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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용현 Nov 18. 2018

소돔과 고모라

창 18:16-33, 19:1-38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통해서 이루실 나라는 강대한 나라이고 여호와의 도를 지켜 의와 공도를 행하는 나라이다. 강대한 나라는 어떤 나라인가? 세상의 안목으로 보는 강대한 나라는 힘으로 지배하는 약육강식의 법칙을 따라 세계제국을 이루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통해서 이루시려는 강대한 나라는 여호와의 도를 지켜 의와 공도를 행하는 나라이다. 여호와의 도는 무엇인가? 악을 선으로 갚아 악을 소멸하고 사랑으로 평화를 이루어내는 나라이다.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이다. 왕이신 하나님께서 다스리시고 하나님을 섬기는 백성에게 이루어지는 평강의 나라이다. “하늘에는 영광이요 땅에는 평화로다”하신 말씀대로 이루어지는 나라이다.   

 

   여호와의 도를 지켜 의와 공도를 행하는 나라를 이루시는 일에 대한 표상으로서 소돔과 고모라에 대한 심판을 볼 수 있다. 소돔과 고모라를 심판하는 일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함께 하신다. 그렇게 해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지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당신의 통치권에 동참하도록 부르신다. “내가 하려는 것을 아브라함에게 숨기겠느냐”    


   소돔과 고모라의 죄악이 극에 달했다. 하나님의 심판을 불러올 만큼 소돔과 고모라의 죄악의 분량이 찼다. 하나님께서 그 죄악에 대한 참상을 직접 알아보고자 하신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 상황을 잘 몰라서 살피시겠다는 말씀이 아니다. 이미 아시는 내용을 아브라함에게 알리시려는 의도가 깔려있다. 소돔과 고모라의 죄악상을 아브라함은 아마도 상세히 알고 있었을 것이다. 소돔과 고모라의 인근에 거주했던 아브라함이 그들의 상황을 몰랐을 리가 없다. 소돔과 고모라를 심판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을 향하여 아브라함은 소돔과 고모라를 위하여 심판을 감해 주실 것을 간청한다. 그 땅에는 조카 롯이 살고 있다. 단지 조카를 구원하기 위해서였을까? 그렇지만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통해서 의와 공도를 이루실 나라를 세우시겠다고 했다. 하나님의 공의를 이루실 나라이니 그 공의의 법에 따른 심판과 징계가 이루어질 것이다. 그 공의의 법에 따라 아브라함은 그 땅의 죄인들 틈에 섞여 사는 의인들을 기억해 주시라고 청원하는 것이다.     


   소돔과 고모라를 위한 여러 차례의 청원을 하는 과정이 마치 흥정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소돔과 고모라의 심판을 놓고 아브라함이 하나님과 밀당을 하듯이 흥정을 한 것인가? 최종적으로 의인 10인이 있다면 멸하지 않겠다는 말씀으로 마감이 된다. 의인 10인은 꼭 열 사람의 의인이 있어야만 가능한 것일까? 아마도 10인은 의인으로서 완전한 숫자일 것이다. 의인 하나라도 있다면 멸하지 않겠다는 말씀으로 읽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어떻게 심판하실 것인지를 보여준 사건이기도 하고, 또한 세상을 어떻게 구원하실 것인지를 보여준 내용이기도 하다. 하나님은 의인 한 사람을 통하여 세상을 구원하신다.     


   온 세상이 죄악으로 관영할 때 하나님께서 한 사람 아브라함을 선택하시고 그를 통하여 하나님의 도를 지켜 의와 공도를 행하는 나라를 이루시겠다고 하신다. 그 나라는 아브라함의 허리에서 나올, 여인의 후손으로 오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는 나라이다. 온전한 의인으로 오시는 그를 통하여 세상은 구원에 이른다. 이 나라는 아브라함을 통하여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지으신 사람에게 만물을 다스리는 권세를 허락하셨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고 하셨다(창 1:28). 땅은 사람이 자신의 이기심과 안위를 위한 무대가 아니다. 하나님의 지혜가 고안하여 지으신 터전이다. 하나님의 선하신 목적을 따라 모든 피조물은 개발되어 완성에 이르러가야 한다. 이 목적을 위하여 사람은 하나님으로부터 땅의 통치자로 그 권세를 위임받았다.     


   범죄한 인류는 땅을 정복하라는 권세를 자신의 욕망의 도구로 사용하였다. 바벨의 죄는 죄악의 방식을 따른 연합이었다. 죄인들의 연합으로 하나님을 대적하였다. 바벨탑은 바로 죄인들의 집합체가 만들어낸 죄악의 상징과도 같다. 바벨은 죄로 가득한 인류가 만들어낸 도시의 정형이다. 하나님은 바벨을 깨트려 천하 사방으로 사람들을 흩어버리셨다. 사람들은 하나로 뭉치자 하였는데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을 모두 흩어버리셨다.    


