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주용현 Jun 15. 2018

믿음과 기다림

창 16:1-16

   본래 불임이었던 아브람의 아내 사래는 하나님의 후손에 대한 약속을 받았으나 그 의미를 올바로 이해하지 못했다. 아브라함의 허리에서 나올 줄은 알았지만 자신에게서 후사가 출생하리라고는 상상도 못 하였다. 원래가 불임이었기 때문이다. 불임의 원인이 무엇이었는지 알 수 없지만 결혼 초기부터 줄곧 불임이었고, 임산 가능 연령도 넘었기 때문에 그 가능성을 생각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에 거주한 지 10년이 지나도록 후사가 없으므로 사라는 조급한 마음이 생겼다. 사라는 남편 아브라함에게서 후사가 나올 수 있는 여러 가능성들을 생각하였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을 묻지 않은 처사였고, 그것은 곧 불신과 왜곡된 신앙의 형태로 발전하였다. 믿음을 가지긴 했으나 그 생각은 하나님의 뜻과는 무관한 행위로 발전하였다. 여종 하갈을 후사를 이을 첩으로 남편에게 준 것이다. 


   사라의 바람대로 하갈은 임신을 하였다. 그러자 종이었던 하갈이 일거에 주인의 후사를 생산할 자로 신분이 상승한 것으로 여긴다. 하갈의 행위가 어떠했는지 어떤 모습으로 사라의 분을 촉발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하갈의 그런 행위에 대하여 사라가 분노하였다. 사라는 자기가 모욕을 받게 된 것은 남편 아브라함의 책임으로 돌리며 아브라함에게 바가지를 긁는다. 얼마나 시달림을 받았으면 아브라함은 사라에게 하갈을 임의대로 처리하도록 허락하였겠는가! 짐작컨대 사라는 미모도 출중할 뿐만 아니라 남편의 총애도 받았고 그에 따른 시기심도 많은 여인이었을 것이다. 인간적인 판단과 행동들이 얼마나 하나님의 뜻과 다르게 전개될 수 있는지를 볼 수 있다.    


   하나님은 악을 선으로 바꾸시고 택한 백성 안에서 그 경륜을 이루신다. 사람의 실수와 그릇된 걸음에도 불구하고 당신의 선하신 뜻을 이루신다. 하갈을 통해 나온 후사는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약속의 후사가 아니었다. 하갈의 욕망과 사라의 질투에 의해 하갈은 아브라함의 장막에서 쫓겨나게 되었다. 하나님의 뜻에 거스른 인간의 그릇된 행위의 삽입을 철저히 차단하시는 하나님의 섭리가 진행된다.     


   아브라함의 장막에서 쫓겨난 하갈이지만 하나님의 은총이 함께 한다. 광야에서 고통하며 울부짖는 하갈을 찾아오신 하나님께서 그의 앞길을 제시해 주시고 순종하라 명하신다. 공식 아브라함의 후사는 아니지만 그 또한 하나님의 손아래 번성할 인류이다. 하갈의 후사인 이스마엘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은 복이라 부르기에는 어색하며 저주에 가깝다. 그가 사람 중에 들나귀 같이 되어 많은 사람에게 미움을 받아 싸움을 하며 살게 될 것이다. 이것은 세계의 역사가 증명해주는 사실이다. 이스라엘과 이스마엘의 후사는 지금도 서로 대치해서 싸우며 살고 있지 않은가!    


   아브라함의 장막에 하나님의 구원 약속이 진행되고 있다. 단순한 한 사람의 소소한 가정사에 대한 기록이 아니다. 세상을 향해 가지신 하나님의 경륜을 따라 역사는 전개되고 소소한 사건들을 통해 거대한 역사가 진행된다. 사람의 그릇된 판단과 행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뜻은 변함없이 진행된다. 하나님의 약속은 분명하다. 약속을 받은 자는 그 약속에 대하여 믿음으로 응답해야 한다. 믿음은 참고 견디며 기다림을 포함한다. 인간의 조급함은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그릇된 판단을 하게 만든다. 하나님의 분명한 응답이 없이 행하는 일에는 실수와 왜곡이 뒤따른다.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의 뜻을 묻고 순종하려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연약한 인간이기에 실수할 수 있고 잘못할 수 있다. 구속사는 사람의 힘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큰일이다. 사람의 실수와 잘못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자기의 약속을 사람들 속에서 이루신다. 악을 선으로 바꾸시는 역사를 통하여. 이것이 복음이고 여전히 오늘 우리들의 소망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아브라함의 전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