째 아이는 무사히 수술을 잘 받았다. 첫째 아이는 기적이라고 밖에 설명할 수가 없다. 수술 전 멍울이 사라져서 수술 예약은 취소되었다.





몇 달 동안 아이들의 수술로 인해 마음 앓이를 하며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새삼 피부로 느꼈다. 오늘 아침에도 눈을 뜬 일, 밥을 먹는 일, 뛰어다니며 활짝 웃을 수 있는 일, 그러한 모습들을 지켜볼 수 있는 일 모두가 기적임을 안다. 우리의 하루와 건강은 거저인 것이 아님을 안다. 언제든 한순간에 잃을 수도 있기에 그렇지 않을 때 감사하며 소중히 대해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자질구레해 보이는 이 일상이 작년의 나에겐 간절한 순간, 순간들이었음을 벌써 잊었냐고 나에게 되묻는다.




이보게, 잊지는 말게나

산중의 진달래꽃은

해마다 새로 핀다네

거기 가보게나

삶에 지친 다리를 이끌고

그 꽃을 보러 깊은 산중 거기 가보게나

놀랄걸세

첫사랑 그 여자 옷 빛깔 같은

그 꽃 빛에 놀랄걸세

그렇다네

인생은, 사랑은 시든 게 아니라

다만 우린 놀라움을 잊었네

우린 사랑을 잃었을 뿐이네

- 김용택의 <첫사랑> -




살아있음보다 중요한 건 살아가는 방식이다. 매일 일어나는 기적에 놀라워하는 마음을 되찾고, 잃어버린 사랑에 눈을 뜨는 것. 육아의 일상에서 우리의 잃어버린 마음을 건져올릴 수 있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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