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라다'라는 단어의 뜻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나는 최근 읽은 이원흥님의 <남의 마음을 흔드는 건 다 카피다>라는 책에서 '놀라다'라는 단어에 숨어 있는 역할을 깨달았다.
놀라움은 그 자체로 하나의 능력이며, 아무것도 아닌 것에서도 놀라움을 찾아낼 줄 아는 사람과 놀랄 만한 대상에게 조차도 심드렁한 사람의 성장 그래프는 시간이 갈수록 어마어마하게 차이가 난다고. <남의 마음을 흔드는 건 다 카피다> 중.
위 글에서 보듯이 놀라움의 역할은 능력에 있다. 그것도 성장의 동기를 찾아내는 능력이다.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지금까지 놀라움으로 성장했다.
어린아이들을 상상해 보자. 아이들은 무한체력으로 세상의 모든 것을 탐구한다. 절대 지치지 않는다. 그네를 탔다가 시소를 탔다가 모래놀이를 하며 세상의 모든 것을 탐구한다. 엄마 아빠가 먼저 지쳐서 집에 가자고 애원해야지만 그 놀이는 끝난다. 하지만 끝난 게 끝난 것이 아니다. 아이들의 놀이 장소가 놀이터에서 집으로 바뀐 것뿐이다. 집에 와서도 '엄마 이건 뭐야?', '아빠 저건 왜 저래?'라는 질문을 통해 자신들이 놀란 대상에 대한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애쓴다.
이렇게 궁금증을 해소하는 아이들을 자세히 바라보자. 아이들은 신기하거나 처음 본 물건을 보면 이렇게 말한다. '우와~', '우와~'라는 단어는 감탄이나 놀라움 따위를 나타내는 말이다. 이처럼 아이들은 신기한 것을 보고 자연스럽게 '우와~'라며 놀라움을 솔직하게 표현한다. 그리고 그것을 주저 없이 탐구한다. 손으로 만지고 입으로 맛도 보고 이리저리 돌려보고 던져본다. 이런 행동을 통해 그 대상의 모든 것을 알아낸다. 그리고 흥미가 떨어지면 또 다른 놀라움을 찾는다. 아이들은 이런 행동을 반복하며 세상을 배운다.
아이들의 모습에서 볼 수 있듯이 놀라움을 느끼는 것은 흥미를 느끼는 것이다. 흥미를 느끼는 것은 그 대상을 더욱 탐구하고 싶다는 느낌이다. 결국 흥미를 느끼는 대상에 대해 계속 탐구해 가는 과정이 바로 배움이다. 배움은 성장을 가져온다. 즉, 배우고 성장하는 과정의 시작에 놀라움이 있는 것이다.
우리는 하루에 몇 번이나 놀랄까?
내 하루를 돌아보니 나는 어제 두 번 놀랐다. 첫 번째 놀람은 딸아이 양치를 도와주다가 놀랐다. 딸아이 양치를 끝내고 입을 헹구기 위해 양치컵에 물을 채우고 뒤로 돌아서는데 아이가 몸을 숙이고 무엇인가를 줍고 있었다. 나는 그걸 모른 체 돌아섰다. 그 바람에 내 팔꿈치로 아이의 이마를 때렸다. 그 충격으로 아이가 발판에서 뒤로 넘어갔다. 다행히 반사적으로 아이를 잡아서 다치진 않았다. 하지만 놀란 아이는 울음을 터트렸고 진정될 때까지 달래주었다. 나는 이 첫 번째 놀람으로 앞으로 양치컵에 물을 미리 받아 놓자는 교훈을 배웠다.
두 번째 놀람을 느낀 건 하루 종일 놀란 게 딱 하나밖에 없다는 것에 놀랐다. 이렇듯 성인이 되면 놀라는 횟수가 줄어든다. 놀라는 횟수가 줄어든 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왜냐하면그것은 배움의 기회가 줄어든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배움이 줄어든다는 건 성장할 수 있는 기회가 줄어든 다는 것이다. 성장할 수 있는 기회가 줄어들면 그 자리에 멈춰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멈춰있는 것의 특성은 시간이 갈수록 때가 낀다는 특성이 있다. 이처럼 지루한 시간 속에 낀 때는 아무리 빡빡 문질러도 지우기 힘든 때가 된다. 그리고 지우기 힘든 때는 결국 우리를 움직이지 못하게 막는다. 우리가 움직이지 못하게 되면 더 이상 놀라움을 찾기가 힘들어진다. 그러니 우리는 때가 끼기 전에 놀라움을 찾는 연습을 해야 한다.
그럼 놀라움을 찾는 연습은 무엇일까?
나는 놀라움을 찾기 위해 두 가지를 버리는 연습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그것은첫째 아는 척, 둘째 체면이다.
