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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한 잔 먹고 진득히

느슨해지고 싶은 밤

by 헤이미 Heyme

요즘 술을 잘 안 먹는다. 옛날에는 술 먹는다는 행위 자체에 신이 났던 거 같은데 요즘은 잘 어울리는 음식과 페어링해서 먹는 걸 좋아한다.


오늘은 때깔 좋은 초밥을 비싼 돈 주고 퇴근길에 사왔다. 친구가 다정한 마음으로 만들어 준 레몬청을 꺼낼 시간이 드디어 왔다. 레몬청 1 소주 1 토닉워터 3 얼음 2를 샥샥 섞으면 하얀 거품이 올라온다. 기가 막힌 여름의 맛이다. 나를 위한 저녁이 금방 완성되었다. 오래 기다려 준 내 친구 강아지의 밥도 마련해서 동시에 각자의 저녁을 맛있게 먹는다.


꽉꽉 조여있던 마음이 풀어진다. 오랜 시간 공들여 조인 거라가지고 잘 풀리지가 않는 내 마음. 다른 사람들을 볼 때면 자동으로 비교되며 떠오르는 단어들이 비춰주는 그 마음. 각박함, 여유 없음, 긴장, 조바심, 걱정, 우울, 깊은 생각, 깊은 생각에 대해 하는 깊은 생각, 끝없는 공부, 징징거림, 상념, 불쾌함, 위축됨 ......

리트머스지가 액체를 빨아들이는 속도로 퍼지는 나의 검은 잉크, 뇌를 적시는 그 잉크.


오랜만에 먹는 술로 희석시킨다.

달디단 술이 몸을 타고 흐르면 나는 잠시 노곤해지고 행복해지고 아무것도 하기 싫어지고 막 살고 싶어진다.

고생했다. 그동안 그렇게 조이고 살았으니 이제는 좀 풀어지자. 훨훨 풀풀 풀려도 괜찮아. 자꾸만 여러가지로 다독이고 홀씨처럼 날아가고 싶다. 긴장 풀고 옆으로 누운 강아지가 꿈뻑꿈뻑 졸린 눈을 감았다 뜬다.


단 밤을 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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