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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용현 Apr 29. 2017

한강

조정래 장편소설

  [한강]은 대한민국 근대사를 조명한 민족의 대서사시라 할 만큼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만드는 소설이다. 해방이후 부터 1980년 5.18에 이르기까지의 그 암울한 질곡의 역사를 그리고 있다. 억압 받고 속울음을 참아내며 피할 수도 없는 고난의 삶을 살아내야만 하는 평범한 우리 주변의 사람들 모습을 보여준다.     


  저자 조정래는 [한강]을 통해 우리 근대사의 양 극단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강자와 약자, 부를 거머쥔 자들의 끊임없는 착취와 거기 매여 끝없이 당하고 사는 가난한 자들의 울분을 보여준다. 독재 권력의 횡포와 그에 맞서는 젊은이들의 피 흘림의 투쟁, 그리고 이 어두운 질곡의 역사를 심판하는 칼날을 독자들에게 쥐어주고 있다.   

 

  친일파의 득세, 친일로 부를 획득한 이들의 끝없는 탐욕, 그에 반하여 독립운동가 후손들의 비참한 현실은 그 시초부터 오늘날까지 여전히 풀지 못한 숙제로 남아있다.   

  

  1945년 해방과 함께 찾아온 근대화의 시초에 나라는 38선을 기준으로 남북으로 갈라서는 비극으로 시작되었고, 그 과정에서 북한은 소련, 남한은 미국에 의해 신탁통치를 받게 되었다. 남한 만의 단독 정부수립을 하게 된 이승만 정권은 온갖 부정과 비리를 저지르며 오로지 자신들의 기득권과 이익만을 추구하는 자들의 집단으로 전락하여 4.19 혁명을 불러올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혁명으로 이룬 자유는 그리 오래가지 못하였다. 4.19 혁명을 의거라는 이름으로 몰아내고 혁명이라는 이름을 빼앗은 폭거인 5.16 군사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의 군사독재 30년은 이 나라를 반공 이데올로기의 암울한 격전장으로 만들었고 온갖 부조리한 체계를 이루어 빨갱이라는 이름의 올가미를 들고 백성들을 사지로 몰아넣은 폭거를 자행하였다. 


  납북 혹은 월북한 이들의 가족에게 지워진 반공 이데올로기의 멍에, 그리고 끝없는 빈부격차와 그 틈새에 일어나는 각종 부조리한 사회의 모습들이 다양한 인물들을 통해 적나라하게 묘사되고 있다. 당시 사회의 부조리한 모습으로 잘못된 공업입국의 경제정책에 대해서 강숙자의 남편 홍석주의 입을 빌려 묘사되고 있다.  

  

  [국제 경쟁력을 높여 수출을 계속 신장시키기 위해 노동자들의 임금인상을 억제하는 저임금정책을 확정했고, 저임금을 유지시키려면 물가를 안정시켜야 하고, 물가가 안정되려면 노동자들의 주식인 곡물가격을 통제해야 하고, 곡물가격이 억제되면 농민들이 몰락해 이농을 하게 되고, 이농한 농민들은 살길을 찾아 도시로 몰려들고, 그러면 도시 노동력은 과잉이 되어 임금이 싸질 수밖에 없는 악순환의 이중효과를 나타냈다. 그런 이농현상으로 해마다 50만 명 이상이 도시로 몰려들게 되었고, 그것은 결국 도시빈민 문제를 야기 시켰다. 그 표본적인 비극이 바로 광주대단지 사건이었다.    


  부동산 투기로 한탕, 권력과 짜고 한탕, 부정부패로 세상이 자꾸 썩어가면서 그놈의 한탕이 예사가 된 결과로 생겨난 한탕주의...


  기업들도 현장 노동자들에게 임금은 적게 주고 기업주들만 살이 찌고 있어서 불만이 자꾸 커져가고 있다. 이미 임금 착취에 대한 항의와 공정한 분배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사회문제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신문에 다 안 나서 그렇지 크고 작은 파업들이 날로 늘어나고 있다.    

 

  총리는 “아직은 분배의 시기가 아니라 축적의 시기니 좀 더 참고 기다리라”고 배고프고 힘든 국민들을 설득하고 있었다. 그런데 일국의 총리가 국민을 향해서 명령을 하듯이 그런 일방적인 소리를 해도 되는가? 총리는 사단장이 아니고 국민은 병사들이 아니다. 그리고 기다리라니 언제까지 기다리라는 거냐? 백성들의 불만을 자극하고 있다.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은 1-2차를 거쳐 3차에 들어섰고, 국민의 대다수는 근근이 살아가며 지난 12년 동안을 참아왔다. 그런데 그동안 빈부격차는 점점 심해지고, 서민들로서는 잘살 가망이 없는데 막연히 기다리라니, 그건 제삿날 잘 먹자고 석 달 열흘 굶으라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총리란 국민에게 희망과 믿음을 줘야 하는데, 장관이 해서도 안 될 소리나 하고 있으니 문제이다.     


