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수결의 함정

일상에서 흔한 생사람 잡기

by 함물AVI

탕비실의 미스터리

우리 회사 건물은 지은 지 얼마 안 된 새 건물이다. 사무실은 물론이고 화장실까지, 복도는 반짝반짝 광이 날 정도로 근무 환경이 아주 쾌적하다.


아침에 커피 한 잔 하려고 탕비실에 들어갔는데, 어머, 누가 이랬지?

누군가 카누 하나를 뜯어먹고 빈 봉지를 탁자 위에 그대로 두고 간 것이 아닌가. 바로 아래에 휴지통이 있는데도 말이다.

처음에는 '아, 깜빡했나 보다' 생각했다. 누구나 실수할 수 있는 일이니까. 나는 그 봉지를 주워서 쓰레기통에 버렸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 정말 이게 무슨 일인가?

이번에는 카누 빈 봉지를 배배 꼬아서 커피 상자 안에 넣어놓은 것이다. 그것도 2개나.

휴지통은 바로 아래에 있었고, 상자 안에는 아직 먹지 않은 커피들이 그대로 있었는데 말이다.


지극히 상식적인 추리의 과정

나는 빈 봉지 두 개를 꺼내 쓰레기통에 버리면서 생각에 잠겼다.

‘이게 우연일까? 아니면…’

두 가지 가능성이 떠올랐다.

우리 사무실 직원이 아닌 누군가의 소행이거나, 우리 회사에 불만이 있는 우리 직원의 장난이거나.


그때, 한 사람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좋게 말하면 털털하고, 솔직히 말하면 좀 지저분한 스타일의 그 직원.

박 팀장님이 "출장 갈 때 속옷도 안 챙겨 와서 다음날 뒤집어 입는다"라고 농담처럼 말했을 정도로, 그는 자기 주변을 잘 챙기지 않는 사람이었다.

게다가 다이어트 중이라며 점심도 같이 먹지 않고, 동료들과 잘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 왠지 모르게 회사에 불만이 있어 보이기도 했다.


티타임에서 범인을 찾았다

점심시간, 과장님과 동료들 서너 명이 옆 건물 카페에 모였다. 나는 아침의 일이 생각나서 이야기를 꺼냈다.

"과장님, 우리 사무실에 빌런이 있는 것 같아요."

모두의 시선이 내게 집중됐다.


나는 탕비실의 미스터리 한 사건을 자세히 설명했고, 모두들 말은 안 했지만, 내가 생각했던 그 직원을 떠올리는 눈치였다.

그렇게 우리가 지극히 상식적인 추리과정을 통해 범인을 확신해 가는 그때였다.


이야기를 듣던 과장님이 과학적으로 범인을 찾아내겠다는 듯이 예리한 눈빛으로 나에게 물었다.

"빈 봉지가 어떤 상태였다고?"

나는 손으로 봉투를 비트는 시늉을 하며 설명했다.

"이렇게 비틀어 놓았어요. 휴지통이 바로 아래 있는데 굳이 상자 안에 넣은 걸 보면 분명히 일부러..."


그러자 과장님은 범인을 찾았다는 듯이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범인은 늘 단서를 꼬아놓는다.

"그거... 내가 그런 것 같아."


모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나는 봉지를 비틀어서 버리는 습관이 있거든. 그리고 한 번에 카누 2개를 타서 마셔."


범인은 찾았지만, 범행 동기는 알아내지 못했다.

무거워진 분위기 속에서 차마 왜 그러셨냐고 묻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쨌든 그 이후로 탕비실은 다시 깨끗해졌다.


확실하다고 믿었던 것들의 오류

이 짧은 에피소드를 통해 나는 중요한 교훈을 얻었다.

우리가 확실하다고 믿는 것들이 얼마나 쉽게 '생사람을 잡는' 일이 될 수 있는지.

과장님이 자백하지 않았다면, 모두가 그 직원이 범인이라고 믿게 되었을 것이다.


명확한 증거 없이 혼자 추측해서는 안 되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한다고 해서 섣불리 확신해서도 안된다.

다수결로 범인을 잡을 수는 없으니까.



혹시 당신도 마음속에 엉뚱한 '빌런'을 만들고 있지는 않은가?

모든 추측을 멈추고, 솔직한 대화를 시작해 보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