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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용현 Mar 31. 2018

새 인류

창 9:18-11:9

 심판의 홍수가 범람할 때 노아는 얼마나 무서웠을까! 하나님께서 세상을 심판하실 때 온 세상이 물로 뒤덮였다. 그 진노의 심판 가운데서 노아는 은혜를 입었고 택함을 받아 새로운 세상을 여는 자가 되었다. 노아는 죄악된 옛 세상을 끝내는 마지막 인물임과 동시에 새 세상을 여는 첫 인물이 되었다. 노아의 삶에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이 생생하게 각인되었다.    


 노아는 심판의 홍수 가운데서 하나님의 크고 두려운 엄위로우심을 보았으며 동시에 은혜도 보았다. 자신도 심판에 처해진 다른 사람들과 다를 바 없는 죄인임에도 구원의 은혜를 입었다. 홍수로 인하여 파괴되고 격변한 자연환경 가운데 살아가야 할 노아의 심중이 어떠했을까? 미래에 대한 불확실함과 자신을 포함한 새 인류가 얼마나 죄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자들인가를 생각할 때 또다시 심판의 홍수가 임하지 않으리라고 생각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창조를 보존하고 지키실 것이란 확실한 보장의 말씀을 주셨다. 하나님께서 베푸신 노아언약의 증표는 무지개였다.    


 무지개 언약의 증표대로 노아의 후손은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중다한 자손이 번성하므로 노아의 자손들의 이름이 언급되는데 모두가 한 종족을 이룬 족장들이었을 것이다.    


 족장들 가운데 용사로 일컬어지는 특출한 인물 니므롯이 거론된다. 아마도 니므롯은 땅의 방식으로 사는 자의 표상일 것이다. 육식이 허락된 세상에서 사냥을 잘할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강한 힘을 뜻한다. 양식이 풍성한 곳에 힘이 모인다. 사람들이 모인다. 사람들이 모이면 그 결집된 힘에 의해 강한 권력이 생긴다. 결집된 강한 권력은 사람의 죄악을 증대시킨다.    


 용감한 사냥꾼 니므롯은 혈육의 방식으로 사는 세상의 영웅이다. 세상이 추구하는 것은 땅에서 생존하는 힘에 의해 결정된다. 니므롯은 강한 힘의 권세로 세상을 평정한 왕이다. 이것이 육으로 사는 자의 힘이다. 그러므로 당세에 니므롯은 영웅으로 추앙되었다. 바벨탑 이전의 사람들이 어떻게 생육하고 번성했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 육의 방식으로 사는 자들의 번성함이 어떤 모습으로 발전되어 가는지를 잘 보여준다. 힘의 결집을 통하여 번성하므로 자신들의 이름을 높이는 쪽으로 모든 삶의 방향이 결정되고 진행된다. 힘이 모아졌을 때 나타나는 결과물이 자기를 높이는 것이었다. 사람의 본래 창조목적은 하나님을 높이고 영화롭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의 힘이 모여서 하나님처럼 되고자 시도하는 쪽으로 나아간다.    


 홍수 이후의 사람들의 결속이 어떤 방향에로 진행되는가?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이 말 속에 모든 것이 함축되고 있다. 다시 홍수의 심판이 임할지라도 흩어지지 않도록 하자는 것이다. 하나님의 심판을 무력화시키자는 것이다. 하나님의 권위에 대한 정면 도전이다. 홍수심판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한걸음도 더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죄는 여전하다. 하나님을 대적하고 거스름에서 나아진 것이 아무것도 없다.    


 이렇게 죄가 발전되고 있는 세상에 대해서 이번에도 하나님께서 간섭하신다. 다시 홍수로 심판하시는 것이 아니라 흩어짐을 면하기 위하여 바벨탑을 건설하는 그들을 온 땅에 흩어 버리신다.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뜻은 생육하고 번성하여 온 땅에 충만하라는 것이다. 한 곳에 붙박아 사는 것이 아니다. 한 곳에 안주하여 자신의 안위만 생각하며 사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창조를 탐구하여 다스리는 것이다. 하나님의 창조 목적을 따라 창조를 계발하는 것이다. 사람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력을 발휘하여 모든 능력을 함양하고 갈고닦아서 온 땅에 충만하라는 것이다.    


 어떤 면에서 보면 도시는 사람들이 모여 결집된 힘으로 육을 만족케 하는 방식의 결정체이다. 온 땅에 흩어짐 보다는 한 곳에 모여 죄악된 모습을 번성하는 것이 도시문화이다. 그렇게 보면 도시에 창궐한 죄악들은 하나님 나라의 질서에 반하는 모습이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사람들을 결속하게 하는 언어의 통일을 깨트리심으로,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을 천하 사방으로 흩어버리셨다. 하나님을 거역하는 근본을 헐어버리신다. 언어가 다르게 되어 사람들은 각기 언어를 따라 천하 사방으로 흩어지게 되었다. 이렇게 바벨에서 흩어진 언어는 종말에 다시 통합될 것이다. 구속사의 시작과 진행과 완성의 중심에 예수 그리스도가 있다. 바벨에서 흩어진 언어의 통합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는 그날에 이루어질 것이다. 종말에 완성될 하나님 나라이다.    


 이 일의 사전표상으로 오순절 성령강림이 이루어졌을 때 사람들의 방언 말함이 나타난다. 언어의 통일, 그것은 종말에 완성될 하나님나라의 단면을 보여준다. 성령강림은 타락한 세상을 정화하고 인류를 하나님의 통치 질서 속에 하나 되게 하실 새 역사의 시작점이기도 하다. 교회의 생일이라 할 성령강림절의 하나 된 언어통일의 모습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영광스러운 완성을 조망한다. 구속사의 중심은 하나님께 있다. 사람들을 통하여 이루시는 하나님의 일하심이다. 역사를 이해하고 해석함에 하나님의 일하심이 열쇠이다. 하나님의 시각으로 세상을 보는 눈이 열려야 한다. 구속사의 눈으로 바라볼 때 세상이 바르게 해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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