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가을 일기
2023/09/01
우리의 9월은 궁디가 열었다. 바쁜 궁디는 언니인 나도 자주 못 만날 정도다. 우주랑 같이 만나니 온전한 대화의 시간도 없을 것 같아 마음을 편지에 욱여넣어봤다. 열심히 두 장을 썼는데.. 설마 설마했는데 까먹고 안 가지고 갔다.허허.
동생이 일하는 곳은 우리집과 한시간 정도 떨어져있어 작은 여행을 하는 것 같았다. 점심으로 동생이 칼국수를 추천했다. 칼국수? 의문이었으나 따라갔다. 로컬의 입맛맹키로 믿을만한 것은 없다. 한 후루룩을 하자 손으로 직접 만든 면이 감탄을 불러일으켰다. 사진을 보니 배가 고프다.
오늘은 동생의 공간에서 도예 체험을 하기로 했다. 같은 일을 반복하는 장인의 길에 쉼을 줄 수 없음이 신경 쓰였으나, 동생이 사랑하는 작업의 일부를 해보는 것만으로 조금이라도 더 동생의 하루를 이해할 기회인 것 같아 오케이!했다. 그런데 이런 곳에서 일한다니 머리가 시원해질 것만 같다.
우주는 접시와 컵, 망구는 컵 두 개, 나는 컵 하나를 만들기로 했다. 나는 처음에 하지 않겠다 했는데 시작하자마자 나도 모르게 이내 몰입했다. 나와 우주는 급한 성정으로 재빠르게 마무리했는데 남편은 뜻밖의 도예혼을 발견하여 오래 오래 열작했다.
남편이 도예 삼매경에 빠진 동안 우주와 동생과 나는 경기도자미술관을 산책했다. 결혼하고 동생과 멀리 살아 그녀의 삶을 들여다보기 힘든데, 오늘 참 여기 잘왔네 싶었다. 부산에서 집을 주제로 한 작품을 보고 마음에 들었었는데 같은 시리즈물이 여기에도 있었다. 반갑고 귀엽다.
동생이 이후에 보내준 우리 컵들. 왼쪽이 내 것. 오른쪽이 우주의 것. 요즘 이 컵들로 마실 때마다 기분이 좋아진다. 이런 멋진 경험을 하게 해준 궁디에게 감사를.
2023/09/09
재연이가 균쓰와 함께 드디어 우리 집에 왔다. 재연이를 만나면 나의 가장 어린 모습이 나온다. 아마 그녀의 담백하고 솔직한 모습에 자연스레 나도 무장해제 되는 것이겄지. 언제든 재연이를 만나면 깔깔깔 깔깔깔 고등학생과 대학생 사이의 시간으로 돌아갈 수 있다.
집들이 선물을 콕 집으래서 집었다. 요즘 작가님들의 개성이 짙게 묻어난 접시들이 눈을 끌었는데 그 중 단연 내 취향인 접시 링크를 보내줬더랬다. (아마 재연이 취향과는 멀었는지) 이거 맞나 갸우뚱했다는데 나라면 진심일 것이거니 하며 사왔다고. 재연이는 나와 이름 빼고는 다른 것 투성이인데 난 그게 좋은가보다. 와중에 세트로 사다준 통 큰 아이.
틀딱 에디션이라고 과자도 사왔다. 웃긴 건 틀딱 에디션인데 우주가 너무너무 좋아했다. 마가렛, 야채 크래커, 빠다코코넛. 다음에는 우리가 재연이네로 가기로 했다.
2023/09/14
우주가 열이 나서 엄마가 SOS로 달려오셨다. 어느 집이나 마찬가지겠지만 아이의 고열은 비상사태다. 몸만 와도 감사한데 온갖 작고 귀여운 것들과 함께 오셨다. 내가 엄마를 좋아하는 많은 이유 중 하나는 엄마의 취향이 뚜렷하다는 점이다. 선물들을 보자마자 너무나 엄마 같아 웃음이 났다. 엄마는 내가 일을 마치고 돌아오자 마자 나랑 남편 피곤할 거라며 저녁도 안 먹고 가셨다. 증말 울 엄마는 신세대다. 피곤했긴 하지만 엄마랑 밥 먹는 게 좋은 나는 속상했다. 우주도 같은 마음인지 현관으로 뛰어갔다. 할머니가 밥도 안 먹고 가버렸어,하며. 그 덕에 조금이라도 바래다드렸다.
