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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햄통 Aug 03. 2020

중국 생활과 냉온수 교차법

기본 생활을 유지하기 위한 사소한 문제들과 매일같이 씨름했지만.

중국 생활을 3년 하고 한국에 와서 감동했던 점은 김이 나오는 따똣따똣한 물로 쭈욱 안정적인 샤워를 할 수 있다는 거였다. 물론 지역마다 집집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중국은 아직도 인프라와 디테일에 있어 부족한 부분이 많다. 내가 살던 곳도 수도 베이징 인데다가, 자비였다면 절대 못 버틸 서울 강남 뺨치는 월세였는데, 나쁜 곳은 아니지만 좋다고 말하긴 어려운 곳이었다. 

오른쪽 내가 살던 아파트 건물. 대문에 문이 어디로 뜯겨나가고 없다...

아파트 건물 대문은 언제 어디 갔는지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고 겨울이 되면 ‘거적대기’ (엄마 용어) #门帘 가 갖다 붙여졌다. 외벽 곳곳에 빵꾸가 뚫려 있고 배선이 드러나 짓다 만 듯했다. 처음 이사를 왔을 때 나는 한국에 있는 친구에게 그곳을 ‘흉물스럽다’고 형용했다. 집안은 괜찮아서 큰 상관 없었지만, 한국적 기준이나 가성비를 따져서는 이해가 안 되는 모습이었다.

중국에서는 여름과 겨울에 냉난방을 위해 이와 같은 일종의 커텐을 설치한다

복도에는 전구가 나가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그나마 걍 그때그때 있는 재고를 갖다 다는 건지, 복도마다 전구 종류가 하나같이 달랐다. 어디는 백열등 어디는 형광등, 어디는 조도가 낮고 어디는 반만 켜져 있고... 엄마는 말했다. “아니 이런데 다들 가만히 있는 거니?” 

층수는 마커로 직접 쓰는 스웩~ 알람경보인지 뭐시기인지는 떨어져서 덜렁덜렁거리고 있다

한국 기준에서 엘레베이터는 꽤 지저분했다. 형광등 덮개가 제대로 있는 곳을 본 적이 별로 없고 바닥도 자주 오염되어 있었다. 고장도 잦았다. 엘베는 총 3개가 있었는데 3개가 동시에 작동한 적은 단한번도 없었다. 절약을 위해 일부러 그렇게 운영했는지도 모르겠지만, 여튼 1.2.3 엘베를 1-2, 1-3, 2-3 이런 식으로 항상 바꿔 가며 썼다. 

관리사무소 (物业) 가는 길. 오른쪽은 당직실

노르웨이에 살 때 기숙사 엘베가 멈춘 경험을 몇번 겪었고 어릴 때부터 가끔 엘베 악몽을 꾸는 다소 엘베 공포증이 있는 나였는데 중국에서는 오히려 낡은 엘베를 타며 그걸 걱정해 본적이 없다. 공포를 느끼는 대상에 반복적으로 노출시켜 공포증을 극복하는 노출치료처럼…뭔가 허름하고 답없는 엘베를 매일같이 경험하며 초월해버린 거였는지.

불을 켜도 어두컴커무~

그런 엘베에 광고는 항상 최신식이었다. 중국 아파트 엘베에는 전자광고판이 많았다. 주로 쁘띠성형, 영어학원, 루킨커피, 전자제품, 이유식, 자동차 등을 광고했는데 주기적으로 바뀌었다. 허름한 엘베의 모습에 비해 삐까뻔쩍한 ‘신식’ 광고가 신기했는지, 엄마는 몇번이나 그게 웃긴다고 했다. 아파트 건물 앞 바닥은 깨져서 금이 가고 깨진 돌 파편이 굴러다니는데 엘베 안 벽에는 깔끔한 최신식 광고판이, 광고판 안에는 ‘중국 아가에게는 국산 분유를 먹여야’ 한다며 #更适合中国宝宝体质 분유를 선전하는 장쯔이가, 루킨커피 광고모델 #代言人 인 탕웨이가 세상 예쁜 미소를 띄고 있었다. 

