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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담 하상목 Apr 19. 2024

혹시 내가 아프다면?

우리는 누구나 돌봄이 필요한 존재이다.

  얼마 전, 발목 수술을 한 친구의 일일 보호자로 함께 있어 주었다. 아직 청년이라 누군가 돌본다는 경험이 없지만 가장 가까이에서 세심한 도움을 준다는 것은 생각보다 만만치 않은 과정이었다. 그중에서 가장 속상했던 점은 나는 그 친구를 어떻게 도울지 항상 생각하고 배려하지만 돌봄을 받는 사람에게는 어색하고 불편한지 내색하진 않지만 기분이 나빠 보이는 상황을 마주했을 때였다. 그 친구도 성인이 된 이후로 돌봄을 받기는 처음이겠지만 나 역시도 보호자가 되어 돌보아 준다는 것이 처음이라 시행착오가 많았다. 내가 아무리 간호사로 지내고 있지만 발목수술을 한 사람의 샤워를 돕고 욕실에서 미끄러지지 않기 위해 방법을 찾으면서 수술 부위에 물이 들어가지 않게 끔하는 과정을 돕는 것은 간호학 전공과는 거리가 있었다. 차라리 발목수술 부위를 베개로 올리고 얼음주머니를 만들어 수술 부위에 대주는 과정처럼 기본간호를 하는 것은 차라리 쉬운 편에 속했다. 이러한 돌봄을 직접 제공해 보는 과정이 우리 모두는 돌봄이 필요한 존재라는 것을 다시 알게 되었고 나 또한 그것에서 자유롭지 못한 과정이라는 것을 다시 상기하게 되었다.





  코로나 시대를 경험하며 우리는 많은 것을 경험했다. 사회적 거리 두기로 돌봄의 공백을 경험하기도 했고 1인 가구의 돌봄이 얼마나 필요한지 사회적 관계망을 재점검하는 시기를 보내기도 했었다. 특히 코로나 확진자가 엄청 많아 비대면 진료와 재택치료는 또 하나의 외로움으로 다가오기도 했다. 몸이 아프면 당연히 누군가의 조력과 지지를 받아야 하지만 이와 반대로 더욱 고립되고 외로움을 느끼는 과정들을 경험하며 더 아프게 만들기도 했었다. 코로나 확진자가 가장 많았던 2022년 상반기에 의료기관에 근무 중이었는데 돌봄과 관련해서 참 많은 사연들이 기억에 남았다.


“약 좀 타다 주세요.”

코로나19 바이러스에 확진이 되면 그 시간부터는 외출이 아예 되지 않았고 의무 격리기간이 존재했다. 시간이 지나갈수록 약을 받으러 약국이나 진료를 위해 의료기관에 방문하는 것은 예외사항으로 점차 완화되기도 했지만 그 과정까지는 정말 많이 사연이 있었다. 코로나 확진되고 집에서 전화로 진료받는 재택치료로 의사와 상담은 가능했지만 약을 받으러 약국에 갈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물론 보건소와 퀵서비스로 약을 배달해주기는 했지만 길면 며칠 걸리기도 했었다. 특히 1인 가구들은 열이 많이 나고 기침을 많이 해서 가슴까지 아팠지만 약을 기다리기 힘든 상황도 많았다. 진료를 한 의사도 약을 빨리 받아야 할 것 같다며 약을 대신 타다 줄 가족이나 친구, 친지가 있으면 빨리 전달받아서 약을 복용하라고 했지만 주변에는 아무도 없다며 약을 좀 타다 주면 안 되겠냐는 사연이 참 많았다.


  그 흔한 타이레놀도 하필이면 이럴 때 집에 없는 것인지 열이 나던 몸살이 있든 간에 쉽게 구할 수 있었던 약도 하필이면 지금 당장 필요할 때 보이지 않았다. 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는 속담이 너무나도 당연하게 떠오르기도 했다. 아픈 몸을 이끌고 이곳저곳을 찾아보지만 항상 필요할 때 가장 잘 보이지 않는 법이다. 이럴 때 나를 도와줄 사람 딱 한 명이 있더라면 어땠을까 떠 올려보기도 한다. 격리된 상황에서 스스로 식사를 해결하고 가사를 하는 과정을 토로하며 증상을 완화해 주기 위한 진료의 시간과 감정을 터놓고 알아주는 상담의 시간도 필요한 과정이기도 했다. 그 과정 속에서 건강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나를 도와주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은 얼마나 고마운 것인지 감사해야 할 것들에 대해 직접적인 경험을 하게 만드는 과정이 바로 코로나라는 것이 아닐까 회고해 보았다.