버려야 할 첫 번째 아는 척은 내가 모르는데도 알고 있는 듯이 행동하는 것이다. 우리는 아는 척을 버려야 놀랄 수 있다. 왜냐하면 놀라는 것은 내가 모른다는 것을 순수하게 인정해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정말 맛있는 집에서 맛있는 요리를 먹었을 때를 생각해 보자. 당신은 맛집이라는 한 음식점에 찾아갔다. 맛있는 요리를 먹기 위해 한 시간 동안 줄을 서서 기다렸다. 긴 기다림 끝에 음식이 내 앞에 도착했다. 그리고 숟가락을 들고 모든 감각을 살려 한입 먹고 이렇게 말한다. '우와~!, 진짜 맛있어.' 맛에 경탄한 것이다. 이것은 음식을 순수하게 인정했기 때문에 느낄 수 있는 감각이다. 반대로 똑같은 음식을 먹으며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다. '뭐 아는 그 맛이네', 여러분이라면 음식을 먹고 진짜 맛있다고 놀라는 사람과 그저 그런 알고 있는 맛이라고 느끼는 사람 중 어떤 사람이 한 끼를 맛있게 먹을 것 같은가. 나는 전자가 음식의 본연의 맛 이상을 느낄 수 있으며, 나아가 밥 한 끼로 행복감까지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처럼 아는 척은 놀라움을 느끼는 것을 방해한다. 그리고 순수하게 놀람을 느끼지 못하면 배움도 경험도 없다. 음식을 두고 진짜 맛있다고 순수하게 놀란 사람은 인생 맛집이라는 경험이 추가된다. 하지만 아는 맛이라며 놀람을 아는 척으로 막은 사람은 그곳이 자신의 경험으로 추가되지 않는다. 결국 동일한 경험을 하고도 누구는 인생에 남을 하나의 멋진 추억을 얻고 누구는 기억에도 남지 않을 시간 낭비가 된다. 결국 아는 척은 놀라움을 막고 나아가 내 삶의 질도 떨어트릴 수 있다.
버려야 할 두 번째는 체면이다. 체면은 남을 대하기에 떳떳한 얼굴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사용하는 체면은 눈치에 가깝다. 내가 어떤 행동을 하면 남들이 나를 이렇게 평가하겠지?라는 의문으로 하고 싶은 행동을 조절하는 것이다. 결국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고 내 행동을 조절하는 것이 체면이다. 이런 체면은 놀라움을 느끼는 것을 막는다. 놀라움은 내가 모른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모른다는 것을 인정하기 위해서는 체면을 내려놓아야 한다. 예를 들어 나는 영어를 참 못한다. 그래서 요즘 영어를 너무 많이 사용해서 불편하다. 나는 어느 날 친구에게서 '센서티브 하다'라는 표현을 들었다. 나는 영어를 잘 몰라서 이렇게 생각했다. '센서티브'는 영어인 것 같고 '하다'라는 한글인 것 같다. 그래서 그게 무슨 뜻이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친구도 정확하게 설명하지 못하고 이렇게 말했다. '그냥 예민하다고.' 뜻을 찾아보니 'sensitive'는 세심한, 감성 있는, 예민한 등의 뜻을 가진 단어였다. 이런 단어가 '하다'라는 말과 합쳐져 사물에게 받는 느낌이 예민하고 섬세하다는 뜻으로 사용된다고 한다. 내가 체면을 챙기며 '센서티브 하다'라는 단어를 모른 체 넘어갔다면 나는 그 뜻을 평생 몰랐을 것이다. 하지만 체면을 버리고 내가 모른다는 것에 놀라며 알려달라고 요구했기 때문에 한 가지 단어를 배울 수 있었다. 이처럼 체면 때문에 놀랄 기회를 잃을 수 있다.
나의 놀라움에 대한 생각을 이렇게 정리해 보니 이원흥님께서 왜 놀라움이 능력이라고 말씀하신 건지 정확히 알겠다. 나는 성인이 된 이후로 아는 척과 체면으로 무장해 놀라지 않으려 애썼다. 왜냐하면 내가 놀라는 모습은 결국 내가 모른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자주 놀라면 결국 나는 많이 모르는 사람이 된다. 그것은 혹독한 경쟁 사회에서 나의 위치를 깎아내리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기에 아는 척과 체면으로 무장했다. 아는 척과 체면으로 무장하고 모른다는 것을 감췄다. 이렇게 감추는 세월이 10년이 넘어갔다. 그래서 이제는 내가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 잘 모르는 상태가 되었다. 결국 나는 웬만한 것으로는 놀라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나는 더 이상 배우지 않으려는 사람이 되었다. 그저 지금에 안주하여 때가 낀 사람 말이다.
하지만성장 없이 살아가는 사람은 죽은 삶을 살아가는 것과 같다. 지루하고 재미없고 지난함이 연속되기 때문이다. 이런 지난함은 나태와 무력감을 선물한다. 나태와 무력감이 지속되면 우울함에 빠져든다. 우울함이란 사람을 무너트린다.
우리는 내 삶이 무너지지 않도록 지루함을 경계해야 한다. 그리고 성장할 수 있는 것을 찾아야 한다. 그렇게 계속 움직여야 하는 것이다. 이런 움직임을 만들어 낼 수 있는 동력이 바로 놀라움이다. 그래서 놀라움을 느끼는 사람이 곧 능력 있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은 성장할 수 있는 것을 찾는 능력이 있다. 성장하는 것을 찾는 놀라움 레이더를 가졌다. 그래서 계속 성장한다. 그 결과 지루하고 무력한 삶은 찾아오지 않는다. 그리고 결국에 자신이 원하는 희망을 쟁취한다.
이 모든 것이 놀라움을 느끼는 것에서 시작한다. 나도 이제 아는 척과 체면을 내려놓고 순수한 놀라움을 느끼려 애써보련다. 놀라움 덕분에 흥미를 찾으며 즐겁게 성장하는 아이들처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고 노력해 보련다. 그저 그렇게 하나씩 느껴보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