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만났다.
지금 내 옆에 있는 여자
청순하고 생기발랄하고 당당했던 그 녀
그녀와의 첫 대면은 마포에서 근무할 때였다.
아마 은행문을 열기 전 시간이었을 것이다.
누군가 문 좀 열어달라고 해서 나가보니 모르는 남자와 나이 어린 그녀가 서 있는 것이었다.
어제 인사발령이 있어서 짐작은 했다.
은행은 인사이동이 나면 새로 부임받은 지점에 미리 찾아가서 인사를 하는 것이 관례처럼 되어 있었다.
그래도 그렇지 문도 열기 전에 찾아와서는,
그것도 인사발령받은 사람은 한 사람인데 두 사람이,,,
이유인즉슨 발령받은 직원이 현재 근무하는 지점의 지점장이 출근하자마자 그녀를 데리고 와서 "일 잘하는 직원을 보내니 잘 부탁한다"라며 인사차 온 것이다.
무슨 대단한 직원이길래 일게 행원의 인사이동에 지점장이 몸소,,,
어쨌든 나에게는 생소한 풍경이었다.
작지만 생기발랄하고 웃음기 넘치는 미소 띤 얼굴,
뭔지 모르지만 처음 마주친 순간 "내 여자구나"하는 끌림이란 게 있었다.
그날부터 난 그녀를 유심히 관찰했다.
일 하는 거, 밥 먹는 거, 걷는 거, 웃는 거
그녀는 일도 잘하고 일처리가 깔끔하며 당돌했다.
그 당시에는 토요일에도 은행이 1시까지 영업을 했다.
우리 지점은 출장소(지점보다는 규모나 인원이 적은 점포 유형)라 점심은 주로 배달시켜서 교대로 갱의실(직원 휴게실)에서 먹었다.
난 그녀와 자주 식사 당번이었고 어떨 때는 단둘이서만 먹는 때도 있었다.
밥을 같이 먹으면 정이 든다는 얘기가 맞는 것 같다.
미운 정 고운 정이 콩고물처럼 쌓이기 시작했다.
어느 날이었을까,
점심을 먹다가 "난 널 좋아한다고" 고백을 했다.
멋진 프러포즈도 아니고 꽃 한 송이도 없이 널 그냥 좋아한다고만 했다.
순수한 건지 철이 없는 건지,
그래서 우리의 공식적인 만남이 시작됐다.
내가 자동차를 가지고 출퇴근하고 있어서 그녀가 먼저 퇴근해 밖에서 기다리다 있다가 같이 차를 타고 퇴근하며 아침에는 내가 그녀 집으로 가서 출근을 같이 하며 회사 근처에서 내려주기를 6개월 만에 우린 결혼을 했다.
그녀에게 고백을 하고 연애를 하니 점심식사 시간에 둘이 밥을 먹게 되면 우리는 서로 껴안기도 하고 뽀포도 하고 그랬다.(그러다 갑자기 누가 들어오면 어찌나 놀랬던지)
어느 일요일 아침엔 새벽에 그녀 집으로 가서 당일치기로 강원도에도 놀러 갔다도 오고, 청첩장까지 돌렸는데 갑자기 결혼 안 한다고 해서 고가도로 위에 차를 세우고 무릎 꿇고(영화를 너무 많이 본 듯) 매달리기도 했었다.
난 지금 그녀와의 연애를 주절주절 늘어놓고 싶은 것이 아니다.
짝사랑만 하다 2차례의 실연 아닌 실연을 겪은 나로서는 이번에 그녀를 잡지 못 하면 평생 혼자 살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 나로서는 그녀가 절실했었다.
사실 그녀는 나보다 7살이나 어리다.
맞다 나는 도둑놈이다.
언젠가 그녀에게 나의 어디가 그렇게 좋았느냐고 물어봤었다.
그녀는 그냥 명쾌했다.
손이 너무 따뜻해서,
단지 그것 하나였다.
손이 너무 따뜻해서 마음도 따뜻할 것 같아서,
사실 나도 그랬다.
이번에는 끝이라는 생각도 있었지만 끌림이라는 것 하나로 이유 없이 그냥 그녀가 좋았다.
나를 만나주고 인정해 주는 그 마음이 좋았다.
그러고 보면 정말 인연이란 게 있기는 하나보다.
독신을 고집했던 여자가 어떻게 결혼을 결심하게 된 건지 모르겠다며 궁금해하는 주변사람들이 참 많았지만 딱히 할 말이 없다.
그냥 좋아하는 진심 하나였다.
그런데 시간이 한참 지나고 보니 내가 나를 잘 모르겠다.
지금 현재도 모르는 건 마찬가지이다.
그 당시 내 마음이 사랑이었는지,
여성에 대한 호기심이었는지,
물론 사랑이 강했지만 호기심도 부인할 수 없을 것만 같다.
미안해 여보,
전부 사랑이었다고 말하면 좋겠지만 내 감정은 숨길수가 없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