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3시 반, 악몽을 꾸고 잠이 깼다.
꿈속에서 아들이 물속에 잠겨 있었다.
그는 발목까지 차오른 물속에서 어떤 작업을 하고 있었고, 나는 그를 도와준답시고 분주히 오갔다.
하지만 불필요한 일에 시간을 소모하고 돌아와 보니, 아들은 이미 물에 잠겨 쓰러져 있었다.
깨어나 보니, 그 꿈이 너무나 현실 같았다.
지금의 나와 닮아 있었다.
힘들어하는 아들을 돕고 싶어 하지만, 정작 도움이 되지 못한 채 그저 허둥대고 있는 나 자신.
그 무력감이 꿈속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 것이다.
나는 새벽에야 겨우 잠드는 아들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지금 자니?”
아들은 곧바로 답장을 보냈다.
“왜 이 시간에 깨어 있어?”
오히려 내 안부를 걱정해 주는 아이.
그렇게 대화가 시작되었다.
아들은 여전히 여러 가지 일로 힘들어하고 있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메시지를 보냈다.
“괜찮아. 잠시 멈춰도 돼. 시간이 지나면 지금의 상황이 아무것도 아닐 수도 있어.”
나의 메시지를 마지막으로 대화는 끝났다.
내 말이 위로가 되었을까, 아니면 또 하나의 쓸데없는 말이었을까. 잘 모르겠다.
요즘 들어 아들들에게 들어가는 생활비가 부담스럽게 느껴질 때가 있다.
하지만 곧 생각을 고쳐먹는다.
지금은 그들의 꿈을 위한 준비 기간이라고.
그 시간을 위한 기회비용이라고.
요즘 세상은 너무나 험하다.
취업난 속에 청년들이 생계를 위해 해외로 나갔다가 불행한 일을 당했다는 기사가 많이 나온다.
그런 소식을 들을 때마다 마음이 무너진다. 너무나 아까운 청년들, 안타까운 우리의 아들들.
아들들이 내 곁에서 자신의 길을 준비할 수 있는 지금 이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만을 생각하기로 했다.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말,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렵지 않다.
나는 자유다.”
나는 그 문장을 주문처럼 되뇌지만, 사실은 두렵다.
두렵고 불안하다는 건, 내게 소중한 것이 있다는 것, 여전히 바라는 것이 있다는 뜻이다.
사람은 나이가 들면 성숙해지고, 두려움에도 단단해질 줄 알았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어릴 때와는 다른 차원의 두려움이 나를 덮쳐온다.
예전에는 전혀 포기할 수 없었던 소유물이나 관계, 지위에 대해서,
그것을 잃었을 때, 그 이상의 고난을 겪은 후에는 그것들을 쉽게 놓아주게 된다.
많은 것을 잃은 후에야 알게 된다.
무엇이 가장 소중한 것인지.
내가 가진 것들을 마음속으로 떠올리며 하나씩 지워본다.
절대 잃어서는 안 되는 것,
끝까지 지켜야 할 존재,
나에게는 그것이 나의 아들들이다.
그러니, 지금의 경제적 어려움쯤은 소소하다.
아들들이 하고 싶은 일을 하고,
갖고 싶은 것을 갖고,
이 세상을 마음껏 누릴 수 있도록
나는 그저 지켜보고 기다릴 뿐이다.
조바심 내지 않고,
그 시간을 함께 살아내는 긍정의 시선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