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미온느의 시간

by 함물AVI

타임터너를 가진 소녀


모두에게 하루 24시간이 주어진다. 하지만 헤르미온느 그레인저에게 그 시간은 늘 부족했다. 마법을 사랑하고 배움을 즐겼던 그녀는 다른 학생들이 한두 과목을 들을 때 세 개, 네 개의 수업을 동시에 듣고 싶어 했다.


그래서 그녀는 마법부로부터 특별한 허가를 얻었다. '타임터너(Time-Turner)', 작은 모래시계 모양의 목걸이. 한 번 돌릴 때마다 한 시간 전으로 돌아갈 수 있는 마법 도구였다.


타임터너에는 단 하나의 금기가 있었다. 과거의 자신과 마주치면 안 된다는 것. 시간의 균열이 생기고, 모든 것이 무너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녀는 늘 조심스럽게 걸었다. 누구보다 치열하게 배우고, 누구보다 조용히 시간을 되돌렸다.

그녀가 타임터너를 사용한 이유는 단순했다.

"더 많이 배우고 싶어서."

그 단순한 이유가 누군가에겐 욕심처럼 보였을지 모르지만, 그녀에게는 그만큼의 열정과 진심이 있었다.



현실판 헤르미온느, 조박사


내 주변에도 헤르미온느가 있다. 동료들이 '조박사'라고 부르는 그녀는, 그 별명에서 알 수 있듯이 모르는 것이 없고 못하는 것이 없다.


초등학생 아들 둘을 둔 조박사는 유능한 직장인이자 좋은 엄마다. 좋은 아내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화목한 가정을 꾸려가는 걸 보면 그것도 맞는 것 같다.


업무 중 모르는 것이 있으면 나를 포함한 동료들은 조박사에게 묻는다. 그러면 그녀는 뚝딱 답안을 내놓는다. 자기 의견과 함께 그 의견을 뒷받침할 법적, 논리적 근거까지. 그녀의 주장은 믿을 만하고 도움이 된다. 지식과 성실함으로 쌓은 직장에서의 유능함은 나뿐 아니라 다른 동료들에게도 인정받는다.


그런데 그녀의 능력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그녀는 주식 투자도 잘한다. 물론 손실을 본 부분도 있지만, 많은 기업 정보와 경제 흐름, 시사에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

그녀는 사람들과의 만남, 술자리도 좋아한다. 드라마를 많이 보고 주인공에게 깊이 빠지기도 한다. 노래도 즐겨 들으며 요즘 아이돌과 최신가요까지 알고 있다. 전자책 리더기를 2개나 가지고 있을 만큼 책도 많이 읽는다.


그녀는 캠핑을 좋아해서 인천에 살면서도 여름에 고성 삼포 해변으로 몇 번이나 캠핑을 간다.

스스로를 "물욕이 있는 사람"이라고 말하는 그녀의 집에는 온갖 택배 물건들이 가득하고, 차에도 캠핑용품을 잔뜩 싣고 다닌다.


그녀는 이야기도 좋아한다. 일을 열심히 하면서도 틈틈이 수다에 빠지며 무궁무진하게 이야기를 쏟아낸다. 그녀가 만물박사이다 보니 전국적인 네트워크도 형성되어 있다. 전국에 있는 우리 조직의 사건과 사고, 어떤 직원의 평판 같은 정보들이 그녀의 네트워크를 통해 다 들어온다.


그녀는 늘 느긋하다. 서두르지 않는다. 앞에서 말한 모든 일을 하면서도 바쁘다고 하는 걸 들어보지 못했다.

혹시, 그녀가 헤르미온느처럼 시간 마법을 쓰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시간의 마법, 그 비밀


나는 지금 그녀와 같은 사무실에서 근무하지 않지만, 도움이 필요할 때 종종 연락한다. 그런데 최근 그녀에게 곤란한 일이 생겼다. 그녀가 잘못한 건 없는데, 어느 동료가 말썽을 일으켜 업무적으로 문제가 생겼고, 그 책임을 그녀와 다른 동료들에게 돌리며 공식적으로 문제를 삼고 있다.


내가 보기에도 우려할 만한 상황으로, 그녀는 지금 걱정이 많다. 그럼에도 그녀는 여전히 새로운 캠핑용품을 구매하고, 같은 취미를 가진 동료에게 톡을 보내 그 제품을 추천한다.

여전히 캠핑을 가고, 드라마를 보고, 글을 읽고, 아이들을 돌본다. 각각의 일들이 서로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 같다.

보통 사람들은 곤란한 상황에 빠지면 그 생각이 생활을 집어삼켜 우울감에 빠지고 다른 일들을 놓게 되는데, 그녀는 각각의 감정들, 각각의 사건들이 서로 영향을 주지 않는 것처럼 다 같이 존재한다.



시간은 우리 안에 있다


우리는 종종 시간이 부족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어쩌면 시간은 부족한 것이 아니라 '마음'의 문제인지도 모른다.


헤르미온느는 나중에 타임터너를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다. 시간을 되돌릴 수 있어도, 결국 진짜 중요한 건 그 시간을 어떻게 쓰는가였기 때문이다. 타임터너 없이도 그녀는 여전히 누구보다 빠르게 배우고 성장했다.


조박사도 마찬가지다. 그녀에게 타임터너는 없다. 하루 24시간은 똑같다. 다만 그녀는 걱정이 다른 시간을 잠식하도록 두지 않는다. 각각의 순간에 집중하고, 각각의 삶을 산다.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무엇을 하고 싶은가.
헤르미온느처럼 그 시간을 '배움'에 쓰고 싶다는 사람이 있다면, 조박사처럼 걱정 속에서도 '삶'을 놓치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그의 하루는 이미 마법 같은 하루일지도 모른다.


결국 시간은 우리 안에 있다. 문제는 시간의 양이 아니라, 시간을 대하는 우리의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