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절
그날 밤 그 험악한 분위기에도 당신은 그저 한없이 평온하기만 했습니다. 당신을 붙들러 중무장한 사람들을 데리고 과도히 많은 사람들이 떼 지어 몰려들었어도 당신은 전혀 놀라지 않았습니다. 당신을 찾는 말에도 미동도 없이 너무도 당당하게 자신을 선언하듯 그저 "내가 그니라"(에고 에이미)고 하셨습니다. 옛적에 모세가 "당신은 누구십니까?" 물었을 때 "나는 나다!" 하셨던 지존자의 대답 그것이었습니다. 몰려든 사람들이 당신이 어떤 분이신 줄 알았더라면 그리 무지막지하게 덤벼들 일은 없었을 테지요. 그런 무식한 자들이었지만 당신의 한마디 대답에 놀라 뒤로 나자빠졌을 정도로 당신의 권세와 위엄은 컸습니다.
감히 당신을 범접하려는 저들의 무력에 대항하려 저는 그날 밤 분기탱천하여 가지고 있던 검으로 그들 중 한 사람을 내리쳤지요. 칼질해본 적이 없는지라 영락없이 그 칼질은 빗나가 오른쪽 귀만 잘려 떨어지긴 했지만 어쨌든 그것은 제가 당신을 지키려는 제 만용의 극치였습니다. 그런 숨 가쁜 상황에서도 당신은 그저 한없이 자애로우시고 평온하셨습니다.
대제사장의 종이었던 말고라는 사람의 그 깐죽거리던 몸놀림이나 비위에 거슬리게 비아냥거리던 비웃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당신은 땅에 떨어진 그의 귀를 주워 귀에 붙여 주시며 저를 다독이는 말씀만 하셨습니다. 검을 든 자는 검으로 망한다고... 그것은 저를 꾸짖으시는 말씀보다도 훨씬 힘이 있고 사랑이 담긴 말씀이셨습니다.
말고는 귀가 땅에 떨어지고 피가 솟구쳐 얼굴이 피범벅이 되어 주저앉아 사색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말고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언제 그랬냐는 듯이 땅에 떨어진 귀를 주워 아무렇지도 않게 귀에 다시 붙여주시는 당신의 그 따사로운 손길에 금새 멀쩡해진 귀를 만지며 놀라 어안이 벙벙해진 채 얼어붙었습니다. 그런 그가 지금은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을 깨달았을까요?
아아! 그날의 광경이 지금도 눈앞에 선합니다. 놀란 말고와 당신의 가지런한 몸가짐, 자애로운 눈빛, 격앙된 사람들의 희번덕거리던 눈빛으로 당신을 향해 달려들었던 그날, 저는 너무도 분개하고 슬픔에 겨워 그저 어찌할 바를 몰라 허둥거리며 전후를 살피지도 못하고 당신의 그 깊은 속내를 알지도 못한 채 제 감정만 앞세워 칼을 들고 설쳐댔었지요.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당신은 죽음을 향하여 너무도 당당하게 나아가셨던 것이었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당신의 그 속내를 그리도 몰랐을까요! 3년 내내 그 짧지 않은 시간 동안 그렇게도 자주 말씀을 주시고 가르쳐주셨는데도 우린 그저 세상의 탐욕과 육신의 영달 만을 추구하고 있었습니다. 당신이 죽음을 향해 나아가려 그토록 고심하던 그날 밤에도 우린 당신이 보위에 오르실 날을 기대하며 그날에 어떤 자릴 누가 차지할 지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했습니다. 아, 지금도 생각하면 부끄러워 얼굴을 들 수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