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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용현 Feb 20. 2019

칼의 노래

김훈 장편소설 2001년. 생각의 나무.

  동인문학상 수상작으로서 김훈의 장편소설 [칼의 노래]는 국가 존망의 난세에 나라를 지킨 영웅 이순신을 간결한 필체로 그리고 있다. 평이하지 않은 작가의 사고로 기존의 위인전기의 상투적 틀을 벗고, 이순신의 난중일기를 기본 틀로 하여 작가의 상상력을 가미하여 만들어낸 소설이다. 생사를 넘나드는 전장에서 삶의 의미를 묻는 고뇌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전쟁의 참혹함을 여실히 보여주는 여러 형상들에서 무심한 듯 간결한 필체가 오히려 섬뜩한 감촉으로 파고든다. 

  왜구의 침입 앞에 조선의 조정은 끝없는 당쟁으로 피의 사화가 계속되는 혼란에 빠져 있었다. 임금은 도성을 떠나 의주까지 피난길에 올랐고 명에서 온 원군은 또 다른 정복자의 위세로 조선과 임금을 핍박하였다. 힘없는 나라의 왕은 끝없이 비굴하고 무기력한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그런 왕일지라도 백성들에게는 무자비한 권력이었다. 그런 왕의 신하로 전선의 최전방 바다에서 적과 대치하고 있는 이순신의 인간적인 고뇌를 저자 특유의 간결한 필치로 그려 보여준다.    


  "나는 다만 임금의 칼에 죽기는 싫었다. 나는 임금의 칼에 죽는 죽음의 무의미를 감당해낼 수 없었다. 병신년에 의병장 김덕령이 장살되었을 때 나는 내가 수긍할 수 없는 죽음의 방식을 분명히 알았다. 그때 나는 한산 통제영에 부임해 있었지만 임금이 김덕령을 때려죽인 일의 전말은 바람처럼 전군에 퍼졌다. 군은 나직이 엎드렸다."  


  이순신은 전란의 참화 속에서 왜적하고만 싸운 게 아니었다. 안으로 당쟁의 소용돌이 속에 갈팡질팡하는 임금의 흔들리는 마음에 따라 그의 목숨 줄은 수도 없이 흔들렸다. 


  "이원길이 돌아간 지 보름 뒤에 임금이 보낸 면사첩(免死帖)을 받았다. 너를 죽여 마땅하지만 죽이지는 않겠다.고 임금은 멀리서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면사’ 두 글자 속에서, 뒤척이며 돌아 눕는 임금의 해소기침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글자 밑의 옥새는 인주가 묻어날 듯이 새빨갰다. 칼을 올려놓은 시렁 아래 면사첩을 걸었다. 저 칼이 나의 칼인가 임금의 칼인가, 면사첩 위 시렁에서 내 환도 두 자루는 나를 베는 임금의 칼처럼 보였다.

  그러하더라도 내가 임금의 칼에 죽으면 적은 임금에게로 갈 것이었고 내가 적의 칼에 죽어도 적은 임금에게 갈 것이었다. 적의 칼과 임금의 칼 사이에서 바다는 아득히 넓었고 나는 몸 둘 곳 없었다." 

  이 몇 줄 글에 전란 속에서의 이순신의 모든 것이 담겼다. 바람 앞의 등불 같은 나라의 위기 앞에서 이순신은 적과 싸워야 할 장수였지만, 동시에 유약한 임금의 흔들리는 마음에 따라 목숨 줄이 위태로웠다. 이순신은 무관으로서 전장에서 죽어 명예를 지키고자 노심초사했다. 끝없는 두려움이 엄습했고 흔들리는 촛불처럼 안팎의 적에 의해 그의 목숨 줄도 흔들렸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죽음으로 전쟁은 끝을 보게 되었다. 쳐들어왔던 왜구는 돌아갈 길을 모색하였다. 이순신은 그들을 그대로 돌려보낼 수 없었다. 이순신은 전쟁이 끝난 뒤 임금에 의해 죽는 것보다 돌아가는 왜구를 징벌하고 그 전투에서 죽기를 바랐다. 기실 당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야전장수의 커다란 전과는 상대편 당파에서는 눈엣가시일 뿐이어서 종당에는 제거해야 하는 대상일 뿐이었다. 이순신은 삶과 죽음을 넘나드는 격렬한 전장에서 끝없이 고뇌하였고 결국은 노량해전에서 장렬히 전사한다. 난세의 장수가 겪어야 했던 비감한 모습이 이렇게 대미를 장식한다.    

 

  책의 말미에 작가는 이순신의 마음으로 그의 죽음을 이렇게 쓰고 있다.    


  "내 시체를 이 쓰레기의 바다에 던지라고 말하고 싶었다. 졸음이 입을 막아 입은 열리지 않았다. 나는 내 자연사에 안도했다. 바람결에 화약연기 냄새가 끼쳐왔다."


  시도 때도 없이 울어대는 칼의 노래는 바로 이순신의 고뇌하는 심경을 대변하고 있다. 사람은 가고 없지만 조선의 산하는 그대로이고 칼의 노래 역시 여전하다. 모양새는 달라도 강토는 여전히 외세의 침탈로 신음하며 깊은 상흔이 남겨지고 있다. 마지막 책장을 덮으며 시도 때도 없이 울던 칼의 노래가 귓전을 맴도는 것만 같다. 오늘도 칼의 노래는 계속되고 있다. 그나마 남북의 통로가 열리고 대화가 진행되고 있는 모습에서 다소간 위안을 얻긴 하지만 언제나 이 칼의 노래가 그칠 것인지 아득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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