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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담 하상목 May 14. 2024

감사, 삐뚤빼뚤한 내 글씨

디지털이 아니었으면 작가를 꿈꾸어 보기라도 했을까

  부끄럽지만 나의 글씨는 악필로 유명했다. 어느 정도였냐면 중학생 시절 수학괴목을 담당하셨던 담임 선생님은 글씨가 날아간다는 이유로 나에게 체벌을 많이 했었다. 나도 글씨를 잘 쓰려고 노력을 했었지만 그 당시에는 잘 고쳐지지 않았고 청소년기에 자존감만 떨어지기만 했었다. 과거를 되돌아보면 필기를 빨리 끝내고 쉬고 싶다는 생각에 급하게 적어 내려 가느라 그랬었던 것 같다. 글씨가 나의 최고의 약점인 내가 작가를 꿈꾸는 나의 모습을 그때는 상상이나 했을까.




  성인이 된 지금은 많이 교정되었지만 급하게 메모를 하다 보면 이전에 악필이 가끔 생각나곤 한다. 그럼에도 어린 시절부터 글쓰기가 좋아 꾸준히 글쓰기 공모전이나 글짓기 대회를 나가 산문을 쓰곤 했었다. 시와 같이 함축적인 내용은 잘 다루지 못해서 어떤 하나의 현상을 보고 나의 생각을 주장하는 산문이 훨씬 마음에 들었다. 한 바닥씩 원고지를 채워나가는 재미도 있었고 내가 생각하는 것을 마음껏 표현하는 자체에 매력을 느낄 수 있었다. 맞춤법이나 띄어쓰기와 같이 국어 시간에 배우던 것을 직접 글로 써보고 이렇게 쓰면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에는 왠지 뿌듯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글쓰기를 좋아했던 시기에도 고난은 있었다. 교내 산문 경진대회가 열려 상을 타보고 말겠다는 의지와는 다르게 좌절을 맛보기도 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내 글씨가 악필이었기 때문이었다. 국어 선생님들이 다 모인 그 자리에서 나의 글을 심사하기 싫었는지 1초 만에 하이패스로 지나는 모습을 보고 말았던 것이었다. 악필이라는 이유만으로 나의 원고지가 읽히지도 않은 채 그냥 넘어가는 것을 보고 솔직히 상처받았다. 삐뚤빼뚤한 내 글씨가 더 이상 글쓰기에는 재능이 없나 보다 생각하게 되었다.


  디지털 시대, 컴퓨터가 생긴 이후로 직접 필기하는 일이 급격하게 줄어들게 되었다. 특히 요즘은 글쓰기 귀찮을 때나 빨리 메모해야 할 때 스마트폰의 음성인식 기능을 아주 잘 활용하곤 한다. 내가 좋아하는 강연이나 세미나에 참여해서도 일일이 메모할 필요 없이 음성인식 기능하나면 웬만한 필기 기능도 대체해서 사용하고 있다. 이런 시대를 잘 만난 것일까 글씨를 직접 쓰지 않아도 여러 매체를 통해 글짓기가 가능한 시기에 나의 열망은 다시 타올랐다. 더 이상은 그 아무도 나의 글씨를 보고 악필이라며 손가락질을 받지 않으면서 글을 쓸 수 있다는 사실은 참 매혹적으로 다가왔다.


  글을 하나씩 모으다 보니 어느덧 브런치 스토리 작가가 되어 있었고, 나의 경험을 정리한 책을 발간해 보는 꿈도 생겼다. 중학생 시절 내가 가장 존경했던 국어 선생님께서 주셨던 책을 보며 언젠가는 나도 꼭 작가가 되어보겠다는 감춰두었던 목표가 떠올랐다. 아마도 그 경험이 없었더라면 의료라는 값진 현장 속에서 느꼈던 것을 생생하게 기록하지 못했을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글을 하나씩 발간할 때마다 생동감이 넘친다. 나중에 훗날 글을 하나씩 모아 책으로 발간하는 그날이 기대가 된다.


  지금은 모교의 교장선생님이 되신 존경했던 국어 선생님께,

나의 삐뚤빼뚤한 글씨를 극복할 수 있었던 디지털 시대에 참 감사하다.



PS. 아직도 모교에 계시는 담임선생님이자 수학선생님! 저한테 왜 그러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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