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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담 하상목 Jul 09. 2023

불안, 정답 찾기

언제나 불안해하며 힘들어하는 나에게



  나는 매일 마음속으로 다짐하는 글이 있다. 바로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고 정답은 없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오랜 시간 불안한 원인을 찾기 위해 내 마음속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내가 혹시 잘못된 선택을 하면 어떻게 할까는 내용이었기 때문이었다. 인간관계에서도 그 사람은 틀렸어 혹은 내가 당시에 그렇게 했어야 하나라고 생각하며 결정하거나 생각한 것에 실망하며 불안해하고 타인과 자신을 비난하기 바빴다. 그렇게 흑백이론에만 집중하며 맞다 틀렸다에 집중하다 보니 스스로 고립되고 주변에서도 불편함을 느낄 때가 있었다. 완벽한 선택을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과 실패를 하지 않을까 하는 수치심, 더 나은 선택지가 있을 것이라는 두려움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져 정답을 찾고야 말겠다는 의지는 스스로 불구덩이 속으로 밀어 넣고 있었다.


  호기심 많고 잘 웃던 아이는 어디 가고 합격, 불합격에만 집착하는 사람으로 성장했을까. 생각해 보면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의무교육을 받고 대학을 진학하는 과정 속에서 5지선다 객관식 답가지, 주관식 기술로 시험지를 푸는 것에 익숙했다. 어떤 과목이든 시험을 치러야 하고 문제를 풀며 답을 찾아내야만 생존하는 서바이벌 생존게임과 같았다. 그리고 사회에 나와서도 업무의 규칙과 규율을 외우고 그대로 따라야만 하루의 정답을 모두 푼 느낌이 들었다. 만약 하나라도 정답을 찾지 못한 날이면 현실에서 뒤처지지는 않을까 생각하며 잠을 뒤척이거나 잊기 위해서 다른 무언가를 찾곤 했다. 이미 익숙해진 방법이 습관과 행동화되어 성인이 된 지금까지도 벗어나지 못한 것을 보았을 때 교육이 얼마나 중요한지 생각하게 된다.


  자신이나 타인을 비난하는 마음의 소리가 들리면 옳고 그름을 따지면 마음이 괴롭다고 수십 번 되뇌지만 그 과정은 쉽지 않았다. 얼마 전 수년동안 구매하지 않고 기다렸던 아이패드를 득했다. 처음에는 너무 기뻐 어찌할지 모르다가 시간이 조금 지나자 같은 금액으로 노트북을 샀어야 했었나 또 완벽한 정답을 찾는 나를 발견했다. 이미 수년간 기다려왔지만 지금 한 선택이 내 인생에서 오점이 되지는 않을까 유용성을 따지기 시작한 것이다. 어린아이에게 그저 장난감을 사주면 기뻐하고 소중히 다루며 오랫동안 간직하려고 애쓰던 순수하던 모습은 어디 가고 인색하고 만족하지 못하는 나로 변신하게 되었을까. 좀 더 유연한 생각과 긍정적인 생각들이 필요했다.


  나 자신과의 관계가 좋기 위해서 그리고 창의적인 생각들을 해나가기 위해 변화해야 했다. 사회초년생이었을 때에는 업무의 규칙과 매뉴얼을 숙지하는 것에 시간과 노력을 투자했다면 이제는 문제를 해결하고 다각도로 바라는 시각과 창조성이 필요했다. 그리고 인생을 대하는 태도가 곧 자신과 얼마나 잘 지내는지에 따라 바뀐다는 것을 인지한 후부터였다. 동전의 양면은 언제나 존재한다. 그것을 받아들이고 경험치가 쌓이면 곧 지혜로 쌓여 갈 것이라는 믿음이 필요하다. 누구라도 처음 겪는 일들이라 결정하기 어렵고 좋은 선택이라고 할지라도 100%의 만족은 없다. 지금 당장의 매우 만족이라고 할지라도 몇 년 후 혹은 나의 인생에서 후회로 변하기는 익숙하게 경험하기 때문이다.


  얼마 전, 내 마음의 변호사를 고용했다. 어떤 행동을 두고 합법인지 불법인지 스스로에게 따지는 판사와 검사들만 내 머릿속에 가득했다. 결정한 사안에 시시비비를 가리며 기소유예를 때리기도 하고 가혹하게도 무기징역까지 스스로에게 징벌하기 일쑤였다. 그리고 실수하지 않으려고 방법을 찾고 수치심과 죄책감을 가지지 않기 위해 온종일 불안했다. 살아가기 위해 불안은 삶의 원동력이 되어 주기도 하지만 지나치다 보니 건강을 점차 잃어가며 내 인생을 좀 갉아먹고 있었다. 그리고는 살기 위해 그 모든 검사와 판사를 모두 해고하고 나를 따뜻하게 대변해 주고 지지해 줄 수 있는 변호사를 새로 고용했다. 그 변호사는 처음 만나기 때문에 알아나가고 있는 단계이지만 이전보다 좀 더 해방된 느낌을 받으며 지내고 있다.


  가끔은 해고한 판사와 검사가 무급으로 내 마음속으로 들어와 열심히 일하지만 그것을 알아차리고 퇴장시키는 것이 일으로 다가올 때가 있다. 고집이 워낙 세서 나가라고 소리쳐도 묵묵히 일하는 그들을 볼 때마다 나 자신이 스스로에게 얼마나 가혹한 삶을 살고 있었는지 알게 되는 거울처럼 느낀다. 그러한 과정이 있었기에 지금 현재를 살아가는데 밑거름이 되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 단계를 넘어야 다음 단계가 다가오고 있다는 것도 이미 잘 알고 있다. 이제는 나 자신을 잘 돌보고 선한 영향력을 사회에 나누기 위해 노력하고 연습해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평온과 자유를 느끼며 해방감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며 조금 불안해도 괜찮은 나를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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