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위가 기승이던 한 여름날이었습니다. 더위를 질투하듯 장대비가 쏟아졌습니다. 그 장대비는 사람들의 휴대폰에 재난 알림 문자가 되어 내렸지요. 여기저기서 삐삐 하는 비상음 소리와 함께 이번 장대비로 인한 피해를 예방하라는 메시지로 휴대폰이 시끄러웠습니다.
하지만 재난문자의 소란스러움 보다 더 큰 소음이 저를 괴롭혔습니다. 바로 재난대응반 소집입니다. 저는 직업 특성상 폭우, 폭설 등 악기상 시 만약에 있을 사고를 대비해 직장에 소집됩니다. 이날도 어김없이 재난대응반 소집이 예상됐습니다. 소집되어야 한다면 당연히 소집에 응해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면 되겠지요.
그런데 그날은 정말 소집되기 싫었습니다. 아니, 절대로 소집되는 일이 없어야 했습니다. 왜냐하면 이틀 후면 제가 결혼하는 날이었거든요.저는 일기예보를 몇 번이고 새로고침하며 제발 비구름이 사라지길 간절히 바랐습니다. 계속 휴대폰만 쳐다보고 있었지요. 기적이 일어나길 바랐습니다. 그렇지만 사라지길 바랐던 비구름은 계속 몰려왔고 제 마음속 비구름도 짙어졌습니다.
'결혼식을 미뤄야 하나', '이제 와서 그게 가능한 건가', '사람들에게는 어떻게 전해야 하지', '계약금은 날리는 건가', '내가 뭘 잘못했다고 그러는 거지', '신이시어 제발' 온갖 걱정으로 마음속에서 허리케인급 폭풍우가 휘몰아쳤습니다.
그때였습니다. 띠리링 띠리링 휴대폰 전화소리에 깜짝 놀랐습니다. 그리고 발신자를 확인하고 또 한 번 깜짝 놀랐습니다. 연대장님이셨습니다. 제게 직접 전화를 주실 일이 없으신데 연대장님께서 직접 저에게 전화를 주신 겁니다. 이번에는 허리케인이 아니라 쓰나미가 몰려왔습니다.
'뭐지, 나 뭐 잘못했나', '왜지? 왜 전화하셨지', '아 큰 일 났다.', '전화를 받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 '전화를 안 받는 건 아니지' 걱정은 잠시 미뤄두고 성급히 전화를 받고 경례를 했습니다. "충성! 전화받았습니다." 이후 이어지는 연대장님의 말씀에 가슴이 철렁했습니다. "중대장, 결혼식을 좀 미뤄야겠는데 괜찮겠니?" 연대장님의 말씀에 그래서는 안되지만 속으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네? 잘못 들었습니다.' 하지만 입 밖으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확인해 보겠습니다." 그러자 전화기 너머로 호탕한 웃음소리가 들렸습니다. "하하하, 뭘 확인해 농담이야 너는 재난대응반 소집 신경 쓰지 마. 지금 바로 휴가 출발해라. 그리고 결혼 축하한다." 뜻밖에 말씀에 얼떨떨해진 저는 연대장님께서 "중대장?"이라고 되물으실 때까지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감사 인사를 전하며 전화통화를 종료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이상이십니까? 충성!" 전화를 끊자마자 마음속 허리케인과 쓰나미가 사라지고 봄날의 햇살과 같이 맑은 하늘이 펼쳐졌습니다. 생각하지도 못했던 엄청난 결혼 선물을 받아 얼떨떨했습니다.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그날의 장대비는 다행히 하루 만에 모두 물러갔고 제 결혼식은 장대비 덕분에 맑은 하늘 그리고 청량한 공기와 함께 성공적으로 치러졌습니다. 그리고 당연히 재난대응반도 소집해제되어 직장의 소중한 지인분들께서도 함께 해주셨습니다.
결혼한 지 6년이 지난 지금도 그날을 생각하면 아찔하기도 하고 연대장님의 큰 배려심에 마음이 따뜻해집니다. 진정한 배려란 이런 것 아닐까요? 그 사람의 어려움을 마음 깊이 공감해 그 사람이 필요한 도움을 줌으로써 그 사람의 상황을 돌봐주는 것 말입니다. 저는 그날 진정한 배려를 받았고 마음으로부터 진심 어린 감사함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제가 받은 배려만큼 나도 누군가에게 진정한 배려를 베풀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진심은 사람을 변화시키는 힘이 있다고 믿습니다. 진정한 배려 역시 거짓 없는 참된 마음에서 우러난 행동이기에 한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오늘도 제가 도울 수 있는 사람, 상황이 있다면 주저하지 않고 도울 수 있는 용기를 주시라 기도해 봅니다. 진심에서 나오는 배려가 우리 사회에 스며들길 바랍니다. 여러분의 삶에 아름다운 배려가 넘쳐나길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