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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햄통 Aug 29. 2020

피아노와 통역의 닮은 점

오늘도 통번역 타령

나는 피아노 치는 걸 좋아한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잘 치지 못한다) 평소 생각이 너무 많아 내 생각에 내가 치여 사는 느낌인데 피아노를 칠 때만은 아무 생각없이 몰두 할 수 있...(는 줄 알았는데 또 생각을 한 결과 이 글을 쓰고 있다.) 아무튼 피아노를 좋아한다.
그런데 원래도 잘 못 치는데 중국에 가 있는동안 오래 쉬었더니 더 못 치게 되었다...집에 돌아와서도 조율이 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피아노는 물건 쌓는 용도로만 사용되었다. 통번역이든 피아노든 뭐든 간에 쉬면 티가 난다. 계속 꾸준히 해도 유지할까 말까다. 그래도 정말 많이 친 곡은 손이 기억한다. 마치 어릴 때 외운 만화영화 주제곡을 입이 기억하는 것처럼. 주제곡의 뜻을 알지 못했던 시절의 나는 아마 소리를 외웠을 거다. 나중에 다 커서 그 의미를 알고 ‘어머’ 했던 적도 있다. 피아노도 마찬가지. 생각하지 않고 손이 움직이는 곡이 있다. 분명 뇌를 거치지 않고 일어나는 일이 아닐텐데, 무의식적 경지의 행동이 이루어질 때 뇌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통역을 할 때에 항상 그런 경지면 얼마나 좋을까.
통역을 너무 많이 했던 언젠가는, 뇌를 거치는 게 귀찮은 나머지 화자의 말을 듣자마자 생각을 하지 않고 입이 먼저 움직이는 일도 있었다. 통역을 할 때 보통은 머릿속으로 재구성을 하거나 어떤 단어를 선택할지 듣는 동시에 생각을 하는데, 그런 과정 없이. 그렇다고 엉망으로 하는 건 아니고, 이제는 인이 박혀 초월한 경지구나, 하는 느낌이었다. 통역 퀄리티가 더 좋고 나쁘고와는 상관없이, 아주 가끔 어떤 선(체력한계선이라든지...)을 넘어서면 그랬다. 하지만 손이 기억한다는 것, 입이 기억한다는 것은 무수한 연습의 결과이다. 악보를 보고 연주하는 것과 외워서 연주하는 건 다르다. 외국어를 공부할 때 암기가 중요한 이유다. 피아노를 한창 연습하던 때, 하면 할수록 피아노와 통번역이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통번역 중심적 사고 때문인지 어떤 일이든 원리가 비슷한 건지 모르겠지만. 혼자 재밌어하면서 둘의 닮은 점을 이렇게 정리했었다. 1. 집중해야. 다른 생각하면 금방 티난다. 2. 틀리는 데는 항상 틀린다. 3. 내가 어려운 건 남도 어렵다. 4. 연습은 속이지 않는다. 5. 하면 할 수록 좋아진다. 6. 습관은 무섭다. 누가 고쳐주기 전까지 계속 한다. 7. 경쟁자가 있는 건 자기 발전에 도움이 된다. 8. 잘 하는 사람은 멋있다. 9. 원작자/화자의 배경을 이해하는 게 도움이 된다. 10. 손이나 입이 기억해서, 뇌보다 먼저 작동하는 것처럼 느껴질 만큼 익숙해지는 그 경지에 다다랐을 때 느낌이 참 좋다. 그랬을 때 물론 성과도 좋다. 입만 살아서 통역사인가보다. 다 아니까 이제 열심히 실천만 하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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