2023/09/16
우주가 뱃속에 있을 때 보고 못봤던 효정이가 오랜만에 집에 놀러왔다. 효정이로 말할 것 같으면 뭣 모르던 인턴 시절네 만난 같은 팀 동기로서, 내가 같이 일했던 또래 중 단연 일을 가장 잘하는, 거기다가 인성까지 천사같은 내가 만난 행운이다. 뼛속까지 내향인인 우리는 집에 박혀 있어 만남은 잦지 않으나 애정 어린 연락은 잦고 서로의 건강과 행복을 기도한다. 그런 그녀를 오랜만에 만나 얼마나 좋았던지. 자취생활이 오래인 효정이가 집밥을 먹고 싶다 해서 밥을 했다.
인연의 굴레는 신기한게 내가 홍대 쪽에서 좋아하던 빵집이 하필 효정이 집 앞으로 이사를 갔다고 한다. 누군가는 살며 꼭 만나야만 했다고 믿는다. 그렇게 소중한 인연이니 잘 붙들고 있는 것은 스스로의 몫이다. 지금처럼 은은하게 곁에 머물러야지.
2023/09/28
추석의 전반부는 시댁에서. 다음 날 파리로 출국하는 수진언니를 만나러 용산으로 갔다. 맛난 것 많이 먹고 맑은 하늘 아래 칠링했다. 용산에는 모래 놀이터가 있어서 언니가 선물해준 모래놀이세트와 함께 놀러갔다. 출국 전날인데 우주를 보러 와준 언니부부에에 감사를.
2023/09/29
진짜 소중한 소진이를 만났다. 너무나 보고 싶었는데 드디어 만났다. 소진이 또한 집순이라 만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만나면 어머어머 발동동 너무 좋다. 이 날도 계속 걸으며 수다 떨고 마지막엔 아쉬워서 역 앞에서 집에 가지 못하고 계속 이야기했다. 세상 엄친딸인 면모를 지닌 이 아이는 겸손하고 소탈하다. 그래서 만나면 편안한가보다.
소진이가 곧 오사카 여행을 가서 생일을 못 챙겨줄 것 같다고 선물 꾸러미를 사왔다. “나 오늘 친정 엄마 컨셉이야!”하며. 너무 고마웠던 건, 우리 엄마 선물까지 챙겼다는 거다. 나를 낳아주셔서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나는 이런 친구를 내게 주신 하나님께 감사할 뿐이다. 나도 그녀에게 그런 친구이기를, 다음 추석에도 잠시라도 보자는 약속이 지켜지기를.
2023/09/30
추석의 후반부는 친정. 사랑하는 울 할매를 뵈러 갔다가 윤구도 만났다. 죄다 인물 사진이라 올릴 수는 없는데 진심으로 반가웠다. 할매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내가 할매집에서 살 때 이야기를 자주 하신다. 나는 그냥 할매랑 살며 회사를 다니곤 한 것 뿐인데. 할매는 내가 밤마다 할매를 안고 잔 이야기, 비 오는 날에 나를 데리러 역까지 나오신 이야기를 사랑을 담아 해주신다. 할매 사랑해요. 건강하세요.
윤구도 오랜만에 일본에서 와서 꼭 봐야지 하며 봤다. 근데 더현대 그 사람 드글드글한 곳에서 많은 인원이 보니 윤구랑 우주가 둘 답지 않게 조용했다. 그래서 일주 후 다시 보기로 기약했다.
2023/10/1
우래옥을 사랑하는 내가 3년이 되도록 가지 못했다. 벼르고 벼르다가 드디어 갔는데 이게 무슨 일인가 대기 134번이라니. 포기하려는데 쿨한 울 엄마, “그냥 기다리지 뭐.”하신다. 그렇게 주변 을지로 탐방이 시작됐다.
세운상가 쪽에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니 너무나 멋진 곳으로 이어진다. 엄마와 오지 않았으면 가보지 못했을 곳.