   소돔과 고모라는 바벨의 형식을 따른 문명이었다. 죄악이 관영하고 사람들은 떼로 모여 죄를 생산하였다. 그 죄악이 관영한 도시에 의인으로, 믿음의 사람으로 살려고 할 때 당하는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게 죄악이 관영한 도시에서 롯은 고통 중에 살았을 것이다.    


   소돔과 고모라를 찾은 두 천사를 롯이 자기 집에 영접하고 접대한다. 나그네를 환대하는 것은 아브라함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그런데 나그네에 대한 그 땅 사람들의 태도는 롯과는 사뭇 다르다. 떼거리로 롯의 집에 몰려와서 나그네를 내놓으라 한다. 그들을 상관하겠다고 한다. ‘상관하겠다’는 것은 성적인 패악을 행하겠다는 것이다. 번성한 도시 문명의 죄악 가운데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것은 바로 성적 문란함이다. 소돔과 도시는 각종 성적 범죄가 만연하였다. 남색도 아무런 거리낌 없이 행해졌다. 나그네를 행음하기 위하여 내어놓으라고 한다.     

   나그네들을 위한 롯의 변호는 사뭇 진지하고 희생적이며 처절하기까지 하다. 남자를 가까이 아니한 두 딸을 내어주겠다고 까지 제안을 했지만 그들은 막무가내로 거절하고 나그네를 내어놓으라고 압박한다. 롯은 그 땅의 붙박이 거민이 아니었고 나그네일 뿐이었다. 화급한 상황에서 천사들은 롯을 집안으로 끌어들이고 패악을 행하려는 거민들의 눈을 어둡게 만들어 롯의 집으로 들어올 수 없도록 하였다. 아브라함의 간구를 들으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롯을 그 엎으시는 중에서 내보내셨다(29절).    


   천사들은 롯에게 소돔과 고모라의 심판이 임박했음을 알리고 그 땅을 떠나도록 지시한다. 롯이 두 딸의 사위가 될 사람들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떠나고자 하였으나 그들은 롯의 말을 듣고 농담으로 여겼다. 심판의 고지에 대해 아무런 생각도 없고 오직 눈에 보이는 그 땅의 삶에 취해 있는 모습이다. 이것이 육의 방식으로 사는 세상의 모습이다.    


   화급한 심판의 재앙이 임하였다. 소돔과 고모라에 유황과 불이 비같이 내렸다. 모두 하나님께서 행하신 심판의 재앙이었다. 너무도 큰 두려움으로 롯은 발이 얼어붙어 걸음을 제대로 뗄 수조차 없게 되어, 멀리 가지 못하겠으니 가까운 성읍에 들어갈 수 있도록 해 주시라고 간청을 드린다. 그것도 허락하시어 작은 성읍에 들어갈 수 있게 하였다.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보았으므로 소금기둥이 되었다. 롯의 아내는 왜 뒤를 돌아보았을까? 소돔과 고모라에 대한 미련이 남았을 것이다. 그 땅에서 이룬 번성과 향락을 버릴 수가 없었을 것이다. 불과 유황이 비같이 쏟아지는 속에서 자꾸 머뭇거리다가 아마도 불벼락을 맞고 죽었을 것이고 그 위에 화산재와 같은 것이 쌓여 소금기둥이 되었을 것이다.    


   롯의 아내가 심판의 날에 견디지 못하고 뒤를 돌아보다 소금기둥이 되었다. 마지막 심판 날에 보게 될 상황들을 생각하게 한다. 예수님께서 종말의 심판에 대한 말씀을 하실 때 오히려 소돔과 고모라가 더 견디기 쉬울 것이라고 하셨다. 종말의 심판이 얼마나 엄중할 것인지를 교훈하신 것이다. 소돔과 고모라의 심판에서 건짐을 받았으나 롯의 두 딸의 행위는 그 땅의 행태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아버지로 말미암아 후사를 얻는 방식을 취한 것이다. 롯의 두 딸을 통해 생겨난 모압과 암몬 족속이 이후로 얼마나 자주 이스라엘의 앞길에 장애가 되었는가! 


(소금기둥)  


소돔과 고모라 소금기둥

햇빛에 부서져 내리고

소금 먼지 서걱거리며 흩날리는데

머리에 내려앉은 소금기 털어 내리며

아직 뒤돌아보지 않았다는 안도감에

휴우 긴 숨 몰아쉽니다.    


저문 하루를 등짐으로 지고

힘에 겨운 듯 끙끙거리며

뒤돌아보기보다는

아슴히 먼 내일을 붙잡으려

빈손을 이마에 붙이고

머얼리 내다봅니다.    


소돔과 고모라 소금기둥

사이사이 헤집으며

사마리아 수가성의 우물가 여인처럼

목마른 가슴으로 길게 목 빼든 채

홀연히 당신이 찾아오시기를 기다립니다.    


떠나라 떠나라 돌아보지 말고 떠나라

채근하시는 당신의 목소리 들려오는 것만 같아

소금기둥 사이에 서서 자꾸 귀 기울이며

발길은 어디로 가야 할지 머뭇거리고 있습니다.    


소금 먼지 풀풀거리는 빌딩 숲 속

현란한 불빛들이 

여전히 눈을 사로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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