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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담 하상목 Jun 21. 2024

입안 까지도 봐드립니다.

돌봄 에세이3


  방방곡곡 의료가 필요한 사람들을 찾아다니다 보면 재미있는 해프닝을 만나기도 합니다. 간호학을 전공했지만 전혀 다른 전문분야의 일을 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사용하시던 휴대전화가 고장이 난 것 같다며 때로는 전자기기 수리기사가 되기도 하고, 식사를 직접 차려 드리는 영양사가 되기도 합니다. 몸을 돌보아 주는 것만큼 필요한 일이기에 기꺼이 자청하지만 미숙한 실력이 금방 들통나곤 합니다. 하지만 특별하게 해드린 것이 없어도 그저 고맙다고 해주시는 어르신을 볼 때마다 하하 호호 웃음이 피어나기도 합니다.


  오늘은 그동안 방문 의료를 하면서 만났던 사연 중에서 다른 전문가의 도움이 절실했던 이야기입니다. 무더운 여름철에는 만나는 어르신들이 안녕하신지 더욱 많이 챙겨야 되는 시기입니다. 날씨가 더워지면 식욕이 줄게 되고 평소에 드시던 식사량보다 훨씬 줄어들어 기력이 쇠약해지기 때문입니다. 이때 만성질환까지 관리되지 않으면 쇠약하던 몸이 더 약해져 건강이 악화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여름철에는 전화로 안부를 묻는 작업이 다른 계절보다 훨씬 많아지게 됩니다.




  어느 날, 평소와 같이 전화를 걸다가 한동안 식사도 못하시고 이불에서 꼼짝을 못 하겠다고 하시는 어르신을 찾아갔습니다. 항상 방문을 할 때면 어서 오라고 하시며 손을 흔들어 주시는 어르신과는 다르게 기력 없이 바닥에 앉아 계셨습니다. 집안에서도 지팡이를 짚으시며 거동하시던 어르신은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힘이 없어 한동안 목욕도 못하시고 옷도 갈아입지 못하셔서 신체 위생이 절실해 보였습니다. 다급하게 혈압을 재면서 어르신께 식사는 잘 하시냐고 질문하자 평소보다 절반가량 줄어들었다고 하셨습니다.


  역시 더운 날씨는 피해 가지 못한다는 생각을 하던 와중에 어르신께서 옆으로 픽하고 쓰러지셨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잠시 몸에 힘이 빠진 것뿐이라고 하시면서 걱정 말라고 오히려 저를 다독이셨습니다. 이대로는 안되겠다 싶어 병원 입원을 권유하던 찰나에 좀 더 솔직한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습니다. 한참을 말할까 말까 하시며 좀처럼 쉽게 말하지 않으시던 끝에 어르신은 사실 잇몸이 너무 아프다는 것이었습니다. 평소 틀니를 착용하셨지만 어느 순간 맞지 않았고 잇몸에 상처가 생겨 통증이 심했다고 하셨습니다.


  식사를 하실 때마다 쓰라린 통증이 있었고, 진통제를 먹기에는 속이 쓰려 차라리 식사를 거부하셨던 것이었습니다. 냉장고에는 고춧가루나 식초, 간장이 들어간 자극적인 반찬이 대부분이라 통증을 더 심하게 했다고 하셨습니다. 대신해서 흰 죽이나 미음과 같이 자극이 적은 음식으로만 찾아 드시다 보니 영양불균형이 온 것이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혈압과 혈당은 정상 범위였지만 휘청거린 어르신 컨디션에 쉽게 마음이 놓이지 않았습니다. 우선 방문진료를 주기적으로 오고 있는 방문 의사에게 상황을 알리고 어떻게 하면 좋을지 함께 방법을 모색하였습니다.


  잇몸이 얼마나 좋지 않지 않으신지 확인하기 위해 어르신을 설득해 입안을 보게 되었습니다. 급하게나마 스마트폰의 손전등 기능으로 입안을 보게 되었는데 예상보다 구강상태는 더 좋지 않았습니다. 혀에는 누런 백태가 껴있었고 치아 소실이 된지 오래되었는지 잇몸은 녹아내려 있었습니다. 많은 염증으로 냄새도 심하고 작은 궤양도 몇 군데 보였습니다. 특히 어금니가 있는 부분에는 검은색 출혈과 하얀 고름이 있기도 했습니다.


  아니 그동안 왜 말씀을 안 하셨어요? 아픈 입안을 보고 난 후 제 첫마디였습니다. 이렇게나 아프셨으면서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사연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아픈 입안을 누군가 들여다본다는 것은 부끄럽다고 생각하시는 것이었습니다. 혹시 입 냄새는 나지는 않을까, 모두 빠져버린 치아를 다른 사람에게 보인다는 것은 창피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집에 와있을 때에는 틀니를 끼고 계셨지만 말씀을 하실 때마다 빠지는 틀니가 그렇게 부끄러울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사실 입안을 들여다보아도 제가 해결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습니다. 빠른 시일 내에 치과진료를 받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에 가까운 치과를 알아봐드리고 요양보호사 선생님께서 계시는 시간에 예약을 해드렸습니다. 며칠 후 방문진료로 건강 상태가 극심하지는 않지만 약물 조절이 필요하겠다고 말을 듣고 나서야 안심이 되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유독 어르신들이 계시는 집에서는 라면을 자주 드시고는 하셨습니다. 간편하게 물을 끓여 부은 후 면을 불게 해서 먹으면 맛도 좋고 씹기도 간편하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조금 더 신경을 써드리지 못한 것 같아 아쉬움이 몰려왔습니다. 혹시라도 치과 전문가가 방문해서 정기검진을 미리 해주었다면 어땠을지 하며 여러 가지 방법들을 찾아보게 되었습니다. 건강한 구강을 위해서 올바른 잇솔질부터 틀니를 관리하는 방법까지 미리 알았더라면 아쉬움을 자아냈습니다. 만약 그랬더라면 지금과 같이 몸을 가누기 힘든 상황이 오지 않았을 것만 같았습니다. 모든 것을 간호사인 내가 할 수 없는 것을 다른 전문가들의 도움이 절실히 느끼던 경험이었습니다.


  장기 요양 재택 의료 시범사업을 통해 찾아가는 방문 의료를 제도적으로 실현해나가고 있습니다. 현재까지 100여 개소에서 재택 의료센터를 운영하고 있고 향후 시군구별로 1개소를 목표로 확대해나가고 있습니다. 재택 의료를 통해 방문진료와 방문간호를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지만 구강 영역은 여전히 취약합니다. 하지만 방문 구강은 보건소에서 예방을 중심으로 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치과의사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방문구강의 정책적 확대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이 글은 보건복지부 공식 블로그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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