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위일체

by 주용현

삼위일체라는 말이 성경에 없기 때문이라는 이유로 삼위일체론을 거부하는 이들이 있다. 이것은 신학 어휘 사용에 관한 문제이기도 하고 성경해석에 관한 문제이기도 하다. 우리가 신학 하는 작업의 전제로 하는 것 가운데 하나는 명확한 문구로 성경에 기록되지 않았을지라도 추론적으로 알 수 있는 것들도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것이 하나님을 삼위일체로 표현한 말이다.


그런데 [삼위일체]라는 말이 가장 정확한 것이어서 사용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교회사와 교리사를 통해서 보듯이 [삼위일체론]이 정립되어 하나님은 삼위일체이시라고 고백되는 과정에서 그보다 더 적확한 다른 말이 없어서 사용하고 있을 뿐이다. 하나님의 삼위일체이심에 대한 우리의 이해에 더 좋은 다른 어휘가 발견된다면 채용되어 사용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하나님 나라가 극치에 이르면 분명히 더 나은 표현이 있을 것으로 본 바빙크의 말처럼 우리가 하나님을 이해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고 계시의 분량에 따른 이해의 한계가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유한은 무한을 파악할 수 없다는 전제 아래 하나님에 관한 바른 지식을 가져야 한다.


피조물인 우리가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는 계시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여기에 계시라고 했을 때에 말해지는 것은, 하나님께서 친히 하시는 말씀으로서의 계시, 창조 자체로서의 계시, 말씀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내신 계시, 그리고 성경으로 기록된 계시 등을 생각하게 된다. 현재 우리가 받아 가지고 있는 기록된 성경의 계시에 근거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삼위일체 되심에 대한 이해를 갖는다.


물론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성경에 하나님이 삼위일체이시라고 직접적으로 언급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성경의 다양한 본문들에서 하나님은 삼위일체로 계심을 명확하게 찾아볼 수 있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하나님이 삼위일체이시라는 것보다 나은 다른 표현을 찾을 수 없어서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우리는 성경에 의존해서 그 한계 안에서 하나님을 배우고 만나며 알고 고백한다. 삼위일체는 교회의 생이 고백한 신앙이다. 교회사에서 볼 수 있듯이 교회는 삼위일체를 신앙하고 고백하였다. 오늘 우리가 삼위일체를 고백하는 것은 전통적 교회의 정통성을 갖는 참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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