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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햄통 Mar 07. 2021

진심과 노력에 보내고 싶은 응원

맛사지와 다롄 출장의 기억

“너무 친절하신 것 같아요~~~ 정성껏 해주셔서 감사해요.”

“어머어머, 고객님...정말요. 감사합니다. 그런 얘기를 해주시다니...”

“아마 많은 분들도 그렇게 생각하셨지만 말을 안 하셨을 거 같아요. 저는 너무 그 정성의 마음이 느껴져서...”

“고객님, 저 진짜 눈물날 뻔 했어요.” 

“해주는 분이 디테일까지 신경쓰셔도 받는 사람은 당연하게 생각할 수 있지만, 그런 마음을 아는 사람은 아는 것 같아요.”


어제 맛사지를 받으러 갔는데 맛사지사가 너무 친절하고 진심과 정성을 다해 해주시는 게 느껴져서 나도 모르게 중간에 솔직하게 속마음을 고백했다. 맛사지사는 본인이 요즘 고민하고 있던 부분에 대해 내가 이야기를 해줘서 울컥했다며 힐링받으러 오신 분께 힐링을 받는 것 같다고, 청량하고 상냥한 목소리로 얘기했다.


거기까지 얘기했음 아름답게 끝났을걸, 고객님도 서비스직에 종사하시냐고 묻기에 통역을 하는 사람이라고 대답했고, 그렇게 얘기가 길어지다보니 1절만 해서 아름답게 감동으로 끝낼걸 구구절절 수다떨어서 힐링분위기 다 깎아먹었네, 돌아오는 길에 생각했다. 


하지만 난 그 얘기가 꼭 하고 싶었다. 내가 하는 일을 ‘잘’ 하기 위해서는 백조가 물 아래서 끊임없이 발장구치듯 안 보이는 곳에서 쉼없이 노력해야 한다. 그걸 알아주는 사람은 드물지만, 그 노력이나 진심은 드러나기 마련이고 결과로써 차이가 난다. 그리고 누군가는 그걸 느끼고, 알고, (결과물을) 누리고, 감동하고, 감사하게 생각한다. (당연히 여기지 않고 감사하게 생각한다는 걸 당신이 알게 되어 그 노력에 조금이나마 보상이 되었으면, 동력이 되었으면 좋겠다.)


지역방송에 보도된 탕이쥔 랴오닌성 성장과의 면담 장면 

2018년 5월, 나는 노영민 주중대사님을 모시고 랴오닝성을 방문하여 장유웨이(姜有为) 선양 시장, 탕이쥔(唐一军) 랴오닝 성장과 면담하고 다롄까지 고속철도로 이동했다. 같은 해 같은 달, 18년 5월 8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중국을 깜짝 방문하여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산책하며 회담하여 화제가 된 적이 있었는데, 당시 다롄의 휴양지로 잘 알려진 해안가가 바로 방추이다오(棒棰岛)였다. 출장으로 그곳을 방문한 시기가 5월 말이었으므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왔다 간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탄청쉬(谭成旭) 다롄 시장과 그곳을 산책하고, 별장에서 면담과 만찬을 갖기까지 계속 수행하며 통역하였다. 탄청쉬 다롄시장은 다른 직원들과도 격없이 대화하는 등 편하고 유쾌한 분이라는 인상이었다. 


사실 출장이 워낙 많았던 시기라, 기억이 선명하지는 않다. 당시 간단히 기록해놓았던 내용을 보며 상황을 정리해보았다. 그렇게 기억도 (벌써) 가물가물해진 이 시점에, 인스타를 통해 18년도 주중국다롄출장소에서 근무 중이셨다는 분으로부터 이런 DM을 받은 것이다. 



