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다움 찾기'에 대해
가족들과 함께 쇼핑몰에 갔었다. 사람 구경도 하고, 맛있는 것도 먹고, 이것저것 둘러볼 수 있는 참 재미있는 장소다. 그리고 아이가 좋아하는 장난감 코너, 캐릭터 등이 있고 한 번씩 공연도 하기 때문에 가족 동반으로 자주 애용하는 장소다. 가장 좋은 점은 실내라서 미세먼지의 영향을 적게 받는다는 점이다. 이번 주말도 미세먼지는 나쁘고 아이는 나가지 못해 답답해하니 대형쇼핑몰을 다시 찾았다.
쇼핑몰을 둘러보다가 가구를 파는 매장을 구경했다. 아이와 함께라서 가구 매장에서도 아이용 가구 코너부터 구경하기 시작했다. 아이용 가구는 참 귀엽고 예쁘다. 그래서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귀여움은 치명적이고 직원의 말솜씨는 대단하기에 잠깐 정신을 팔면 안 그래도 가벼운 통장이 텅장이 되는 건 순식간이기 때문이다. 요즘에 아이용 가구는 높이조절이 되는 책상이 많이 나온다. 아이들 키가 매년 쑥쑥 자라는 것을 반영했나 보다. 높이 조절이 되는 방식도 다양하다. 수동으로 높이를 조절하는 방식, 버튼을 누르면 자동으로 높이가 조정되는 방식이 있다. 그 옆 침대코너에 모션베드 역시 본인에게 가장 편안한 자세로 맞춰주는 역할을 한다. 그 옆에 의자도 자신에게 가장 편안한 자세에 맞게 높이와 등받이를 조정할 수 있었다.
나는 다양한 맞춤형 가구를 보고, 만지고, 체험해 보았다. "세상 참 좋아졌다."는 말이 절로 나왔다. 내 자세에 맞춰주니 이렇게 편안할 수가 없었다. 계속 누워있고 싶고 심지어 집에 가져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내 얇은 주머니 사정으로는 감당하기 힘든 가격에 놀라 다음을 기약하며 가구 매장을 나왔다.
맞춤형 가구가 주는 편안함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가구 매장을 구경하고 체험해 본 결과, 디테일에서 온다고 생각한다. 작은 움직임까지 조정할 수 있는 가구일수록 더 비싼 가격이 책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가격은 가치를 반영하는 것이다. 결국 어떤 가구가 더 디테일하게 움직일 수 있도록 만들어졌는가에 따라 높은 가치를 가졌다.
우리는 맞춤형 가구와 같은 편안함을 얻기 위해서 살아간다. 재정적 편안함, 관계적 편안함, 신체적 편안함 말이다. 재정적 편안함을 위해 일을 하고, 관계적 편안함을 위해 처세하며, 신체적 편안함을 위해 좋은 것을 먹고 운동을 한다.
하지만 편안함을 얻기 위한 일련의 행동들이 불편함을 가져오는 모순에 빠질 때도 있다. 재정적 편안함을 얻기 위해 일을 하다가 너무 고되고 힘들어 신체적으로 불편하게 된다거나, 신체적 편안함을 위해 좋은 것을 먹다 보니 재정적 불편함을 야기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런 모순의 원인이 무엇일까?
나는 이 모순의 원인을 가구가 알려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맞춤형 가구는 자기에게 꼭 맞는 책상, 의자, 침대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높은 가격을 주고 구매한다. 이에 비해 일반 가구는 사용하는 사람이 가구에 맞춰야 한다. 일반 가구를 구매하는 사람들은 많은 가구 매장을 돌아다니며 자신에게 맞는 가구를 찾지만 정확히 딱 맞아떨어지는 높이, 각도, 쿠션감을 찾기 어렵다. 그래서 '이 정도면 뭐'라고 절충하면서 주머니사정에 맞는 일반 가구를 구매한다. 하지만 사람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계속 변한다. 가구는 변하지 않는다. 그래서 일반 가구는 변화하는 사람을 따라가지 못하고 당근 마켓으로 향하게 된다. 그리고 사람은 다시 다른 일반 가구를 구매한다.
