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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상목 May 28. 2024

꽃놀이 한번 가보고 싶어.

돌봄 에세이 2

  재가 중심 돌봄을 하다 보면 가장 많이 듣는 말 중에 하나입니다. 저는 의료와 돌봄을 필요한 분들에게 직접 찾아가 건강 상태를 체크하고, 요구되는 의료처치를 제공하는 방문 의료를 진행했습니다. 그 경험을 통해 지역사회에서 보행이 어려워 침대에서 와상상태로 지내고 계시는 분들을 많이 만나게 되었습니다. 처음 만나는 과정은 참 어색하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어색하기도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분의 삶 전체를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습니다. 많은 분들과 소통하면서 아픈 것과 하고 싶은 것, 속상한 것, 인생에서 남기고 싶은 것들을 나누었던 이야기를 해보고자 합니다.




  찾아가는 의료와 돌봄을 하면서 집에만 계시는 분들이 생각보다 많았습니다. 와상상태로 장시간 침대에 누워있는 시간이 많으면 얼마나 답답할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침대라는 공간에서 할 수 있는 것은 그리 많지 않았고, 그나마 라디오와 텔레비전은 참 좋은 친구라고 하셨습니다. 침대에서 지내는 시간이 늘수록 기억이 가물가물해진다고 하시면서, 오늘이 며칠인지 잊어버릴 때가 많아 달력과 시계는 필수라고 하셨습니다. 며느리에게도 알려주지 않는다던 침대생활에서 유용한 꿀팁을 전수받아 더 많은 분들께 알려드리겠다 약속을 하기도 했습니다.


  우연치 않은 사고나 질병으로 침대에서만 생활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쉬운 일이 아닙니다. 특히나 돌봄을 받는 사람과 돌봄을 제공하는 사람 사이에서도 많은 갈등 상황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그중에서 원하는 것이 있지만 여러 조건이 따라주지 않아서 생기는 감정은 서로에게 아쉬움과 안타까움을 남깁니다. 예를 들어 먹고 싶은 음식이 있지만 건강을 위해서라면 삼가야 하는 것, 텔레비전을 보다 문득 가보고 싶은 곳이 있는데 가지 못하는 것들이 대표적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요즘과 같이 날씨가 참 좋은데 나가서 꽃이라도 보고 싶다고 하실 때 괜스레 아련해지기도 합니다.

 

  우리 집 감이 참 맛있다며 자랑하셨던 분이 많이 기억이 납니다. 창문 너머 보이는 감나무와 까치를 보면서 올해는 얼마나 감이 주렁주렁 열릴까 하며 마음 같아서는 열매가 잘 열릴 수 있게 거름이라도 주고 싶은 심정이라고 말하셨습니다. 그럴 때 저는 머쓱하며 감나무에 감이 몇 개나 열리는지 세어보고 저에게 알려달라고 하며 급히 웃음으로 마무리하곤 했습니다. 그러자 재활을 열심히 해서 건강을 되찾은 후에 대봉감을 따서 저에게 한 박스 주시겠노라 하셨습니다. 제일 크고 맛있는 대봉감을 따서 주시는 그날까지 같이 건강관리 약속을 하는 좋은 경험이기도 했습니다.


  집에만 계시는 분들도 가끔 특별한 외출이 기다릴 때도 있었습니다. 진단의학적 검사가 필요해 병원으로 향하는 날이면 어김없이 사설 구급차를 불러 의료기관까지 이송을 부탁한다고 합니다. 이날 이야말로 연중행사라고 하시며 외출이 기다려진다고 하셨습니다. 주변에 불편한 것들이 한 두 개가 아니지만 오랜만에 쬐는 햇볕이 그렇게 달콤할 수가 없다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구급차로 이동하는 순간도 잠시, 곧 내 병원으로 도착해서 짧은 시간 동안이나마 바깥 구경을 해서 만족스러웠다고 말하셨습니다.


  유독 따스한 봄기운이 돌 때 우울함을 호소하시며 무기력한 분이 계셨습니다. 그분은 죽기 전에 바깥으로 외출해서 꽃 한번 보는 것이 소원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고 보니 꽃과 함께 찍은 사진이 참 많이 걸려 있는 집이었습니다. 매번 봄이면 산으로 바다로 여러 꽃들을 보러 다니는 것이 취미였다고 하시며 몸이 좋지 못한 이후로는 삶이 재미가 없어졌다고 했습니다. 자녀분들이 여러 화분과 꽃들을 사준다고는 했지만 제철에 보는 꽃은 잊을 수 없다며 아쉬움을 토로하기도 하셨습니다.


  어느 순간 이런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집 근처라도 한번 나가서 바람이라도 쐬면 어떨까라는 호기심에 큰마음을 내보기로 했습니다. 오랜 와상기간으로 관절구축이 심해 이동이 쉽지 않아 활동을 보조할 수 있는 많은 사람들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가족분들과 요양보호사님이 합심한다면 휠체어로 가까운 곳 정도는 이동이 가능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모두의 시간대를 맞추고 준비하는 과정은 그리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방문 의료로 많은 분을 만나면서 무언가 해줄 수 없는 상황을 만날 때 얼굴이 빨갛게 상기되고 뜨거워집니다. 우리나라에도 돌봄 영역에서 이동권이 보장되는 정책이 보완되면 참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네덜란드에서는 말기 암환자 소원을 들어주는 구급차 재단이 있습니다. 의료진과 함께 동반해 직접 가보고 싶은 곳을 누비며 자신의 삶을 통합하고 가족과 추억을 쌓아 존엄한 삶의 영역을 채워나갑니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사람 중심 정책들이 많이 필요하겠다고 느끼곤 하였습니다.


  앞으로 고령 시대에 많은 분들이 낯선 의료기관이 아닌 편안하고 안락한 집에서 요양과 돌봄을 받는 날이 도래할 것이라 믿습니다. 현재 장기요양 재택의료시범사업과 일차의료방문진료수가시범사업을 통해 재가형 방문 의료 서비스는 확대되어 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실내 환경과 침대 생활이 너무 익숙해져 버려 단절된 삶을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걱정이 되기도 했습니다. 재가 중심형 의료이지만 집 밖으로 나가 세상 밖과 소통할 수 있는 제도와 정책들이 필요하다고 절실히 느꼈습니다. 몸이 조금 불편하지만 인생을 통합할 수 있는 활동들이 함께 확장되어 가길 간절히 바래봅니다.



[이 글은 보건복지부 공식 블로그에 기고한 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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