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햄통 Mar 08. 2020

2월 29일. 한국인 격리, 적응하는 중국

코로나19에 대응하며 살아가는 방법들을 강구하는 베이징


주인 집 앞까지 배달되지 못하는 갈곳 잃은 택배들은 며칠 전만 해도 아파트 단지 입구 길거리에 질서없이 쌓여 있었다. #코로나19 발생 초기에는 사람들이 택배마저 두려워 했기에 물량이 많지 않았지만, 점차 외출을 줄이며 필요한 물건들을 택배로 충당하기 때문인지 점점 늘어났다. 

그러다가 단지 입구 안 쪽에 ‘비접촉배송물보관소’가 설치되었다. 한때는 택배를 아파트 입구에서 수령하는 상황에 대해 의견도 분분했다. 아까운 마스크를 소비해야 된다는 둥, 오히려 밀접 접촉이 생긴다는 둥. 그런 혼란 속에서 #중국 은 이것저것 닥치는대로 시도하는 듯하다. 이 상황에서 나는 중국이 정말 변화와 적응이 빠른 곳이라고 느낀다. 

얼마 전에는 아파트 출입증을 만들었다. 코로나 발생 후 엄격히 출입을 제한하기 위해 각 아파트에서 시행한 조치는 다음과 같다. 1.단지 입구 여러곳을 폐쇄하고 정문만 사용 2.외부인은 이름과 연락처 등을 등록명부에 작성 후 출입 3.배달원은 단지 정문까지만 배송 가능 4.외지 방문 후 귀가한 사람은 보고 및 자가격리 5.거주자 출입증 발급, 출입 시 체온 측정 


특히 최근에는 북경으로 돌아온 한국인들에 대한 조치가 매우 강화됐다. 14일을 기준으로 북경에 입국한 한국인들에 대한 격리조치가 ‘비공식적’으로 실시되고 있다.


일부는 자기 집 문앞에 ‘한국에서 돌아온 사람이니 자기 격리가 필요하다. 다들 기꺼이 감독해주기 바란다’는 통지서가 붙고, 일부는 동의서에 자가격리 하겠다는 사인을 해야 한다. 누구는 집 앞에 외출 감시 cctv가 달리고, 출입증을 압수당했다고 했다. 지난 주 한국을 다녀온 동료는 오늘 은행에 업무 보러 갔다가 2주 뒤 다시 오라며 퇴짜를 맞았다. 

세대 문 앞에 붙은 격리 안내문

최근 중국이 코로나 기세가 좀 꺾였다고, 한국과 일본, 이탈리아 등 나라를 우려하며 적반하장 격으로 훈수를 두고 있는데, 기가 찬 부분도 있지만 한편 중국의 대응 노력 만큼은 대단했다는 생각을 한다. 


중국은 발빠르고 전방위적으로 엄격하고 강경한 조치를 취했고, 중국인들은 대체적으로 매우 잘 협조했다. 물론 공산당 체제인 중국에서만 가능한 강제 조치들이었다.


언론에서는 맨날 중국은 반드시 승리한다는 긍정적 얘기를 줄기차게 하며 국민 정서를 안정시켰다. 그 과정에서 방해가 되는 것들은 두더지 머리 때리듯 때려 넣었다. 언론의 자유를 철저히 통제했다는 데는 양면성이 있지만, 결과적으로 무한긍정에너지 팡팡 넘치는 프로파간다식 리드가 중국인들을 덜 동요하게 만드는데 일조한 것 같다. 


그 때문인지 국민성 때문인지 몰라도 중국인들은 꽤나 담담하게 이 시기를 보내고 있다. 조급해 하지 않고, 불평하지 않고, 일상 생활 면에서도 빠르고 똘똘하게 적응했다. 


음식 배달 시 영수증에는 요리사와 배달원의 체온을 기록하고, 마스크나 비닐장갑을 증정하기도 한다. 최근 콜택시 #띠디추싱 #滴滴出行 은 택시 앞좌석과 뒷자석을 나누는 비닐 칸막이를 설치하고 있다. 스벅은 휴대폰으로 주문해서 테이크아웃만 가능하다. 의료 일선에서는 접촉을 줄이기 위해 로봇을 도입하기도 했다.

베달 영수증에 붙은 안내문과 체온
비닐격리막을 설치한 띠디 택시
매장에 진입할 수 없고 밖에서 휴대폰으로 주문해서 커피를 받는다. 일부는 체온을 재고 매장에 들어가서 테이크아웃만 가능하다.

이런 시국에도 어떻게든 살아야 하니까 당연히 편의을 위한 조치를 하나씩 궁리하는 것이겠지만, 나는 이 와중에도 중국이 시도하는 이런 변화가 예사롭지 않다고 생각했다. 


문제는 허술하다는 점이다. 하핳하하핳. 이랬다 저랬다 말을 바꾼다든지. 하지만 중국은 항상 이런 곳이었다. 일본처럼 기술적으로 완벽하지도, 한국처럼 일반인들의 요구가 높지도 않다. 


국가의 지시가 있다면 아무리 엄격하고 답답한 일이라도 순응하며 말 잘 듣고, 이게 불편하지만 사회 질서를 유지하는데 어느 정도 도움은 되고, 그 와중에 언제든 빠져나갈 구멍은 있고, 다양한 사람들이 그 안에서 시도하고 도전하고 모험하며, 신중성이나 완벽성은 떨어지지만 시행착오 속에서 배우며 무섭게 성장하는. 내가 3년 정도 살면서 본 중국의 모습은 그랬다. 


퇴근 후 택배를 찾으러 갔다가 물건이 무거워 경비실에 도움을 요청했다. 하루에 몇 번이나 이런 일이 있을텐데, 유쾌해 보이는 모습의 아저씨는 더 도와줄 게 없냐 물었다. 간단한 대화를 더 나누다가 돌아오는 길 마음이 즐거웠다. 


한국인들은 항상 화가 많이 나 있어 안타깝지만. 난 나의 한국이 분명 잘 해낼 거라고 믿는다.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고 악착같은 한국이니까. 못할 리가 없다. #深信不疑  너무 열심히 하느라 모두에게 과한 피로가 쌓이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햄통 #햄리포터 #중국생활 #베이징 #北京 #新冠肺炎 


 @ Beijing, China

매거진의 이전글 2월 9일. 의지와 상관없는 미니멀라이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