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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햄통 Aug 21. 2020

치과에서 나는 왜 작아지는가

치과 의자에 누워

취이이이~ 촤아아아~

소방호스로 불난 옥상에 물 끼얹듯 내 어금니를 향해 끊임없는 물줄기가 쏟아졌다. 바람과 물은 번갈아가며 어금니를 샤워시키켰고 침은 생기는 족족 압수다.


몸이 점점 추워졌다. 담요를 달라고 해볼까... 그렇지만 난 입을 벌린 채로 말하는 방법을 모르는, 그저 평범한 인간일 뿐이다. 참자.


세상에는 별별 인간이 다 있으니 치과에 와서 장난치는 사람도 있지 않을까? 예를 들면 의사나 치위생사가 입속에 손을 넣고 치료하는데 그걸 앙 깨물어버린다든지...


치과는 언제나 무서운 곳이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려 해도. 그게 뭐라고 가끔은 몸이 벌벌 떨린다. 살면서 ‘몸이 벌벌 떨리는’ 경험을 얼마나 할까? ‘병원’ 분야에서 그나마 큰 두려움이 없는 편인 나인데도.


손이 떨리고 다리가 떨리고 어떨 땐 입이 떨렸다. 마치 요가할 때 근력 부족으로 한 자세를 유지하지 못하고 덜덜 떠는 것처럼. 부끄러워 입을 닫고 싶었지만 계속 입을 아ㅡ벌리라고 했다.


돌돌돌돌...덜덜덜덜...입 속 여기저기서 공사가 이뤄지는 동안 내가 할 수 있는 건 이런저런 생각 뿐이었다. 정신을 분산시켜 두려움을 없애려는 전략이다.


보이지 않는 이 도구들은 어떻게 생겼을까? 내가 생각한 것보다 더 부드러울지 몰라. 언젠가 그런 적이 있다. 엄청난 소음과 진동에 굉장히 거칠게 생긴 도구일 거라 생각했는데, 치료를 끝나고 힐끗 보니 가지런히 꽂힌 드릴 머리들(?)은 생각보다 작고 섬세했다. 그중 몇 가지는 부드러운 재질 같기도 했다. 다만 입 안이어서, 귀와 가까워서, 예민한 부위여서 더 크게 느껴진 거겠지. 살면서 많은 일들은 이렇게 상상 속에서 부풀려진 것일지도 몰라.


그럼 적어도 소름끼치는 소리가 안 나게 만들 수는 없을까? 생각해보면 치과 치료도 세월이 지나면서 많이 간편해지고 덜 아파지고 여러모로 발전했는데, 왜 소름끼치는 기계 소리는 여전한 걸까? ‘무소음 스케일링’ 이런 게 있으면 엄청난 인기를 끌텐데. 기계 자체의 소음이 문제가 아니라 치료 위치가 문제라면, 귀에 뭘 꼽아 넣어주면 어떨까? 소음 방지용 귀마개 음악이라든지... 그러면 통증에 둔감해져서 위험할 수 있나?


치과가 무서운 이유는 안 아프다 아프다를 반복하기 때문이 아닐까. 괜찮다가도 갑자기 강하게 시릴 수도 있고. 그런 위기가 언제 올지 몰라 긴장하니 내내 손에 땀을 쥐게 된다.


그래서 치과 의사는 신중하고 친절해야 한다. 내가 아무리 대단한 사람이라도(안 되어 봐서 모르지만) 의료진의 작은 행동에도 난 꿈틀꿈틀 번떡번떡 무서워할 거니까.


의사의 콧노래에도 발구르는 소리에도 나는 귀를 쫑긋 세웠다. 눈을 가리고 있는 상황에서는 청각이 더욱 발달한 건지, 어떤 때에는 치과에서 흘러나오는 배경음악에 과하게 의지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기도 한다.


내가 의사의 일거수일투족에 긴장한다는 사실은 반대로 작은 새처럼 떨고 있는 내게 의료진의 작은 손길과 말 한마디가 큰 의미라는 뜻이기도 하다.


한번은 대학병원에서 조금 위험할 수 있는 위치의 사랑니를 빼는 큰 수술을 했다. 부들부들 떨고 있는 날 본 간호사는 부드럽고 친절한 목소리로 말을 걸어줬을 뿐만 아니라 내 손을 잡아줬다. 무슨 말을 했는지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괜찮다고 자기가 옆에 있어줄 거란 얘기였던 거 같다. 그 한마디가 그날 내 정신을 지탱하는 데 있어 80퍼센트 정도의 역량을 발휘했다.


난 하나님께서 수술실에 들어오지 못한 엄마 대신 그 천사 간호사를 보내셔서 나를 지켜주시는 거라고 생각했다. 정신이 나약한 상황, 극도로 불안한 상황에서는 의료진의 어떠한 따뜻한 말, 손길도 모두 위로가 된다.


치과의사들은 외로울 것 같다. 환자들이 말을 하지 못하니까. 뭘 물어봐도 꿰에에...아아앙...꾸우우...라고 대답할 수 있을 뿐이다. 그걸 알고도 치과 의사는 계속 말을 시킨다.


환자가 말을 안 하는 게 나으려나? 어차피 여기 아프다 저기 아프다, 이래라 저래라, 어떡하냐, 그런 얘기가 대부분이겠지. 어쨌든 의사는 아마 입 벌리고 반벙어리 상태인 환자와 얘기하는 게 익숙할테고 나름의 알아듣는 방법, 대화하는 전략이 있을테지.


치과의사들이 매일 들여다보는 입의 세계는 어떨까? 남이 보는 내 입속은 어떻게 생겼을까? 내가 치과 의사라면 새로 보는 동굴(환자 입)에서 인테리어(치과 치료) 하는 꿈을, 하루가 멀다 하고 꿀지도 몰라.


이쯤 생각 하니, 치과 치료가 끝났다. 히히. 오늘도 무사했어요. 감사합니다. 집에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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