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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햄통 Jul 03. 2020

복숭아의 계절

내가 좋아하는 중국, 내가 좋아하는 복숭아

나의 패이보릿 과일은 복숭아다.

그리고 난 중국에 그렇게 많은 복숭아 종류가 있는 줄 몰랐다.


알고보니 중국은 복숭아의 고향이었다.

삼국지, 서유기를 비롯한 고전에도, 그림에도 복숭아가 자주 등장했다.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시집인 <시경(詩經)>(서주~춘추전국시대, BC 11세기~6세기)에서도 원유도(園有桃) 라는, 복숭아 나무를 소재로 쓴 시가 나온다.


도원결의......

내가 복숭아를 사는 방법은 세 가지였다.

첫째, 집앞 몰 지하 마트에 가서 산다. (고르기 귀찮다)

둘째, 배달 앱으로 슈퍼 배달을 시킨다. (빠르고 내가 안 골라도 되지만 물건이 랜덤이라는 위험이 존재함)

셋째, 춘보(春播) 앱에서 산다. (무농약, 유기농 상품을 많이 다루는 곳으로 조금 비싸지만 언제나 퀄리티 보장)

넷째, 복숭아농장 아저씨한테 위챗으로 메시지를 보낸다.  


중국에 처음 갔을 때는 1번이 가장 간편한 방법이었으나, 중국 생활에 적응하며 차차 마트에 가서 고르는 것마저 매우 귀찮게 느껴졌다. 개인적으로 퀄리티에 대한 요구가 높은 편이라 2번 방법을 통해 과일을 사는 일은 드물었다. 배달앱을 통해 슈퍼를 볼 때는 주로 물, 음료수, 조미료, 우유, 휴지와 같은 포장제품을 구매했다(배달앱에서 슈퍼를 선택한 뒤, 상품을 골라 장바구니에 넣고 결제하면 배달기사가 보통 30분 안에 갖다준다).


세번째 방법은 가장 애용한 방법이었다. 2주에 약 300위안(50,000원) 정도를 소비했다. 앱에 들어갈 때마다 계절에 맞는 싱싱한 제철 과일과 야채가 업데이트 되어 있었다. 네번째 방법은 동료 언니의 소개로 나중에 알게 된 복숭아 농사하는 아저씨였는데, 그때그때 재배하는 복숭아 종류가 달랐다. 문자를 보내서 복숭아 종류와 갯수, 가격 등을 확인한 뒤 주문을 하면 그날 따서 그 다음날 아침에 보내줬다. 신선함은 말할 것도 없없다. 위챗페이로 문자 보내듯 간편하게 결제할 수 있으니, 너무 빠르고 간편하고 신선하고 맛있었다.

중국이 복숭아로 유명(?)하다는 걸 처음 안 것은 6년 전쯤 베이징 근처 핑구(平谷)라는 곳으로 출장을 갔을 때였다. 만나는 사람들마다 이곳은 복숭아가 유명하다며 입을 모았다. 결국 길에서 한 박스를 사서 출장이 끝날 때까지 매일 5-6개씩 먹었더랬다.

핑구 복숭아는 대체로 조금 딱딱하지만 달콤하고 질리지 않는 맛이다.(안 딱딱한 거도 있음)


2017년 4월 중국에서 근무를 시작한 뒤 처음 맞이한 여름, 나는 집 앞 슈퍼 진열대에 촤르륵 복숭아가 깔리는 모습을 보고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날 생전 처음 본 복숭아가 판타오(蟠桃, 납작복숭아) 였다. 생소한 한자를 읽지도 못할 뻔했다. 기괴한 모습과 살짝 비싼 가격 때문에, 한두개를 들었다 놨다 하다가 뒷걸음질쳐서 집에 왔는데 다음날 출근해서 동료에게 물어보니 아주 맛있는 복숭아라고 했다. 집에 가는 길 당장 사먹고는 당장 판타오 팬이 되어버렸고, 한국 친구와 가족들에게 엄청난 복숭아라며 문자를 날렸다.


복숭아 사진 음청 많이 찍었던 거 같은데 찾기가 귀찮다. 애플 사진 앱에서 '복숭아'라고 검색하니 복숭아 사진 나오는 거 처음 알았음ㅋ


천도, 황도, 백도...한국도 그렇지만 중국도 종류와 생산 지역에 따라 복숭아 이름이 참 다양하다.

복숭아를 통칭하는 말은 桃子(타오즈) 이고, 자세하게 따지면 복잡하니 대충 먹고 사는 데 지장없는 정도로, 느낌적인 느낌으로 분류하자면


슈이미타오(水蜜桃, 수밀도) 는 하얗고 물 많은 천도 복숭아 느낌

요우타오(油桃, 유도) 는 겉에 윤기가 돌고 안은 딱딱한 복숭아

황타오(黄桃, 황도) 는 말그대로 분홍빛이 아닌 황색 복숭아

판타오(蟠桃, 반도) 는 도넛복숭아라고도 하는 납작 복숭아


인데 중국에서 먹고 감탄한 것은 판타오와 황도였다. 판타오는 크기가 작아서 살은 별로 없지만(부럽) 언제 먹어도 실패한 적이 없이 은은하게 달달하게 맛있었고, 한국에서는 별로 먹어볼 기회가 없었던 황도는 진짜 황도 복숭아 캔에 들은 바로 그맛이라 너무 놀라웠다. 당도가 높고 부드럽다. 그래서 황색인데다가+납작복숭아인 황색 판타오가 또 진짜 짱맛 꿀맛이다. (복숭아 종합 순위를 매겨보려 했는데 실패함. 그때그때마다 입맛에 따라 먹고 싶은 복숭아가 다를 것 같아서...차마 일렬로 줄 세울 수가 없는 것임ㅠㅠ)

영롱영롱쓰... 침 뚝뚝....ㅠㅠ


중국에 간 뒤로 나는 매년 여름이 좋았다.

정말 순전히 복숭아 때문이었다.

종류 많고 가격도 싸고 맛도 좋은 이곳에서 실컷 먹고 가야지, 하는 생각으로 여름 내내 냉장고에 이 복숭아, 저 복숭아가 끊이지 않았었다. 부엌에 쌓인 복숭아와 동거하는 나날들이 행복했다.


외출하는 길 집앞 과일트럭에 실린 '햇사레 복숭아' 박스를 보고나서 이마트몰 앱에서 복숭아를 찾다가 다소 실망스러워서 충동적인 복숭아 타령을 실컷 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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