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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용현 Jun 05. 2021

장자의 축복

에서가 아닌 야곱, 창 27:1-28:22

  1. 한 가족에게서 진행되고 있는 일들이 하나님의 구속사로 전개되고 있다. 단순한 가족사가 아니다. 하나님의 경륜이 진행되고 있음이다. 인간의 무지와 이기심, 그리고 편견과 편애, 부모의 맹목적인 자식사랑 등이 어우러지는 와중에 하나님의 구속사가 어떻게 전개되고 있는지를 볼 수 있다.     


  2. 이삭의 생애가 어떠했는지, 어떤 삶의 경로를 거쳐 왔는지에 대해서 성경은 별로 관심이 없다. 이삭이 받아가진 언약이 어떤 경로로 후손에게 전달되는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것은 한 가문의 흥망성쇠와 관련된 것도 아니고 아비의 축복이 어떻게 자녀에게 전달되는지에 대한 보고서도 아니다. 모든 관심은 하나님의 언약이 어떤 경로로 아브라함의 후손에게 전달되고 진행되고 있는가에 있다.     


  3. 이삭이 나이 많아 눈이 어두워 잘 보지 못하였다. 일차적으로 육신의 눈이 어두워진 것이겠지만, 일의 진행과정을 보면 이삭의 영적 눈이 많이 어두워진 것으로 보인다. 이삭은 하나님의 관점에서 바라보지 못하고 단순히 인간적인 관점에서만 모든 일을 진행하려고 서두르는 모습을 보인다. 이삭은 서둘러 자식에게 가장의 권위로서 축복하려고 한다. 가장의 축복은 자신이 받은 모든 언약의 권한에 대한 이양을 내포한다.     


  4. 이삭은 장자인 에서를 사랑했고 편애했다. 야곱과는 다르게 에서는 남자다운 기상이 출중했고 어디를 가나 지도자로서의 풍모를 갖춘 장부였다. 야곱은 요리나 하며 어머니 근처를 배회하는 소심하고 술수에 능한 모습을 보인다. 어머니 리브가는 야곱을 편애하였다. 그런데 리브가는 쌍둥이 아이들이 태중에 있을 때 하나님께 물었고 그 응답을 기억했다. 하나님의 언약의 길이, 에서보다는 야곱에게 집중되고 있음을 감지하였다. 그렇지만 어떻게 그 일이 진행되고 이루어질 것인지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다. 그런데 남편 이삭이 에서를 축복하려 한다. 이 일에 대해 리브가는 자신의 독단적인 판단에 의해 이삭의 축복이 야곱에게 전달되기를 바란다.     


  5. 사냥꾼 에서가 아버지의 축복을 받기 위하여 사냥하러 나간 사이 리브가와 야곱이 공모하여 이삭을 속여 축복을 받는다. 하나님의 언약에 대한 그릇된 판단으로 인하여 이삭의 가정에 불신과 분노로 인한 분열이 일어난다. 하나님의 구속사에 중대한 파국의 혼란이 일어난다. 아버지로부터 받을 축복을 빼앗긴 에서는 분노하였고 야곱에 대한 복수의 살의가 소름끼치게 일어난다. 화목해야할 가정에 분노의 회오리가 일어나고 있다. 하나님의 구속사는 세상을 구원하고 회복하는 은혜의 일이다. 그런데 그 일이 진행되는 와중에 사람의 이기심과 어두움과 그릇된 판단이 큰 방해물로 작용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간섭이 그 모든 훼방거리들을 제거하고 은혜로 은혜 되게 하는 역사를 이루신다.     


  6. 야곱은 장자의 축복을 받았고 에서는 야곱의 그늘에 머물 수밖에 없다. 에서가 받은 아버지의 축복이라는 것은, 축복이라 불리기에는 너무도 미흡한 것이다. 칼을 믿고 생활하며 아우를 섬길 것이다. 에서는 자기가 하나님의 축복에서 제외된 것을 알았을 때 분노로 이를 갈며 야곱을 해하기로 작정한다. 분노의 피바람이 예견된다.     


  7. 리브가는 가정에서 일어날 예견된 피바람을 막기 위해 야곱을 피신시키기로 작정한다. 남편 이삭이 죽으면 큰일이 벌어질 것이다. 그러니 이삭이 죽기 전에 야곱을 피신시켜야만 했다. 급박한 상황이 전개되고 야곱은 별 수 없이 에서의 분노를 피해 도망자의 신세가 된다. 아버지의 축복을 받은 야곱의 형편은 도무지 축복 받은 자의 모습이 아니다. 어찌 보면 저주도 이런 저주가 없을 만큼 상황이 좋지 않다.     