'태어나서 본 한국인 중에 가장 중국어를 잘 한다'. '중국인보다 더 중국인 같은 통역사님'.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초중고를 모두 한국에서 마치고 중국 연수 경험은 3개월이 고작인, 대표적 국내파인 내게 이런 칭찬은 정말 과분하고도 감격스러웠다. 그리고 좀 뜬금없지만 생각해보니 내가 어제 맛사지샵에 가서 그 주책을 떤 건, 최근 이 분의 메세지로 받은 따뜻한 응원으로 생긴 용기 때문인 것 같았다. 칭찬받을 만한 분께는 칭찬과 격려를 해드려야 해, 그런 마음이었달까. 


공부하지 않아도, 준비를 덜 하면 덜 한대로, 최선의 결과를 내지 않아도 나에게 부끄러운 것만 좀 용서하고 극복하면 되는 일인데, 나는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 어디서 그런 마음이 나왔는지 모른다. 나는 대사님을 존경했고, 전문통역사라는 자리에서 최선의 결과값을 내고 싶었고, 내가 끌어낼 수 있는 능력치의 최대치를 끌어내고 싶었고, 그저그런 사람보다 기여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고, 그리고 무엇보다 좋아했다. 통역 자체를, 내가 맡은 임무를, 그 순간과 기회와 과정과 모든 시간들을. 


통역은 본래 투명인간 같이 존재감이 거의 없어야 성공하는 거라 생각한다. 못해서 망쳐서도 안 되고 잘 하려고 하다가 존재감을 부각시켜도 안 된다. 티도 안 나고 노력을 인정받지 못하는 게 슬프지만 잘해야 본전이란 걸 받아들이고, 피드백이 없는 것도 당연히 여겨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잘 했다 해주시면 너무 좋고 감사하지만, 피드백을 받지 않는 상황도 많다. 이에 일희일비하면 안 되겠다는 의미)


“하, 통역사님, 통역을 진짜 잘 하시네요!”

한번은 처음 만난 담당자와 나간 면담 자리에서 통역을 하고 나오는데, 담당자가 내게 고맙다며 말을 건넸다. 이에 그 윗분이 옆에서 덧붙인 코멘트를 나는 평생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그럼 통역사인데, 통역을 잘 해야지.”

그 다음 멘트는 그 분의 신분과 직책을 나타낼 수 있어 생략하겠다. 쨌든 나도 내 자리에서 하는 일을 하는 게 당연한데, 저 사람도 그게 일이니 그걸 잘 하는 게 당연하다는 게 요지였다. 


잘 해야 하는 게 당연하지만, 잘 하게 되는 게 당연하지는 않다. 통역사로서 그걸 알아주길 바라지 않는 것이 마땅한 자세라고 생각하지만, 내가 선택한 것이고 그 과정이 즐거웠기에 억울할 것도 하나 없지만, DM에서 ‘그 찰나의 순간을 위해 얼마나 공부를 열심히 하셨을 지 존경하고 또 존경합니다’ 라는 문구를 본 순간, 마음이 뭉클해졌다. 과분한 칭찬에 머리가 숙여지기도 했다. 동시에 이미 몇 년 전의 그때의 나에게는 큰 위안이 되었고, 그때만큼 긴장하지 않고 살고 있는 지금의 나에게는 따끔한 충고로 다가왔다.  


유명 미술사학자였던 존 러스킨은 <회색과 검은색의 편곡: 화가의 어머니>를 그린 미국 화가 제임스 맥닐 휘슬러에게, “대중의 얼굴에 물감통을 부어 버린 것 같은, 고작 이틀에 완성된 그림에 200기니라는 거금을 붙였다니 파렴치하다”고 혹평했다고 한다. 이에 휘슬러가 재판 변호문에서 한 말.


“나는 이틀간의 노동에 대한 가격을 매긴 것이 아니다. 그것은 내 일생의 작업으로 얻은 지식에 대한 가격이다.”(김지연, <그림으로 화해하기> 中)


무형이든 유형이든 누군가 선보인 훌륭한 성과의 가치는 꾸준히 축적된 결과물이다. 그래서 잘 하는 사람은 정말 멋있고 존경스럽다.


'방추이다오'는 '홍두깨섬'이란 뜻으로 섬 모양이 빨랫방망이를 닮았다 하여 이름 붙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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