  돌봄이라는 과정 속에 돌봄을 직접적으로 받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돌봄 받는 과정 속에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이 있었냐는 질문에 당황하는 내색이 있기는 했지만 듣고 보니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힘들었던 것은 가까운 가족이나 친지에게 소변과 대변과 같은 것을 내비쳐야 했을 때라고 대답했다. 간호사들은 섭취량과 배설량이라는 기본 간호과정이 있기에 아무렇지도 않았지만 실제로 환자가 되면 당연한 것들이 부끄러워하거나 노출되기 힘들어하는구나 새롭게 알게 되었다. 그리고 전적으로 의존하게 되었을 때 민폐를 끼친다는 미안함이 들 때 심적으로 힘이 들었다고 했다. 그래서 애써 도와주었음 하는데도 괜찮은 척하며 화를 냈던 적이 참 많았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 누군가에게 조력을 받는 것 또한 용기가 필요한 과정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와 반대로 돌봄을 해주는 사람들이 힘든 점도 참 많이 놀라운 것들이 많았다. 그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것은 이것마저 다해주게 되면 상대방이 기분 나쁠까 봐 애써 말하지 못한 것들이 많았다는 것이었다. 누군가를 돕고 돌보아 주는 것만으로도 참 고귀한 행동이지만 그 속에서 존중하면서 도움을 준다는 것은 좀 더 난이도가 있는 과정이지 않았을까 생각해 보게 되었다. 나의 기준으로 상대방을 돕는 행동이지만 반대로 도움을 받는 입장에서는 하나도 도움이 되지 않았는다고 생각할 때 보호자로서 돌봄을 제공하는 사람으로 적지 않은 갈등이 생길 것만 같았다. 빠른 회복을 위해서 맛있는 것을 많이 먹기 바라지만 도움을 주는 입장에서는 맛이 없지만 체력을 보강하는 음식을 제공할 때 힘든 부분을 잘 표현하는 상황 같았다.


  “어디까지 하라는 거예요?”

돌봄 과정 속에는 참 많은 갈등 상황에 놓인다. 어떤 부분에서는 아주 작은 것 마저도 도와주어야 하는 것이 있는 반면 재활 단계에는 최대한 조력을 받지 않고 스스로 해결해 나가는 단계가 존재하게 되는데 이 시점들 속에서 내적 갈등을 경험한다. 돌봄이라는 과정이 모든 것을 다해주는 것도 그렇다고 최소한으로 해주는 것도 아닌 그야말로 정도가 없다는 것에서 답을 찾아 나가는 것이 가장 힘이 드는 과정 같다. 특히 다른 사람들이 ‘이것까지 해줘?’ 혹은 ‘이 정도도 안 해주면 어떻게?’라는 식의 반응을 들을 때 돌봄 제공자의 입장에서 3자가 무엇을 알겠냐며 속상한 점을 토로할 때 더더욱 갈등을 느끼는 것 같다. 외국의 사례처럼 충분한 의사소통을 하면서 도와줄 때 도와주어도 되겠냐고 먼저 묻는 절차도 없고 반대로 적극적으로 이것을 도와달라 요청하는 문화가 우리나라에는 아직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돌봄이라는 과정은 소중하지만 갈등을 느끼는 다소 힘든 것이 아닐까.


  “그럼에도 난 너가 있어서 고마워”

하루 보호자 역할을 하면서 인상을 찌푸리기도 했고 빨리 집에 가고 싶다고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옆에 있어줘서 고맙다는 말을 들었을 때 가장 기분이 좋았다. 친구를 얼마나 위하는지 말로 표현하지 못할 만큼 챙겨 주었지만 내 집도 아닌 곳에서 친구 집의 구조를 바꾸어 가며 편하게 생활하게 해 주려는 과정은 지나친 친절이었다. 친구는 현재 생활여건에서 변화를 주기보다 다른 방법을 찾기를 더 바라왔지만 나의 에너지를 바꾸는 방법에 사용하는 것이 부담을 느꼈다고 했다. 식사를 해주고 샤워를 하기 위해 비닐을 씌우는 과정만으로도 충분히 고맙고 미안한데 발목 수술을 한 자신 때문에 이것저것 하고자 하는 나에게 미안했다고 했다. 사실 옆에 있어주는 것 자체 만으로도 고마웠다고 했다. 간호사로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하기보다 보호자 역할을 하기 전에 좀 더 많은 대화를 나누지 못해 많이 아쉬웠다.


  우리는 태어나서 부모님으로부터 돌봄을 받는다. 성장하면서 자기 돌봄으로 이어지면서 다른 사람으로부터 다른 사람으로부터 돌봄은 거리가 멀어지며 다소 어색해진다. 그러다 사고나 질병으로 돌봄을 받기도 하다 나이가 들면서 결국 다시 돌봄의 품으로 다시 돌아간다. 이때 가장 중요한 핵심은 우리는 누구나 돌봄을 받는 존재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애써 돌봄을 피하려고 의존하지 않으려 애쓰다 보면 마음이 아프기도 하고 더 큰 사고로 이어지기도 하며 가장 중요한 사회적인 인간관계망을 잃는 장면을 너무 많이 보았기 때문이다. 차라리 돌봄을 받기를 선택하고 그들과 관계를 만들어 나가며 힘든 것을 같이 해결하는 것이 더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이라는 것을 많이 느낀다. 사람은 누구나 외로움을 가지고 살아가는데 돌봄이라는 과정에서는 반드시 함께 가져가야 할 과제물이다. 아픈데 외롭기까지 하면 반드시 아픈 곳이 더 많아진다는 것을 서두에 코로나 시대를 통해 경험했다.


돌봄이라는 고귀한 과정과 행복한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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