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25:1-34 야곱과 에서. 선택의 신비
사명을 마친 자의 뒷모습이다. 한 인간의 흥망성쇠가 단순하지 않고 수많은 스토리가 있을 것이다. 아브라함의 삶의 행로에 진행된 굽이굽이에 하나님의 간섭하심이 있고 돌보시는 은혜의 역사가 있다. 히브리서가 말한 대로 아브라함의 삶은 눈에 보이지 않는 영원한 나라를 바라보고 걸어온 길이다. 이제 그 삶이 종결되고 역사의 무대에서 아브라함은 사라진다. 자기의 할 일을 다 마치고 이 세상을 떠났지만 그를 통해 진행되는 하나님의 큰일은 인류에게 커다란 빛이고 소망이다.
오고 오는 모든 세대에 아브라함은 언제나 믿음의 조상이다. 아브라함은 하나님나라의 구속사를 이루시기 위하여 하나님으로부터 선택된 자이다. 하나님나라의 구속경륜에 따라 아브라함은 선택되었다. 하나님의 섭리가 아브라함의 생애에 집중되고 있다. 그를 통해 세상 구속의 큰일이 진행되고 있다. 아브라함의 생애는 믿음으로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모든 성도들에게 가르쳐준다.
아브라함의 죽음 이후에 구속사는 이삭의 가정에서 진행된다. 이삭은 혼인 이후 상당기간을 자식을 얻지 못했다. 이 부분에 대한 성경의 기록은 너무도 단순하다. 그런데 우리네 인생사의 복잡한 상황들을 통해 이삭의 마음을 미루어 짐작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이삭은 오랫동안 자식이 없어 여호와께 간구를 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셨으니 후손은 당연지사로 주어질 것이었지만 실제 삶의 상황에서는 그렇게 수월하게 진행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 리브가가 임신하지 못한 기간이 어느 정도였는지 알 수는 없지만 상당히 그들 부부의 애를 태운 일이었을 것이다. 리브가의 나이 60에 출산을 했으니 적은 나이는 아니다. 그 나이가 되도록 자녀가 없었다면 그들 부부는 상당히 오랫동안 자녀 없는 괴로움으로 살았다.
이런 부분들을 통해서 성도가 세상에서 어떻게 믿음으로 살아야 하는지를 생각해 볼 수도 있다. 하나님의 약속은 분명하지만 우리는 늘 의심하고 조바심을 갖는다. 삶의 상황에서 만나는 모습들에서 사람을 보고, 세상을 보면 하나님의 약속은 언제나 잊어버리기 십상이다. 그래서 우리는 늘 부족한 믿음을 드러내곤 한다. 그때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믿음을 시험하신다. 그리고 그 시험을 통과하므로 더 큰 축복의 자리에로 나아가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신다. 이삭은 이 시험에서 믿음의 기도를 드리므로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고 있다.
이삭의 쌍둥이 아들은 그 잉태 시점에서부터 장차 일어날 일에 대한 큰 시련을 예고하고 있다. 리브가의 복중에서 두 아들이 서로 싸우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도 리브가의 믿음을 엿볼 수 있다. 자기의 태중에 두 아들이 싸우는 일을 그저 범연한 일로 생각하고 넘어갈 수도 있을 것인데, 리브가는 이 일을 하나님께 묻는다. 우리가 당하는 일상적인 상황 속에서 하나님은 일하신다. 이 사실에 대한 믿음의 고백이 성도에게는 필요하다. 이것이 바로 기도이고, 기도는 하나님께서 성도와 교통 하시는 중요한 은혜의 방편이다.
하나님께서 리브가의 물음에 답을 주신다. 태중의 두 아이는 큰 민족을 이룰 것이고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길 것이다. 하나님의 선택의 신비를 우리가 어찌 다 헤아릴 수 있겠는가! 장자가 큰 권한을 갖는 것이 통상적인 것인데, 오히려 큰 자가 작은 자를 섬기게 될 것이라고 한다. 이삭의 쌍둥이 아들들은 태중에서부터 생래적으로 다툼을 갖고 출발하고 있다.
야곱과 에서는 출생과 성장과정에서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에서는 세상의 관점으로 볼 때 남자로서의 기백이 있고 출중한 싸움꾼으로 강한 군주의 풍모를 갖추었다. 반면 야곱은 유약하고 어찌 보면 여성의 기질이 더 많아 보인다.
야곱이 에서에게서 팥죽 한 그릇으로 장자의 명분을 가로챈 사건은 독자들에게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하는 일이다. 우선 장자의 명분에 대한 것을 생각해 보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가정에서 진행하고 있는 구속사는 장자를 통해 이루어 가신다. 장자에게는 많은 특권이 주어진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축복이 있다. 그가 축복하는 자를 축복하고 그가 저주하는 자에게 저주가 임할 것이다. 장자는 아버지의 유산을 상속받을 때 갑절이나 분깃으로 받는다. 가문을 다스리는 권세도 주어진다. 가문에 주어지는 모든 축복이 장자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세상의 관점으로나 영적으로나 장자의 명분에 대한 권세는 실로 엄청난 것이다.
야곱은 자라면서 언제나 형 에서와 경쟁하고 있다. 그런데 세상의 힘으로는 형을 이길 수가 없다. 그래서 형을 이기려고 갖은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한다. 실질적으로 장자인 에서에게서 그 장자권을 뺏기 위해 오랫동안 연구도 했을 것이다. 야곱은 늘 어머니 리브가의 곁을 맴돌며 어머니의 보호와 관심과 애정을 듬뿍 받으며 산 것으로 보인다. 반면에서는 그 출중한 사내의 기질로 인하여 아버지 이삭의 총애를 받았다.
에서가 사냥에서 돌아오는 때를 맞춰 팥죽을 끓인 야곱의 행동에서 그의 치밀한 계획을 엿볼 수 있다. 에서는 별생각 없이 야곱의 제안에 동의했고 장자의 명분을 야곱에게 팔아 고픈 배를 팥죽 한 그릇에 팔았다. 이런 행동이 뭐 그리 대단한 일이냐고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성경은 이 사건을 아주 중대하게 다루고 있다.
(히 12:16) 음행하는 자와 혹 한 그릇 음식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가 없도록 살피라
한 그릇 음식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한 에서의 행동은 망령된 것이다. 망할 일을 한 것이다. 에서는 단순히 장자의 명분을 판 것이 아니라, 장자의 명분에 대해서 그다지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하나님의 일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자신의 칼과 힘을 믿고 사는 세상의 방식으로 사는 전형인 것이다. 장자의 명분으로 인하여 받을 것에 대해 별로 기대하는 마음도 없다. 그저 자신이 가진 힘에 기대어 산 것이다. 하나님을 만홀히 여긴 것이다. 즉 하나님의 뜻을 경멸하고 불신앙적인 태도를 가진 것이다. 결국 장자의 명분만 옮겨진 것이 아니라 실제적인 모든 장자의 권한이 사라진 것이다. 태중에서 예고된 대로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는 일이 시작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