최신식 엘베 광고 사진을 제대로 찍어놓지 않아 아쉽지만...아쉬운대로  빼꼼 광고가 나온 사진을 찾았다

근 3년 내가 경험한 중국은 예전과 정말 달랐다. 변화했고 변화하고 있었다. 문을 열고 앞서 들어가는 사람이 문을 잡아주는 경우가 꽤 많았고(체감상 80%정도?) 엘베를 타서도 꽤 많은 경우 모르는 사람들이 행선지를 묻고 버튼을 눌러줬다. #几层?한국에서는 문을 잡아 주는 경우가 많지만 몇 층인지 물어 눌러주는 경우는 드문데, 중국에서는 체감상 60%정도가 그랬다.(완전 개인적 주관적인 체감임) 

어느날 일어나보니 공사한다고 아파트 앞 바닥을 다 때려부셔서 매우 험난한 입구가 되어 있었음

캐리어를 들고 왔다갔다 할 때도 대부분 도와줬다. 도움을 요청하지 않아도 들어주거나, 문을 열어주거나, 잡아주거나, 같이 밀어줬다.(주관적 체감 60%) 감동해서 고맙다고 하면 ‘没事儿’ 이라고 말하며 쿨하게 떠났는데, 전에도 포스팅한 적이 있지만, 난 그 没事儿 이라는 단어를 참 좋아했다. 직역하면 ‘일없다’는 뜻으로, ‘괜찮다’ ‘that’s okay’, ‘you’re welcome’에 해당하는 말인데, 성조가 2성-4성 결합이라서(위로 올라갔다가 아래로 떨어짐) 듣기에 경쾌하고 정말 ‘괜찮’은 느낌이 난다. (이 시대에 ‘괜찮다’는 말만큼 우리에게 위안과 편안함을 주는 괜찮은 말이 또 있을까!) 그들이 툭 내던지는 没事儿 에 외국인 통역사는 그렇게 심심찮게 감동을 하곤 했다. 

단지 앞에서 복숭아 파는 모습

아무튼??(이제 와서?ㅋㅋ) 대부분 아파트는 집마다 따로 보일러를 썼는데, 우리 집의 경우 설치한지 1년 밖에 되지 않은 #美的 브랜드의 새 보일러였으나 밥먹듯 고장이 났다. 자주 온수가 끊겼고, 아무리 고쳐도 계속 고장이 나서 나중에는 본의 아니게 냉온수 교차 샤워법을 실천했다(그런 샤워법이 진짜 있음. 혈액순환과 근육완화에 도움이 된다는 얘기가 있음). 예상치 못한 시점에 냉수나 온수가 나오면 서러움과 짜증이 샤워기 물처럼 쏴쏴 쏟아졌지만 뭐 정말 어쩔 수가 없었다. 

문제의 화장실. 멀쩡해 보이나 이사 와서 깨끗하게 만들기 위하여 무진장 애썼다. 환골탈태시킴.

중국에서 나는 그렇게 매번 고장과 씨름했다. 세탁기, 보일러, 가스레인지 등 집안의 물건들은  정말 약속이라도 한 듯 #不约而同 돌아가면서 고장이 나고, 화장실에는 도통 출처를 알 수 없는 담배 냄새가 올라왔다. 잦은 단수와 정전은 기본이고, 이미 습관이 될 때쯤 정말 갑작스런 단수로 새벽에 모자 쓰고 회사에 헬스장에서 가서 샤워를 한 적도 있다. 

그렇지만 꽤 아늑하고 내가 좋아했던 나의 중국 집.

전기, 가스 뿐 아니라 변기 물도 충전해서 쓰는 시스템이기 때문에 갑자기 변기 물이 안 내려가면 관리사무소에 달려가야 했다. 이미 레일이 어긋난 #脱轨 옷장 문도 매번 덜컹거리며 떨어지거나 열리지 않아서 내 인내심을 테스트했고, 낡은 매트리스는 2년 넘게 내 허리의 근력을 테스트 했으나 결국 갈아치워야 했고. 여름에는 태어나서 처음 본 좀벌레가 나왔고 나중에는 바퀴벌레도 나왔고...

항상 여기저기가 고장, 막힘, 공사 ^^

살기도 바빠 죽겠는데 매번 그렇게 나는 기본 생활을 유지하기 위한 사소한 문제와 끊임없이 씨름했다. 하지만, 문제는 발생했지만 매번 방법은 있었다. 관리사무소 사람들은 세심하지는 않았지만 인정과 진실함이 있었고, 보일러 서비스나 가스, 전기, 물 충전 등은 결제가 너무나 간편해서 용서가 됐다. 좀벌레를 해결하는 약은 #타오바오에서 10초만에 구매해서 다음날 받았고, 바퀴벌레 업체는 위챗을 통해 신청하니 하루 만에 집에 와서 300위안에 처치를 해주고 내게 위안을 선사했다.

세탁기 고치러 온 아저씨.  알리페이로 순식간에 결제!

그렇게 냉온수 교차 샤워법 같던, 불편함과 신기함이, 짜증과 감탄이 공존하던 중국 생활이었다. 그래서 내내 흥미로웠다.

우리 집 핫스팟. 예쁜 하늘, 미세 먼지 가득한 하늘, 비오는 하늘, 밤하늘을 모두 구경했던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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