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통번역 타령
나는 피아노 치는 걸 좋아한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잘 치지 못한다) 평소 생각이 너무 많아 내 생각에 내가 치여 사는 느낌인데 피아노를 칠 때만은 아무 생각없이 몰두 할 수 있...(는 줄 알았는데 또 생각을 한 결과 이 글을 쓰고 있다.) 아무튼 피아노를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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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원래도 잘 못 치는데 중국에 가 있는동안 오래 쉬었더니 더 못 치게 되었다...집에 돌아와서도 조율이 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피아노는 물건 쌓는 용도로만 사용되었다. 통번역이든 피아노든 뭐든 간에 쉬면 티가 난다. 계속 꾸준히 해도 유지할까 말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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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정말 많이 친 곡은 손이 기억한다. 마치 어릴 때 외운 만화영화 주제곡을 입이 기억하는 것처럼. 주제곡의 뜻을 알지 못했던 시절의 나는 아마 소리를 외웠을 거다. 나중에 다 커서 그 의미를 알고 ‘어머’ 했던 적도 있다. 피아노도 마찬가지. 생각하지 않고 손이 움직이는 곡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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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뇌를 거치지 않고 일어나는 일이 아닐텐데, 무의식적 경지의 행동이 이루어질 때 뇌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통역을 할 때에 항상 그런 경지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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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역을 너무 많이 했던 언젠가는, 뇌를 거치는 게 귀찮은 나머지 화자의 말을 듣자마자 생각을 하지 않고 입이 먼저 움직이는 일도 있었다. 통역을 할 때 보통은 머릿속으로 재구성을 하거나 어떤 단어를 선택할지 듣는 동시에 생각을 하는데, 그런 과정 없이. 그렇다고 엉망으로 하는 건 아니고, 이제는 인이 박혀 초월한 경지구나, 하는 느낌이었다. 통역 퀄리티가 더 좋고 나쁘고와는 상관없이, 아주 가끔 어떤 선(체력한계선이라든지...)을 넘어서면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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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손이 기억한다는 것, 입이 기억한다는 것은 무수한 연습의 결과이다. 악보를 보고 연주하는 것과 외워서 연주하는 건 다르다. 외국어를 공부할 때 암기가 중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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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를 한창 연습하던 때, 하면 할수록 피아노와 통번역이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통번역 중심적 사고 때문인지 어떤 일이든 원리가 비슷한 건지 모르겠지만. 혼자 재밌어하면서 둘의 닮은 점을 이렇게 정리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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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집중해야. 다른 생각하면 금방 티난다.
2. 틀리는 데는 항상 틀린다.
3. 내가 어려운 건 남도 어렵다.
4. 연습은 속이지 않는다.
5. 하면 할 수록 좋아진다.
6. 습관은 무섭다. 누가 고쳐주기 전까지 계속 한다.
7. 경쟁자가 있는 건 자기 발전에 도움이 된다.
8. 잘 하는 사람은 멋있다.
9. 원작자/화자의 배경을 이해하는 게 도움이 된다.
10. 손이나 입이 기억해서, 뇌보다 먼저 작동하는 것처럼 느껴질 만큼 익숙해지는 그 경지에 다다랐을 때 느낌이 참 좋다. 그랬을 때 물론 성과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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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만 살아서 통역사인가보다. 다 아니까 이제 열심히 실천만 하면 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