  8. 이삭은 언약의 상속자로서 믿음 안에서 바른 판단으로 지도력을 행사했어야 했다. 그러나 이삭의 어두움은 형제의 반목을 야기했고 가정의 분열을 초래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주셨던 언약을 이루신다. 야곱의 그릇된 속임수와 술수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야곱과 함께 하신다. 에서는 자신의 장자권을 소중하게 생각하지 못했다. 다시 말해서 에서는 하나님의 언약에 대한 믿음이 없었다. 하나님의 구속사를 위한 선택에 야곱이 지목되었다. 에서는 배제되었다. 이것은 하나님의 주권에 속한다. 하나님의 구속은 하나님의 주권에 의해 진행된다. 선택과 유기의 작정은 하나님의 권한이다.


9. 떠나는 야곱에게 이삭은 축복하며 명한다. 가나안 사람의 딸들 중에서 아내를 맞이하지 말라고 한다. 가나안 사람의 딸이란 하나님을 모르는 불신자를 의미한다. 하나님을 알고 섬기는 아브라함의 친족에게서 아내를 맞으라는 것이다. 세상구속을 위한 하나님의 언약은 아브라함의 가계에서 진행되고 있다. 이 일에 이삭과 야곱이 신실하게 응답하고 있는 것이다.     


  10. 에서의 눈은 여전히 세상을 향하고 있다. 남자다운 용맹함과 활달한 기상의 에서는 한 지역의 군주가 될 만큼 기상이 있었다. 자신의 힘을 의지하고 사는 세상 사람들의 표본으로 볼 수도 있다. 자신의 힘이 강하였기에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다. 그 땅의 사람들과 혼인하였고 그것이 아버지 이삭에게 큰 근심이 되었다. 아버지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가까운 친족 중에서 아내를 얻는다.     


  11. 야곱의 생애에서 첫 번째 터닝포인트[Turning point]가 되는 험난한 여정이 시작된다. 장자권 축복을 가로챈 대가는 가혹했다. 형 에서와 원수가 되었고 집을 도망하듯 떠나야만 했다. 자신이 어머니 리브가로부터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었던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토록 장자권을 열망했고 인간적인 수단을 동원해 어머니 리브가와 공모해서 아버지 이삭을 속여 드디어 장자권에 따르는 축복을 받아냈다. 그렇지만 그 결과는 형 에서와의 반목이었고 가족의 평화는 깨어졌다.     


  12. 고난의 여정이었지만 그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간섭하심으로 인한 위로가 주어진다. 벧엘에서 만난 하나님은 야곱의 일생 중 가장 빛나는 순간으로 생각된다. 피난길의 고단한 와중에 벧엘에서 찾아오신 하나님의 언약은 야곱의 삶에 큰 위로요 힘이었고 소망이 되었다.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주셨던 언약과 동일한 약속이 야곱에게도 주어진다. 하나님의 구속사가 야곱에게 집중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땅과 후손에 대한 약속, 땅의 모든 족속이 그를 통해서 복을 받을 것이라는 내용이다. 세상구속을 위한 하나님의 약속이다.     


  13. 야곱은 장차 이루어질 하나님의 큰일인 세상의 구속에 대해서 얼마나 알았을까? 자신에게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 얼마나 중요한지 얼마큼 깨달았을까? 상세히 알지는 못했을 것이다. 다만 자신이 가는 길에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을 알았고 소망을 가질 수 있었을 것이다.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는 하나님의 약속은 야곱의 삶에 얼마나 큰 위로와 힘이 되었겠는가!     


  14. 야곱은 베개로 삼았던 돌로 기둥을 세우고 기름을 부었다. 하나님께 경배를 드린 것이다. 그리고 서원을 한다. 자신의 행로에 함께 하셔서 다시 돌아올 수 있게 해주신다면 주어진 것에서 십분의 일을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다는 서원이다. 이것은 아마도 야곱이 하나님을 향한 신뢰의 표현이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반드시 자신은 다시 돌아올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하고 서원을 드렸을 것이다. 야곱의 돌베개, 벧엘의 사건은 야곱이 스스로 만들어낸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찾아오신 것이다. 야곱의 터닝포인트는 찾아오신 하나님을 만남으로 이루어진다. 우리가 구속주를 만남도 마찬가지이다. 구속주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찾아오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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