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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햄통 Aug 13. 2021

치파오 속 만찬 메뉴

메뉴 번역에 대해

어느 김밥집 

이미지와 실물은 다를 수 있습니다.

The image and real thing can be different.

웅???


Twigim Udong? 트위김 우동~

Naengmomil? 내앵모뮐~

웅???




중국에서 관저 행사나 중요 외빈 초청 행사가 있을 때 영문으로 메뉴번역 하는 일을 고민한 적이 있다. 웬만한 한국 요리는 중국에 소개되었거나 이미 식당에서 판매되고 있는 경우가 많고, 한자어로 된 요리 이름은 그대로 써도 괜찮은 경우가 있기에 중국어로 번역하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니었으나, 메뉴 이름을 영어로 번역하는 게 문제였다.


예를 들어 ‘삼계탕’과 ‘잡채’를 번역한다고 치면 다음과 같은 세 가지 방법이 있다.

1. 의역: Chicken soup

2. 음역: Sam-gye-tang

3. 음역과 해설: Sam-gye-tang(Chicken soup)


잡채

1. 의역: Noodle with vegetables

2. 음역: Jap-chae

3. 음역과 해설: Jap-chae (Noodle with vegetables)


1번은 확실한 의미를 전달한다는 장점이 있지만 우리 음식 이름을 소개할 수 없다는 아쉬운 점이 있고, 2번은 외국인이 봤을 때 대체 어떻게 생겨먹은 뭐가 들어간 음식인지 알 수 없다는 단점이 있다. 3번은 그런 장단점을 모두 보완하지만, 길다. 길어서 메뉴판에 넣기 힘들다.


중국에서 중요한 오만찬 장소를 수없이 다니며, 진귀한 음식, 신기한 식기, 장식이나 물건도 구경할 기회가 감사하게도 많이 있었다. (통역사가 과연 먹을 수 있느냐는 또 다른 문제ㅠㅠ)


중국은 많은 선입견과는 달리 정말 아이디어와 창의력이 넘치는 곳이다. 가장 기억에 남는 메뉴판은 바로 치파오(旗袍) 메뉴판ㅎㅎㅎㅎㅎ 귀빈들 식탁에 다소곳이 놓여있던 빨간 치파오. ‘이게 머어지’ 하고 살포시 옷을 양쪽으로 제껴보면(앗 야해!) 안에 오늘의 메뉴가 쪼로록 쪼로록 나열되어 있다.

귀여운 치파오는 가져가도 된다고 해서 행사 후 햄통이 스피드 있게 햄스터 줍줍~ 손님들은 이 치파오를 기념으로 가져가지 않고 놔둘 경우에는, 안에 메뉴를 적힌 천만 바꾼 뒤 재활용하는지 궁금해하기도 했다. 한번 쓰고 버리긴 좀 아깝자낭.


중국은 1. 일단 기본적으로 음식의 종류가 너어엉어어어어어엉어어어어엉어어어무 많아서 귀빈 만찬에 뻔한 음식이 나오지 않을 가능성이 많고, 2. 기본 음식에도 주방장의 재량에 따라 이런 저런 재료를 추가하거나 뺀 뒤 음식명을 바꿀 수 있으니 외국 손님 입장에서 오늘 나온 음식명을 외우는 게 별 의미가 없을 수 있다. (너무 맛있어서 꼭 외워가고 싶다면 모를까) 3. 때로 자부심 넘치고 열정적인 중국 인사는 (안물안궁) 외국 귀빈들에게 친절히 음식을 소개하기도 한다. ‘이 지방 특산인데...뭐로 만든 음식이다. 건강에 좋다(는 말 거의 항상 있음)’.


산둥성 지난시의 지도자 만찬 자리에서
엄마가 음식 갖고 장난치는 거 아니랬는데엥...
중국 최고인민검찰원에서


그래서 치파오 메뉴판에는 보다시피 음식 이름에 대한 중국 발음 표기 없이, 중문명과 영어 풀이 두 가지 방식이 병기되어 있는데, 중국 귀빈과 외국 귀빈이 참가하는 행사라는 점을 고려해 가장 짧고 효과적인 방식을 선택한 듯 했다. 


예를 들어:清蒸菠菜斑鱼 Steamed Grouper with Spinach 시금치와 함께 쪄낸 농어


다른 행사들에서도 대부분 그랬던 것 같다. 중국은 음식 이름 자체에 재료와 조리방법이 들어가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한국요리 'Sam-gye-tang', 'Gu-jeol-pan' 처럼 음역을 할 필요가 굳이 없었던 것이다. (한편 음식명에 재료와 요리법을 정직하게 쓰는 방식이 아닌, 비유적인 이름짓기를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장쑤성 음식인 狮子头 는 사자머리라는 뜻이지만 실제로는 약간의 국물과 함께 서빙되는 촉촉한 느낌의 야구공만한 미트볼이다)


식탁이 너무 큰 나머지 건너편이 아득----히 멀던 칭하이성 시닝시의 지도자 만찬 자리. 테이블 중간에는 '福'자가 쓰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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