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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상목 Jun 05. 2023

죽음을 준비한다는 것

웰빙과 웰다잉 중간에서

  웰다잉(welldying)이 한 때 사전의료연명의향서를 작성하는 분들이 많이 있었다. 웰빙(wellbeing)은 건강하게 잘 사는 것이지만 웰다잉은 나의 죽음을 선택하고 존엄하게 동면에 드는 것이다. 방문의료는 두 가지 주제를 모두 다루는 것이기에 현대 의학보다는 좀 더 폭넓은 개념을 가진다. 조금 불편하지만 건강을 유지하면서 생활하기 위한 방법과 그리고 생을 마감할 때 생전에 미리미리 준비하게 도와주는 것, 마지막으로 생을 마감하기 단계에 왔을 때 대상자와 가족에게 충분한 정보를 안내해 주는 것까지 방문의료에 포함한다. 방문의사가 "이제 마음의 준비를 하셔야겠습니다."라고 말하는 순간 가족들은 대담했고 나 혼자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경험을 했었다. 건강하게 살다가 존엄하고 건강하게 다시 되돌아가는 이야기이다.





  침대에 오랜 시간 있다 보면 우울한 시간을 보내는 분들이 참 많았다. 이렇게 살아서 뭐 하냐, 혼자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등의 이야기를 들을 때 처음에는 함께 마음이 가라앉았지만 시간이 조금 지난 후에는 너털웃음으로 웃으며 넘기게 되었다. 우울한 이야기를 하다 보면 끝이 없다는 것을 알기에 분위기에 너무 머물러있지 않고 반사적으로 다른 행동을 하거나 질문을 하곤 했었다. 하지만 언젠가는 꼭 한번 직면이 필요할 때가 있었다. 방문의료 중에서 영정사진은 준비하셨는지 물어보고 사전의료연명의향서라는 것은 혹시 들어보셨는지 안내할 것들이 참 많다. 말기암 환자와 같이 호스피스는 얼마나 알고 계신지 죽음은 자택에서 원하시는지 등등 이제는 방문의료로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 같이 결정해야 하는 것들이다.


  방문진료나 방문간호로 이제는 오시지 않아도 된다는 전화는 대부분 임종하셨을 때였던 것 같다. 방문하는 의료진이나 많은 전문가 분들이 상황이 조금이라도 악화될 때 응급실이나 병원으로 가셔야 한다는 이야기를 참 많이 하지만 이미 임종이 가까워져 있다면 다른 이야기가 되었다. 오히려 가족들과 대상자가 병원에 가시길 거부하기도 했다. 방문의료팀은 자택임종을 준비하고 그것을 미리 안내하는 길라잡이 역할도 필요했다.

사전의료연명의 항서와 호스피스와 같이 그래도 많이 보편화된 것들은 스마트폰에 검색을 조금만 하면 쉽게 알 수 있지만 자택에서 임종했을 때에는 많은 정보가 있지는 않았다. 그러다 보면 가족들과 대상자는 당연히 방문의료팀에게 의지할 수 밖에는 없었다.


  그래서 정리된 내용을 전달하기 위해서 이러한 경험이 있는 분들에게 더 많이 물어보고 정보를 최대한 찾아보는 것 같다. 예를 들면 임종을 위한 장례식장을 미리 알아본다던가 최근 6개월 이내 진료를 한 의사가 있는지 119를 부르는 것이 아니라 영현을 모시고 갈 이송수단 등등 준비해야 할 것들이 꽤나 많기 때문이다. 가족이 많은 집은 준비를 하더라도 가족들이 지향하는 문화가 있기 때문에 결정하는 일도 보통이 아닌 것 같았다.

그런 과정들이 결정되어지는 동안 영면에 들었다는 소식을 접한 의료진들은 여전히 분주하게 움직여졌다. 코로나감염증을 확인하기 위해 코로나가 음성이라는 것을 확인하는 검사를 진행하고 사망진단서를 작성했으며 외인사가 아닌 병사를 처리하기 위한 행정절차도 진행하여야 했다.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고 난 다음에 우리가 한 절차가 대상자에게 존엄했는지에 대한 물음이었다.


  대상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대부분 편안하고 존엄한 집에서 영면에 들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현실은 건강상태가 좋아지지 않으면 바로 병원부터 찾고 병실에서도 더 악화가 되면 중환자실(집중치료실)로 이동해서 치료를 받아 결국 사망에 이른다. 생존을 위해서 혈압을 올리는 승압제와 인공호흡기 치료 등으로 살아생전 대상자의 의견을 얼마만큼 반영되었나 되짚어 보게 된다. 가족들은 의료기관에서 사망하는 것이 어찌 보면

절차상 쉬운 방법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대상자와 충분한 논의와 준비를 했는지는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은 까다롭고 방법을 잘 모르고 가족들을 고생시키고 싶지 않아서 대상자도 가족도 이야기를 쉽게 꺼내 놓지 못한 현실이기도 하다.


  나 자신이 주도성을 가지고 함께 죽음을 대비한다는 것은 웰빙과 이어지는 과정 같다. 그래서 현실에 좀 더 충실하게 살아갈 수 있고 혹여 어떤 일이 생길지라도 미리 생각해 본 적이 있어 결정하는 과정이 그리 힘들지 않기 때문이다. 다가오지 않는 문제를 가지고 미리 걱정하는 것은 시간낭비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물론 계셨다. 현실을 살아가기에도 바쁜데 먼 미래를 바라보기에는 우울하고 당황스러운 주제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방문의료진으로 생각하는 것은 현실을 즐기도 바쁘게 지내다가 어려운 상황은 늘 갑작스럽게 찾아오기 때문에 이러한 대비도 필요하다고 여겨졌다. 그리고 특히 고령층이면서 독거로 계시는 분들은 더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미리 정보를 알려드리는 것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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