그렇게 먹은 내 사랑 평냉. 엄마가 불고기랑 육회도 시켜줬다. 모두 미친 맛이었으며 나는 소원성취했다.
우래옥에서 먹고 있는데 이모가 다시은 자매와 우주보러 집에 왔다고 한다. 우주는 참말로 이모 복이 넘치는 친구다. 나는 이모가 하나여도 사랑이고 행복인데 우주는 좋은 어른들을 여럿 이모로 둘 수 있는 행운이 있어 다행이다. 이걸 읽고 있는 이모가 있다면 사랑하고 감사합니다.
2023/10/07
윤구나 남매가 집으로 놀러왔다. 윤구는 일본에서 유나는 부천에서 오니 정말 산 넘고 물 건너 온 거다. 둘 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자연스러움’을 지닌 이들이다. 노력해서 수이 얻을 수 없는 것이라 세상 부럽다.
우주가 고 사이 아팠어서 유디가 멜론을 보냈다. 하필 우주가 유디의 월급날 아팠다고 한다. 사실 과일을 까는 걸 귀찮아하지만 멜론이라면…. 그럴 가치가 있다. 한통 톡 깨고 먹어 이틀만에 압살했다(???? 유디도 멜론 같은 나날을 보내기를.
2023/10/08
이 날은 북키즈콘을 다녀왔다. 우주가 책을 좋아해서 곧 있을 우주 생선으로 책을 사주려고다.
이번에 가서 좋은 출판사들을 많이 알아와서 좋다. 신기하게 어떤 출판사의 한 책이 좋으면 다른 책들도 마음에 든다. 그래서 공유하는 내 마음에 든 어린이 출판사들.
- 여유당출판사
- 토끼섬
- 목요일출판사
- 노란돼지
- 나무의 말
- 밝은 미래
- 북극곰
- 페이퍼독
- 책 읽는 곰
- 소동
- 사계절
- 창비
- 문학과지성사
2023/10/13
내 생일, 운명의 장난으로 회사의 중요한 날 우주의 참관수업이었다. 띠로리. 어쩜 이럴수가. 남편에게 나는 생일 선물 필요없다고 우주 참관수업에 연차 써서 함께 해달라고 했다.
생일 이후 이모저모
이번에 내가 좋아하는 바디제품을 선물로 꽤 많이 받았다. 바디제품은 마법이다. 피곤한 하루에 좋은 향을 지닌 바디 제품을 쓰면 정말 온갖 하루의 고민들이 사라진다. 오늘(10/18), 목이 안나와 우주와 아침 병원에 갔는데 뛰어다니니 추워진 날씨에도 땀이 났다. 집에 가서 출근 전 따뜻한 향인 산마노 프리지아로 씻고 로션을 바르니 힘든 마음은 사라지고 없다. 향은 사람마다 느껴지는 게 다르다고 한다. 내게 프리지아는 생일 케이크 위 촛불을 불고 남은 향의 사랑스러운 버전이다. 쓰며 매일 여전히 생일 같다. 천천히 아껴써야지.
2023/10/15
다음 날인 월요일이 또 회사에서 중요하고 바쁜 날이라 엄마가 와주셨다. 엄마가 약속 장소에 일찍 도착해서 귀여운 식기와 우주 옷들, 장난감들을 사주셨다. 엄마, 아빠에게는 평생 받기만 하는구나, 싶어서 미안한 마음이 크다.
생선이 시간 차를 두고 오니 더 행복한 것 같다. 신기하게 겹치는 건 내가 자주 쓰는 거고, 겹치지 않는 건 오래 두고 쓸 것들이다. 옆에 있는 든든한 존재에게 더더 멋진 사람이 되어야지 싶다.
독감 주사를 맞고 더 많이 아팠다. 목이 안나온 적은 처음이라 서러웠다. 그래도 우주가 덜 아파서 다행이다 싶고 주위의 사랑으로 기운을 차리는 중.
우주의 생일
매년 며칠 전부터 생일을 축하한다. 우리 엄마도 한 달 전부터 축하해주셨으니, 엄마와딸 전통이랄까.
아직 안끝남..
이제 진짜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