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일조

by 주용현

십일조는 한국교회에 참 민감한 사안입니다. 잘 정리해야 할 내용이기도 하고 잘못 말했다가는 지탄의 대상이 될 수도 있는 것이기에 조심스럽기도 합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십일조 제도 자체의 문제라기보다는 인간의 사악한 죄악성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형식에 매이는 어리석음이 문제인 것입니다. 어떤 제도나 형식의 문제라기보다는 하나님을 온전한 마음으로 섬겨야 할 것을 바로 하지 못한 것에서 오는 시행착오인 것입니다. 어떤 제도를 따라 행하는 것보다도 우선 되어야 할 것은 그 제도의 이면에 깔린 근본정신인 것입니다.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는 대전제에서 헌금/헌상은 출발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십일조도 하는 것이지 무슨 구약의 제도를 답습해서 시행하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거기에 부정적인 요소로 많은 목회자들이 교회의 현상유지를 위한 세속적인 관념으로 시행하고 추진하는 제도의 부정적인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십일조를 교회가 추진하고 시행하는 까닭은 옛 제도 아래에서도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의 존속을 위하여 주신 헌상의 제도를 따라 시행된 십일조 제도의 정신을 계승한 십일조의 의미를 먼저 생각해야만 합니다.


십일조는 내 전부를 드려야 하지만, 전부를 드리면 삶을 지탱할 것이 없기에 나를 대표하여 십 분의 일을 대표로 드린다는 의미를 담는 것입니다. 이것이 헌상의 중요한 믿음의 고백이고 현실로 나타내는 표상인 것입니다. 그런데 부정적으로 그것을 세상의 방식대로 교회를 운영하는 측면에서 과도히 이용하여 물질적인 관념으로만 생각한다거나, 옛 제도인 구약의 방식대로 답습하여 율법주의적인 개념으로 시행한다면 문제가 있습니다. 많은 교회들에서 이런 폐단들이 보이기도 하지만 그러나 십일조를 드리는 데에는 보다 더 긍정적인 측면이 있음을 생각해야 합니다.


교회가 하나님 나라의 일을 집행하는 데에 성도들의 십일조는 최소한의 섬김의 고백으로 볼 수도 있고, 또한 십일조를 하는 것으로 교회가 많은 일들을 시행하는데 큰 어려움이 없을 만큼 충분하고 유용한 제도임에는 틀림없습니다. 물론 굳이 십일조라 명명하여 시행하지 않고 달리 헌상이라는 명목으로 그냥 헌금봉투를 따로 하지 않고 드린다 해도 좋을 것이고, 십일조라 명목을 정하여 자기의 전부를 대표하여 드린다는 고백으로 드리면 그것이 무슨 해악이 되겠습니까? 문제는 드리는 형식이 아니라 드리는 마음가짐에 있는 것입니다. 헌금이라는 것은 하나님께 내 전부를 헌신한다는 신앙고백에 근거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형식이나 제도보다도 우선해서 생각할 것은 드리는 자의 합당한 신앙고백에 있는 것입니다. 십일조의 제도에 대해서 생각해야 할 것은 이런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사용한 그림은 네이버 블러그 이웃인 [그림성경]님의 그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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