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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상목 Feb 20. 2023

내 집에서 임종

나의 첫 자택 임종 대상자




이제야 임종이 적응되었을 거라 생각했지만 여전히 임종은 어색하다.


나는 의사와 함께 방문진료를 다니는 간호사였다. 

방문진료를 다니다 보면 다양한 가정, 다양한 이야기를 마주한다.  

얼마 전, 요양등급을 받기 위해 원장님께 왕진 요청이 들어왔었다. 방문한 어르신은 고령에다가 고혈압, 당뇨, 고지혈증, 치매를 가지고 계신 분으로 몇 달 전, 집에서 혼자 화장실을 가다가 넘어지면서부터 와상 상태가 되셨다고 한다. 이후 가족들의 돌봄에도 불구하고 점차 좋지 않게 되셨고 결국 식사를 못하는 상태에서 욕창까지 생기는 사태까지 와버렸다. 


  그래서 가족들은 시설에 모시는 것이 나을 것 같다고 생각해서 요양등급을 받기 위해 왕진을 의뢰하셨다고 하였다. 그러나 막상 가보니 전신 허약감이 무척이나 심하셨고 혈당을 측정하니 너무 높아 혈당관리가 제대로 안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식사를 하시지 못하니 당뇨약도 못 드리고 있는 상태로 말 그대로 아비규환이 아닐 수가 없었다. 이러다가 며칠 만에 임종하시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이 강력하게 들었다. 원장님은 보호자에게 적극적인 치료를 원하는지 아니면 편안하게 자택에서 임종하시기를 바라는지 물으셨다. 현대 의료에 익숙한 나는 당연히 상태가 너무 좋지 않으시기 때문에 중환자실에서 지켜보며 집중 치료가 필요해 보이는데 이대로 방치하는 게 아닌가 너무 속상하고 원망하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그럴만한 상황에서 내가 고집을 피워 중환자실에서 집중 치료를 한다고 한들 경제적으로나 여러 여건에서 부담을 지는 것은 내가 아닌 그 가족들이었다. 나는 이러한 현실을 너무 부정하고 싶었지만 결국은 가족들의 선택을 따르기로 했고 간호사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하기 시작하였다. 머지않아 영면에 드실 텐데 라는 마음으로 내가 무엇 하나라도 더 해줄 수 있고 편안하게 해 줄 수 있는 방법들을 찾기 시작했다. 하지만 잘 떠오르지 않았고 고작 내가 해드린 것은 방문을 여러 번 해서 활력징후와 혈당을 측정하고 어르신의 안부를 물으며 가족들에게 어르신과 충분히 이야기를 나누게 하는 것 밖에는 없었다. 


  간호사로써 준비되지 못한 것이 많이 속상한 며칠을 보내었다. 내가 가장 생각을 많이 했고 고려했던 사안은 어르신이라면 과연 어떤 것들을 원하고 계시는가였다. 어르신께 해드릴 수 있었던 것은 없었고 만약 원하시는 부분이 있다면 그것을 우선적으로 해드릴 수 있는 것이 가장 빠른 간호수행이었기 때문이다. 이미 대화는 원활하지 않았고 의식마저 떨어지는 상황에서 어르신께 직접 여쭈어 볼 수는 없었고 대신하여 보호자와 오랜 시간 이 주제에 대해 대화를 나누었다. 어르신은 고령이심에도 불구하고 머리에 염색도 하시고 소싯적 사회적으로 활발하신 분 같아 보였다. 보호자에게 물으니 '굉장히 인기도 많으시고 원체 활발하신 분이었어요.'라고 하셨다. 그러면 어르신 마지막은 재미있게 마감하는 것이 도움이 될까 혼자 고민에 빠졌었다. 


  그리고 마침내 어르신은 자택에서 고요하게 임종을 맞이하셨다고 가족들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동안 보호자와 수차례 전화통화를 주고받으며 안부를 물었으나 항상 되돌아오는 말은 계속 잠만 주무시려고 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때 나는 어르신께서는 의지를 놓아버리신 걸까? 생각을 했었는데 막상 돌아가셨다고 하니 마음이 가라앉아 고요한 순간이었다.


  나는 원장님께 말씀드렸고 예정되었던 사망진단서를 발급하러 방문을 다녀오셨다. 사람은 늘 죽음 앞에서 평화로울 수는 없는 것 같다. 간호사로써 임종을 많이도 지켜보았지만 방문하고 있는 분이 자택에서 임종을 하는 경험은 우울하게도 만든 경험이었다. 집에 돌아온 나는 고요히 어르신께 묵념하며 마음으로 메시지를 전했다.



‘그동안 고생 많이 하셨다고, 며칠이지만 제가 해드린 것이 없어 죄송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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