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실업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은행의 전산부에 들어가서 보니 직장 선배들이 다들 야간대학에 다니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남들을 따라 목적도 없이 산업체 특별전형으로 쉽게 야간대학에 들어갔다.
애초에 관심도 없었고 실력이 뒷받침이 안되다 보니 2년제 전문대학의 전산학과에 입학을 하게 되었다.
야간이다 보니 그곳에는 직장을 다니는 여러 부류의 사람들이 많이 모여있었다.
난 나름대로 은행을 다니고 있어 직장 여성들 사이에서 나름 괜찮은 남자로 평가됐던 것으로 기억된다.
내가 들어간 전산학과에는 공교롭게도 나의 고등학교 1년 선배 형 2명과 1년 여자 후배 1명, 2년 남자 후배 1명이 있었다.
그렇지만 나는 또 여기에서도 혼자만의 다른 길을 간다.
또래의 직장인들을 사귀고 직장인 여성들을 좋아하면 쉽게 갈 걸,
그해 고등학교를 졸업해서 어떤 사연으로 야간대학에 오게 된 것인지는 모르지만 그 아이가 내 마음을 흔들었다.
그 이름, 미영이!
청순하고 갸름하고 지적이고 뭔가 사연이 있는 듯한 눈빛,
난 그 아이에게 몸과 마음을 다 사로잡혔다.
술모임이나 과 엠티에 가서도 그 아이의 젊은 또래 친구들이 다 알 정도로 너무 표시 나게 그 아이를 좋아하는 티를 냈다.
얼마나 부담이 갔을까!
분명 또래의 남학생들 중에서도 그 아이를 좋아하는 아이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 남학생은 나를 얼마나 미워했을까!
좋아하는 티만 내면서 데이트 한 번 제대로 못해 보고 그렇게 지내기를 얼마쯤 지났을까,
그 아이가 나에게 다가와서는 정식으로 사귀기 전에 친오빠가 나를 한번 만나보자고 전한다.
우리들은 만나서 저녁을 먹으며 그 아이의 오빠가 이것저것 나에게 많은 질문을 했다.
그 오빠는 냉철했다.
그리고 나에게 돌아온 대답은 "나에겐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고 오빠가 사귀지 말라"라고 말했단다.
사실 나는 그랬다. 그 아이의 오빠가 본 대로,
하루하루 회사 나가고 일찍 퇴근해서 학교 가고 술 마시고 미래에 대한 계획이라곤 전혀 없었다.
그 나이에 그냥 좋다는 감정으로만, 무책임하게, 아무런 준비도 없이 좋아서 몸만 안달이 난 것이다.
그렇게 또 마음만 힘들이며 그 아이의 주변에서 맴돌기만 하다가 시간이 흘러 졸업을 하게 되니 자연스레 잊혀진 것 같다.
난 왜 그 아이의 오빠와 다시 한번 부딪혀 보려는 시도도 하지 않은 채 스스로 포기했을까?
진실된 사랑이 아니었을까!
연민이나 호기심이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렇지만 그 아이를 한 번만이라도 만나보고 싶다.
그 아이의 청순하고 애틋한 얼굴을 꼭 다시 보고 싶다.
사실 나의 고등학교 남자 선배들과 남자 후배는 나보다 한 살 어린 여자 후배와 나를 역어주려고 엄청난 노력을 했었다.
다섯 명이서 동문회 한다며 자주 모이고 기회를 만들어 주려고 많은 노력들을 했었다.
그 여자 후배도 나를 좋아했었는데, 말은 못 하고,
안타깝게도 그때 당시 나는 그 후배는 나와 인연이 아니라고 단정을 지었던 것 같다.
미안하다. 혜영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