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명
사람은 살다가 현실과 직면할 때가 있다.
방문의료를 다닐 때에도 예외는 아니다. 방문가방을 들고 다니다 보면 여러 상황을 만날 때가 많은데 그럴 때마다 정말 한 사람의 삶 속으로 들어간다는 것을 실감할 때이다. 특히 다양한 사연을 만나다 보면 너무나도 현실적인 부분과 마주칠 때가 있었다. 이는 방문의료를 받는 사람들이 느끼는 부담감도 크겠지만 방문을 다니는 사람들도 종종 심리적인 압박감으로 다가올 때이다. 좀 더 적극적인 치료와 같이 선택지가 다양하지 않은 상황에서 우선적으로 선택해야 할 때 특히나 더더욱 마음이 무거워지는 것만 같았다. 치료를 받아야 하지만 현실적인 문제에 맞닿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여러 상황이 있겠지만 어깨가 무거워지는 부분은 크게 두 가지였다.
먼저, 적극적으로 의료가 필요해 보이지만 치료비를 감당하기 어려워 끝내 방문의료를 자택에서 임종을 준비하기 위한 과정으로 선택한 집이다. 의사가 보았을 때 추가적인 검사를 권유하고 항생제라도 처방하려고 하지만 그 마저도 필요 없다는 분을 만날 때마다 조금 답답한 부분이 있다. 보통 이럴 경우에는 어떠한 것을 제안하기도 전에 거절하고 자신이 생각하는 것들을 요청해서 그 범위를 벗어나는 것들에 대해 부정적이었다. 의료의 범위를 결정하는 것 또한 스스로이기에 여러 번 권유는 하지만 끝내 설득시키지는 못한다. 여러 번 방문을 진행하며 건강 상태가 크게 변하지는 않았지만 간혹 응급한 요청이 와서 방문하거나 응급실로 안내할 때에는 머릿속에 아찔함이 스쳐 지나간다.
그리고 적극적인 치료를 원하면서 충분한 금전적 상황이 되지만 보건 정책이나 제도를 모르는 것이 많아 그냥 스스로 방치하는 집이다. 독거의 경우 이러한 사연이 많았는데 도움을 요청하고 싶지만 집을 찾아오는 사람이 그저 요양보호사 밖에 없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집이 있다면 거동이 불편해 신체활동을 거의 하지 못해 다른 사람의 조력으로 생활하는 집이었다. 그런데 집에는 보장기구가 많아서 아이러니한 상황이 아닐 수가 없었다. 집에 있는 보장기구만으로도 활동을 셀 수 없이 할 수 있는 것이 많은데 기구들은 한 곳에 모여서 먼지가 수북하게 쌓일 정도였다. 기본적으로 의지는 높지만 어떻게 할 수 있는 방법들을 몰라서 자포자기한 분들이었다.
정반대 되는 상황이다. 치료비라는 것은 풀기 어려운 숙제와 같은 것 같다.
때때로 나 자신이 무언가를 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 그 상황은 정말 절실함이 녹아져 있기 때문이다. 당장 무언가를 하지 않아서 어떤 일이 생길까 하는 두려움 그리고 그냥 내버려 두었을 때 더 나쁜 일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 휩싸이며 다른 방법들을 찾기도 한다. 지원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보고 가장 쉬운 방법은 무엇인지 고민해 본다. 다행히도 나는 취약계층을 지원하는 기금을 마련해서 운영하는 곳에서 방문의료를 진행했었기에 방법을 찾다가 마지막 선택지가 있었다. 이 부분에 있어 감사함을 느낀다.
치료비, 현실과 맞닿아있는 속에서 존엄을 수호하는 사람으로서의 숙명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