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햄통 Mar 08. 2020

2월 9일. 의지와 상관없는 미니멀라이프

봉쇄, 폐쇄, 마스크, 중국의 정치체제와 언론, 우한 파이팅

내일부터 출근. 아이러니컬하게도 오랫만에 소파에 누웠다. 왜 보름만의 여유가 출근 전날 밤에 찾아오는 거야. 드디어 친구가 준 과제를 검토해 보려 종이를 들고 누웠다. 머리 맡에는 그 친구가 준 햄스터가 날 은근히 노려보고 있고.

보름 동안 단 하루, 출근한 날이라 부득이하게 바깥 음식을 먹었고 그외에는 다 집에서 해결했다. 요리하는 걸 좋아하는 편이지만 이게 쉼없이 반복적인 일상이 되면 기쁨이 아닌 의무가 되어 한숨만 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몇일 전 냉동실의 마지막 피자를 먹었는데 그게 마치 엄청난 사건인 것처럼 느껴졌다. 지난 시절...냉동실에 남은 피자가 있다는 걸 알면서도 흥청망청 새 피자를 사 먹어서 계속 쌓였던 피자 조각들이다. 이것들이 소중한 비상 식량이 될 줄이야.

보름 내내 집을 비웠던 옆집 여자가 돌아왔다. 평소 아파트 방음이 안 되서 거취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다. 어김없이 노래를 부르고 있다. 그동안 룸메가 고향 가서 투룸 차지했었는데 룸메가 다시 돌아온 느낌이다.

옆집 룸메가 돌아온 이유는 내일부터 정식으로 긴 춘절 연장 휴일이 끝나고 대부분 회사가 정상 출근 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오늘과 내일 30만명 이상이 북경으로 귀환한다고 한다. 또 한번의 고비가 될 수 있는 시점이다.

#베이징 은 초토화가 됐다. 이번 주만 해도 대부분의 가게들이 문을 닫거나 무기한 영업을 중단하거나 단축 근무, 휴일제도 등을 통한 비상근무체제로 영업했다. 가게, 아파트 등은 공간 내부와 손잡이 등을 정기 소독하고 있다고 공지했다.

공공장소는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으면 출입이 불가하고, 출입 시 체온을 잰다. 택배와 배달은 아파트 단지 입구에서만 받을 수 있다. 택배 기사는 입구에 도착하면 고객들에게 메시지를 보내놓고, 1시간 반 동안 머무르면서 택배를 분배한다.

은행 앞에 써 있는 마스크 착용 부탁 문구

#신종코로나바이러스 #우한폐렴 #新冠肺炎 #코로나19 는 우리의 생활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춘절 연휴 유일한 운동은 택배 받으러 가는 것’이라든지, ‘집에 콕 박혀 빈둥대는 게 애국하며 공헌하는 길’이라든지 하는 말이 나올 정도로 하는 이런 삶의 모습을, 불과 한달 전쯤에는 꿈에도 상상할 수 없었다.

나의 활기찬 #중국 은 #북경 은 어디 갔나요. 얼마 전만해도 몸이 근질거려 한시도 가만 있지 못하는 어린아이처럼 신나게 발전하던 중국이었다. 최소한의 인력, 외출, 운영, 상태를 유지하는 미니멀한 현재 중국의 모습이 낯설고 씁쓸하다.


중국은 바이러스를 잡기 위해 총력을 동원하고, 최대로 엄격히 상황을 관리하고 있다. 도시를 봉쇄하고 관광지를 폐쇄하고, 행사를 취소하고, 병원을 짓고, 필수 인력을 배치하는 등, 많은 강도 높은 조치들은 중국이기에 가능했다.

하지만 분명 중국이기 때문에 취약했던 점도 있다. 14억의 인구, 정치구조, 문화수준, 의료시스템과 같은 기본 요소 외에 춘절이라는 민족대이동 시기도 겹쳤고, 사스 때와 다르게 배달과 택배, 운수 등 서비스가 상당히 발달한 점도 영향을 미쳤을 것 같다.

초기 대응이 미흡했다는 점이 가장 많은 지적을 받는데, 중국 정치 구조상 한 성의 지도자가 적극적으로 판단하고 시행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물론 그 한 사람의 판단력과 능력이 관건일테다. 어떻게든 안온히 문제를 해결하려 하고 모험보다는 안정을 추구하는 건 한국 공무원들도 똑같지 않나. 이번 사태도 똥인줄 알고 대충 덮으려 했는데 대형폭탄이었던 게 아닐까.

중국 언론은 항상 대외적으로 좋은 것만 공개하고 방송한다. 이 상황에서 최대한 긍정적인 외교, 경제, 사회 소식과 함께 힘을 합치면 싸워 이길 수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끊임없이 전달한다.

미시적으로는 밤낮없이 몸바쳐 일하는 의료인들, 봉사자들의 땀과 노력에 대해 방영하지만, 마냥 감동스럽고 뭉클하지 만은 않다. 이 사태는 자연재해일까 인재일까? 그래서인지 武汉加油(우한 파이팅), 中国加油 (중국 파이팅) 이라는 메시지가 괜시리 가식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눈이 온 천안문 앞 '중국 파이팅' 문구, 출처: 인터넷신문


하지만 한국 만큼 세세히 좋은 거 나쁜 거 다 보도하면 이 나라가 남아 있지 않을지 모른다. 이미 홍콩 만으로도 중국은 버거워하고있다. 사실 뭐가 좋은지는 잘 모르겠다. 시진핑도 모르는데 내가 어떻게 알아.

그래서 세상의 불확실성에 대한 #나심탈렙 의 #블랙스완 을 깔꼼히 읽으며 사색해보려 했는데, 벌써 휴일이 다 갔네??? 와하핳...

시간은 없어도 없고, 있어도 없다. 마치 돈처럼. 은둔생활의 종지부를 찍으며, 내일의 출근을 결연히 맞이한다. #햄통  @ Beijing, China

매거진의 이전글 1월 30일, 유령의 도시가 된 베이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