자신에게 맞는 맞춤형 가구는 비싸고 일반 가구는 저렴하다. 맞춤형 가구는 사람의 변화에 따라 맞출 수 있지만 일반 가구는 변화하면 교체해야 한다. 그럼 처음에 비싼 맞춤형 가구를 구매하는 것이 일반 가구를 2~3번 구매하는 것보다는 저렴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비싼 가격에 지레 겁을 먹고 주머니사정에 장기적 안목을 가린다.
편안함을 얻기 위해 하는 행동이 불편함을 가져오는 모순의 원인도 맞춤형 가구와 일반 가구를 고르는 것과 같다. 편안함을 얻기 위해서 꼭 필요한 한 가지를 무시했기 때문이다. 바로 주머니사정 등 다른 핑계로 자신에게 맞는 것을 포기한 결과다. 이 결과로 우리는 불편함을 맞이한다.
우리는 각자의 사정이 있다. 사정이 없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사정이라는 것은 어쩌면 핑계일지도 모른다. 나에게 적합한 것이 뭔지 알고 있지만 각종 핑계로 그것을 가리고 있는 건 아닐까. 비단 가구를 선택하는 것에만 국한되는 말이 아니다. 직업, 취미, 배우자, 애인, 친구 등 인생을 살아가며 선택하는 모든 것들에 있어 우리는 '나'보다는 '남'을 더 신경 쓰고 있지는 않는가. 남을 신경 쓰는 것은 결국 그들이 만들어 놓은 틀에 들어가는 것이다. 그것은 나에게 꼭 맞지 않는 가구에 나를 맞춰가는 것과 같다.
맞지 않는 가구에 나를 맞추는 것은 아주 쉽다. 사람은 환경에 적응하는 동물이기 때문이다. 맞지 않는 가구도 일정 기간 사용하다 보면 그 가구의 높이, 각도 등에 내가 스스로 맞춰진다. 이처럼 사람은 환경에 적응한다. 그럼 남들이 만들어 놓은 틀에 들어가면 어떨까. 남들이 만들어 놓은 틀은 가구에 적응하는 것보다 더 쉽다. 왜냐하면 그 틀은 꼭 정답 같아 보이기 때문이다. 그 틀이 정답 같아 보이는 이유는 많은 사람들이 이미 사용하는 틀이며, 그 틀로 성공했다는 사람도 많아 보이기 때문이다. 이런 것들이 나에게 꼭 맞는 것을 찾지 못하게 방해하는 요소다.
이렇게 '나'를 찾는 것을 방해하는 요소가 널려있는 시대에 '나'를 찾는 방법이 무엇일까?
그 방법은 디테일과 편안함을 따르는 데 있다.
디테일은 무엇인가. 디테일의 사전적 정의는 한 부분을 나타내는 말이다. 하지만 통상적으로 세세하게 세부적으로 등의 의미를 갖는다. 나는 '나'를 찾는 방법으로 디테일의 세계를 깨달아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디테일의 세계는 아주 일상적인 세계다. 밥을 먹는 것, 화장실에 가는 것, 집에서 TV를 보는 것, 친구와 만나 수다를 떠는 것이 모두 디테일의 세계일 수 있다. 다만, 이런 일상이 디테일의 세계로 변화하기 위해서는 한 가지 필요한 게 있다.
바로 일상의 관찰자가 되는 일이다. 일상의 관찰자가 되는 것은 말 그대로 자신이 살아가는 삶을 관찰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삶을 관찰한다는 것은 나에게 일어나는 일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본다는 것이다.
