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기념사진
다행히도 많은 분들을 만나 오면서 아쉬운 작별을 한 분은 몇몇 분 계시지 않았다.
현대 사회에서 이제 60세는 젊은 축에 속하는 연령이 되었다. 심지어 조기 축구회에서 활약하시는 80대 할아버지, 경로당의 밥상을 담당하시는 80대 할머니들을 만날 때면 할아버지와 할머니라는 호칭은 어색하기만 하다. 하지만 방문의료라는 네 글자를 만나게 되면 일단 위에서 말한 건강과는 거리가 좀 느껴진다. 외부로 나가기 위해서 많은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에서부터 벌써 차이가 느껴진다.
나이가 적고 많고를 떠나서 영정사진을 미리 준비한다는 것은 너무 이상한 일이다. 요즘 같이 다양한 사고와 사건들을 마주할 때마다 죽음에 대해 한번쯤 생각해 보게 되는데 보험부터 장례식까지 죽음과 관련해서 아주 다양한 생각들이 떠오르게 된다. 세월호, 이태원 참사사건들을 보면서 안전불감증이라는 단어가 떠오르기 시작했고 너무 당연한 것들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은 사회를 불안하게 만든다. 준비되거나 예측되지 않았기에 슬픔은 오래가고 분노도 다양하게 표현되는 것 같다.
침대에서 생활하시는 다양한 분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자연스레 죽음이라는 단어도 노출된다. 특히 사전연명의향서나 영정사진, 유언과 같이 장례를 떠올리는 단어들도 자주 등장하는데 의료진들도 얼굴이 뜨거워지곤 한다. 기억에 남는 한분은 영정사진을 미리 찍어놓아야 자신이 갈 때 봐줄 사람한테 미안하지 않을 것 같다고 하셨는데 아무것도 하지 못했었던 적이 있었다. 사실 간호사로 만나다 보면 얼마만큼 준비하셨는지 궁금했지만 차마 물어보지 못했었는데 적극적으로 표현하심에 당혹하기도 했었다. 자기 자신이 아닌 누군가를 위해서 가장 최근의 모습을 기억에 남기겠다는 의지가 새로운 경험으로 자리매김했다.
장례식을 다니다 보면 고운 한복을 입고 활짝 웃는 모습의 영정사진을 마주할 때 비로소 고인이 되셨음을 인식한다. 그리고 그 잔상은 오래간다. 그러기에 할 수만 있다면 더 많이 준비하고 싶었을 그분의 심정도 이해가 된다. 집에만 계시다 보면 여러 가지 생각들을 하시는 과정을 만나게 되는데 점점 좋아지는 상황에서도 좋은 작별인사를 떠올리시거나 말로 표현하실 때마다 어떻게 도와야 할지 고민할 때가 많았다. 오래오래 사실 수 있다, 지금 좋아지고 계신다고 표현하지만 오히려 다양한 선택권을 드려야 하나 스스로 반문하게도 하였다. 무조건 신체나 정신이 건강하게 해 드리는 것이 진정한 방문의료를 실천하는 것인지 고민하게 되는 시점이었다.
결국 영정사진을 찍지는 못했다. 그리고 아쉬움이 남았다. 적극적으로 사전연명의향서를 소개하고 고인이 되기 전에 결정할 수 있는 것들을 안내했더라면 어땠을까 생각이 들었다. 물론 다양한 직역과 방문의료를 진행하시는 분들은 이미 하고 계시겠지만 의료라는 것을 실천하며 죽음을 함께 담아내는 이야기가 아직은 어색하다. 그래서 연령을 막론하고 조금 무거운 주제이지만 나눠보면 좋은 주제라고 생각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