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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용현 May 03. 2017

 강남몽江南夢

황석영 장편소설. 2010년. 창비

   황석영 작가는 이 책을 우리네 인형극의 ‘꼭두각시놀음’을 떠올리며 썼다고 했다. 인형극의 주인공들은 나름대로의 한 역할이 있다.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각기 그 시대를 대변하는 것이다.  

  

  삼풍백화점 붕괴사건으로 소설의 서두는 시작되는데, 일제 치하의 만주에서 일제 압잡이 정보원 노릇을 하며 살다 해방 후 미군정하에서 치세 하며 권력에 기대어 적당히 이득을 취하여 부를 거머쥔 그 백화점의 회장인 김진, 술집작부에서 김진의 첩실이 되어 팔자를 고친 박선녀 등의 인물들을 통해 적절히 대한민국 근대사의 모습들이 그려진다.

   

  해방 후 미국과 소련 등 세계열강들이 어떻게 한반도를 유린했는지, 이승만이 미군정을 등에 업고 어떻게 정권을 잡았는지, 제주 4.3 양민학살과 여순사건들을 통해서 이승만의 자유당 정권이 어떻게 나라를 이끌었는지, 그리고 박정희가 일제 치하에서 만주군관학교를 거치며 일신의 영달을 위해 친일로 충성하며 나아가 공산당에 협력하다 붙들렸고, 밀고자가 되어 자신의 생명을 구하였는지를 보여준다. 친일세력들에 의하여 부와 권력을 이어오다, 미군정에 협력하고 고스란히 국가권력과 부를 거머쥔 자들에 의해 구명된 박정희는 이승만 정권 때도 쿠데타를 기획하다 때를 놓치더니 결국 4.19 이후의 혼란한 때를 이용하여 쿠데타를 성공하고 정권을 장악한다. 이 시대를 대변하는 인물은 김진이다. 김진은 일제 치하에서의 정보원으로 활약하던 경험을 이용하여 미군정에서도 치부하며 이어진 이승만 정권과 박정희 정권 때에도 건재한 실력자로 배후에 자리 잡고 있다.     


  이런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 약방의 감초처럼 등장하는 세력들이 바로 뒷골목의 건달 패거리들이다. 그들은 정치세력에 이용되기도 하면서 자신들의 이권과 세력을 위해 목숨을 걸며 사회의 한 축을 담당한다. 건달 홍양태는 그 시대의 인물이다. 개발이라는 명목으로 국가권력이 어떻게 일을 꾸며 정치에 이용했는지 수도 서울의 어두운 그림자를 민낯으로 들여다보게 한다.     


  수도 서울의 강남 개발에 얽혀 부동산 투기가 일어나고 정치권력에 야합한 자들의 이권개입으로 급조된 부동산 졸부들의 등장 또한 한 시대를 통해 양산되고 오늘날에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리고 급조된 도시의 빈민들과 주거지를 개발한다는 허울 좋은 명목으로 어떻게 도시 빈민들을 이용했는지 광주대단지 조성에 얽힌 사악한 정책의 모습을 보여준다. 광주단지 이주민인 임판수와 김점순의 딸 정아는 무너진 백화점의 점원이다. 무너진 백화점의 콘크리트 잔해에 깔린 박선녀와 정아의 대화, 마지막 생존자로 구출되어 나오는 정아의 이야기로 소설은 막을 내린다.     


  내가 발붙이고 사는 이 땅이 어떤 역사의 과정을 거쳐 여기까지 이르렀는지를 알면 오늘 이 땅을 살아가는 사람들과 그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법 또한 눈에 보일 것이다. 인과 없는 세상살이는 없는 법이다. 민주공화국을 표방하는 대한민국이 지금 어떤 사상을 가진 사람들에 의해 움직이고 있는지, 이 사회의 기득권을 쥐고 있는 자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그래서 이 사회가 어떤 모습을 지니고 있는지를 이제는 조금 눈에 들어온다. 고달프게 살아온 삶에 급급하여 잘 알지 못했던 일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한다.


   조정래 작가의 [아리랑, 태백산맥, 한강]과 더불어 황석영 작가의 [장길산]을 읽고 이어 [강남몽]을 읽으며 드는 생각이다. 이 나라의 비합리적이고 모순되며 양극화된 모습들의 진원지가 어디인지, 민초들의 고달픈 삶의 애환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를 바라보며 가슴이 먹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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