가족과 저녁식사를 예로 들어보자. 비관찰자의 시선으로 저녁식사를 바라보면 저녁식사는 평범하다. 그저 매일 먹는 반찬 몇 가지와 밥에 불과하다. 특별히 맛있는 메뉴를 먹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특별한 사람과 먹는 것도 아니다. 그저 매일 밥을 같이 먹는 사람과 매일 비슷한 반찬으로 밥을 먹었다. 이것이 평범한 비관찰자의 시선이다. 관찰자의 시선으로 저녁식사를 바라보겠다. 관찰자는 디테일하다. 매일 먹는 밥과 반찬이 차려지는 과정을 관찰한다. 어머니, 아버지, 아내, 남편 또는 자신의 손을 거쳐 밥과 반찬이 차려진다. 그 손을 거치면 정성과 마음이 함께한다는 것을 안다. 그렇게 차려진 밥과 반찬을 한 숟갈 뜨며 관찰한다. 내가 밥을 먹고 있구나, 내가 반찬을 먹고 있구나, 내가 국을 먹고 있구나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인식하고 관찰한다. 그렇게 하나하나의 맛을 음미한다. 그리고 그것을 만든 사람의 정성과 마음도 음미한다. 그러다 내 앞에 앉아 있는 사람을 관찰한다. 오늘도 무사히 하루를 마치고 돌아와 내 앞에 앉아 있는 그 사람 또는 수고스러운 하루를 잘 마치고 집에 돌아온 나를 관찰한다. 함께할 수 있어 대견하고 기특하고 감사하다. 관찰자가 된다는 것은 이런 것이다. 디테일의 세계로 빠지는 것이다.
디테일의 세계로 빠지면 우리는 나의 모든 일상을 관찰하기 시작한다. 이런 관찰은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찾게 도와준다. 이것이 바로 디테일이 '나'를 찾을 수 있게 하는 방법이다.
'나'를 찾을 수 있는 또 하나의 방법 '편안함'은 무엇일까. 편안함은 오직 자신만이 알 수 있다. 그래서 자신만이 찾을 수 있는 가치다. 나는 책을 읽거나 공부를 할 때 소음이 있는 상황을 불편하게 여긴다. 그래서 책을 읽거나 공부를 할 때는 조용한 독서실이나 내 방에서 혼자 있는 것이 편안하다. 이와 반대로 카페 같은 일상의 소음이 있는 곳에서 공부를 해야 집중력이 높아지는 사람이 있다. 이들은 집중이 필요할 때 일정 소음이 있는 것에 편안함을 느끼는 것이다.
이처럼 편안함은 사람마다 기준이 다르다. 그렇기에 자신이 편안하다고 느끼는 것을 찾는 행위는 결국 '나'를 찾는 방법이다. 편안함을 찾는 방법도 역시 '관찰'이다. 내가 맞춤형 가구를 체험하며 '참 세상 좋아졌다'고 편안함을 표현한 것을 기억하는가. 이처럼 우리가 나도 모르게 표현하고 있는 편안함을 관찰을 통해 찾아내는 것이다. 편안함의 표현은 이런 것들이 있다. '아~ 좋다', '와우~', '흐음', '후~', '마음이 놓이네', '집이 최고다', '미소' 등 자신이 만족할 때 나오는 의성어, 말, 행동이다. 이것을 관찰을 통해 알아채고 그것을 기억하고 모아보자. 이런 것들이 쌓여 결국 가장 편안한 '나다움'을 만들 것이다.
앞으로 더더욱 '나다움'을 찾기 어려워지는 세상이 될 것이다. 이런 세상에서 '나다움'을 잃고 방황하지 않기 위해서 나는 관찰자가 되는 것을 추천한다. 우리 함께 관찰자가 되어 '나다움'을 찾고 일상의 아름다움을 만끽해 보자. 나는 이런 행동이 행복한 삶으로 연결된다고 굳게 믿는다. 이제 휴대폰을 내려놓고 여러분의 옆을 관찰해 보길 바란다. 모든 것이 새롭게 보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