  공원들은 하루 평균 12시간씩 노동을 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최저 생활이 해결이 안 되고 있다. 그런데 기업주들은 날로 치부를 해가는 이런 착취구조는 분명 부숴야 한다. 정부는 경제발전을 위한 자본축적이라는 미명 아래 기업들을 보호해주고, 기업들은 그 빽을 믿고 맘놓고 인건비 착취를 자행하고 있다. 이건 사람이 사는 세상이 아니다.]   

 

  해직 기자 이상재에게 대답하는 유일표의 말을 통해 저자는 그 시대상을 고발하고 있다. 유일표는 월북한 아버지 때문에 진로가 막힌 연좌제의 희생양이었다. 원하는 사회생활을 할 수가 없어 재건대에서 넝마주이들과 함께 살았다. 그리고 야학을 하여 그들을 가르치고 있었다.    


  노예가 중세에만 있었던 게 아니야. 지금 우리나라 노동자들은 노예야. 노동노예. 죽도록 일을 하고도 최저생활이 안 돼. 의·식·주 생활이 해결이 안 된다구. 그러니 자식들 교육을 원하는 대로 시킬 수 없고, 중병에 걸리면 그대로 죽을 수밖에 없어. 그런데 기업주들은 떼부자가 되고 있는 거야. 다 똑같은 사람이 사는 세상이 이래서야 되겠어? 이런 모순을 몰랐으면 모르지만 알고서야 눈을 감을 수는 없잖아? 나도 내 여건을 많이 생각했지. 그렇지만 내가 야학에서 가르쳐 사회에 내보낸 애들이 나 자신처럼 생각되는데, 그들이 착취당하고 있는 걸 모르는 척 한다는 건 말이 안 돼. 그래서 정치성을 피해가면서 몸조심하려고 애쓰고 있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이런 상황은 그 시대만의 모습이 아니다. 돌아보면 현재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모습이다. 아니 어쩌면 이 시대의 모습은 그보다 훨씬 심각한 지도 모른다. 그 한 면이 농촌의 추곡수매가 정책을 통해 잘 드러나고 있다.    


  추곡수매가 동결은 물가 안정과 직결되어 있었다. 각 도시마다 집결되어 있는 공장 노동자들의 저임금을 유지하려면 물가가 안정되어야 하고, 물가를 안정시키려면 물가에 가장 영향이 큰 주식인 쌀값을 안정시켜야 하고, 쌀값을 안정시키려면 추곡수매가를 동결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추곡수매가를 동결하는 효과는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그 조처로 농촌 살림들이 어려워지자 농촌을 떠나는 사람들이 부쩍 늘어나고, 농촌을 떠난 사람들은 도시로 모여들고, 도시로 모여든 사람들은 손쉬운 일자리를 찾아 공장들로 들어가고, 인력 구하기가 쉬우니까 노동자들의 저임금은 계속 유지되고, 노동자들의 저임금은 공업 생산품의 원가를 줄여 수출을 신장시키고, 수출 신장은 공업화를 촉진시키고 있었다.   

  

  이러한 구조에 대해 일부에서는 “농민들의 일방적 희생”이라는 비판도 있었지만, 조국 근대화의 물결과 공업입국의 대세 앞에서 그런 소리는 흔적도 없이 묻히고 말았다. 공장을 가진 기업들이 추석이나 설에 공원들을 고향에 내려 보내며 친구 한 사람을 데려오면 한 달 치 월급을 보너스로 준다고 할 정도로 일손이 달리고, 정부에서는 수출 목표 100억 불을 달성한 다음에 그 목표를 1천억 불로 내걸고 더욱 기세를 올렸다.    


  산업화의 물결에 밀려 농촌은 피폐해지고 사람들은 도시로 빠져나가니 농촌에는 노인들만 남게 되었다. 도시로 몰려든 사람들로 인해 노동자들의 임금은 낮아지고 그 값싼 임금으로 기업들은 부를 축적하게 되었다. 그런데도 국가나 기업은 농민들의 피폐한 삶을 외면하였다.    


  “지금은 축적의 시기이지 분배의 시기가 아니다.” 이런 말로 정권을 잡은 자들과 부를 거머쥔 자들이 둘러대기 좋은 그럴싸한 말로 백성들을 호도한 것은 6-70년대의 일로 끝난 것은 아니다. 여전히 가진 자들은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으로 농민과 노동자들을 속이며 자기들의 부를 지키는 것에만 눈독을 들이고 있다.    

 

  독재 권력과 친일파 세력은 해방 이후 한국사에서 언제나 기득권과 부를 독점하여 다수의 백성들의 고혈을 먹고 살며 압제하는 자들로 서있다. 친일파 세력의 척결은 민족의 정기를 살리는 일이기도 하며 복지국가를 이루는 초석이기도 하다. 함께 더불어 잘사는 국가를, 말 그대로 복지국가를 향한 열망은 책의 곳곳에 스며있다. 언제까지 모아 쌓는 자들, 그 상위 5%의 부한 자들을 위한 정치를 할 것이냐고, 힘없고 가난한 백성들, 억압받는 자들을 위해 건강한 복지국가를 이루어가야 되지 않겠냐고 [한강]은 강하고도 묵직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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