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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뮤하뮤 Jun 28. 2024

가지런한 가지가지

하나도 안 유별나

  가지는 가지런하게 많이도 난다. 조그맣게 열매가 달렸다 싶으면 다음날 3배는 자라 있는 것이 가지다.

갑자기 길어져서 땅에 닿을 것 같던 가지들. 가지는 의외로 줄기와 연결되어 있는 부분에 억센 가시가 있다. 생각 없이 만지다 찔리면 상당히 아프다. 한번 열매 맺기 시작하면 어마어마한 양의 가지가 생산되므로 정신을 차리고 열심히 수확해야 한다. 길고 까맣게 반질거리는 가지들, 자세히 보니 완전한 검은색은 아니고 보라색에서 시작된 검정이다. 이걸 뭘 해 먹을까 고민해 본다.

  지금 생각나는 가지요리는 다음과 같다.

가지나물- 가지의 길이를 세등분 한 뒤 길쭉하게 썰어서 살짝 데친다. 손으로 물기를 꽉 짜낸 후 참기름 한 방울과 간장 두 방울로 간을 한다.

가지볶음- 가지를 자르고 싶은 모양으로 대충 자른 뒤 센 불에서 기름을 넣고 볶는다. 굴소스를 살짝 넣어서 마무리한다. 생각보다 가지가 기름을 많이 먹으니 주의

가지튀김- 가지를 일정한 크기로 썰어서 튀김옷을 입힌 후 기름에 튀긴다. 정말로 기름을 많이 먹어버리니 가지는 기름 먹는 하마다.

가지전-가지를 동그랗게 썰어서 부침가루와 계란물을 입혀서 앞뒷면으로 노릇노릇하게 굽는다.

가지된장국-된장에 가지를 넣는다. 다시마도 채 썰어 넣으면 맛있을 것 같다.

  가지를 주제로 한 요리 중 내가 특히 좋아하는 것은 중화풍의 요리다. 가지는 왠지 어향동고, 마파가지, 가지 덮밥 같은 게 잘 어울린다. 가지는 제멋대로인 갖가지 향신료들을 넉넉하게 품어준다. 가지 자체로 가진 본연의 맛에 큰 특징이 없어서일까.


  올봄에는 한살림에서 구입한 말린 가지 한팩으로 이것저것 잘해먹었다. 밥을 할 때 말린 표고버섯과 말린 가지를 넣고 해 먹으면 맛있다. 만드는 과정도 간단하다. 압력밥솥에 쌀과 지퍼백에 포장되어 있는 말린 표고와 가지를 넣고 물을 붓고 취사를 누른다. 밥이 완성되면 간장만 넣고 쓱쓱 비벼 먹어도 꿀맛이다. 물론 참기름을 넣으면 더 맛있다.


  또 뭐 맛있는 거 없을까 궁리하다가 한살림에서 같이 구입한 불고기양념을 써봤다. 말린 가지를 물에 불린 후 꼭 짠다. 불고기 양념병을 따서 큰 수저로 세 숟갈정도 양념에 재워서 볶았다. 고슬고슬하게 지은 밥에 불고기양념 말린 가지 덮밥을 올린 후 얇게 썬 단무지와 함께 먹으면 좋다.


  올여름 어제가 되어서야 처음 햇가지를 먹었다. 요가원에서 집에 오는 길에 야채 직거래 장 같은 게 서는데 온갖 야채와 과일들이 바구니 바구니 담겨있다. 가격이 엥, 이게 맞다고 할 정도로 싼데 개수가 너무 많아 오히려 잘 안 사게 된다. 그날따라 가지가 반짝반짝 윤이 나는 것이 오랜만에 가지요리를 먹고 싶어졌다. 가격을 보니 가지가 2000원에 6개란다. 아무리 싸도 6개는 필요 없는 것 같아서 1000원을 내고 3개만 사 왔다. 아스파라거스도 6개 묶음에 1000원, 파프리카도 한 개 1000원이라 함께 데리고 왔다.


  가방에서 반지르르하게 윤이 나는 가지를 꺼낸다. 가지를 손에 들고 유심히 바라본다. 냉장고도 뒤져본다.

두부면 두팩, 두부 한팩, 콩나물, 새송이 버섯이 한숨을 쉬며 누워있다.  아, 지난번에 1+1으로 사둔 양념이 있을 텐데......? 뒤져보니 콩나물 밑에 마파두부소스가 깔려있다.

이 소스는 마라맛이 상당히 존재감 있다(그렇다고 위경련 날정도는 아니다). 패키지를 읽어보니 시추안 마파두부 소스라고 쓰여있다. 사천 피쎈 두반장. 화자오. 마자오로 얼얼한 풍미라 쓰여 있다.


  살짝 달군 프라이팬에 현미유를 두르고 대충 썬 가지와 아스파라거스, 파프리카를 볶는다. 그리고 두부면 두 팩의 물을 따라버린 후 투척한다. 그리고 마파두부소스를 끼얹은 후 젓가락으로 쓱쓱 비빈다. 재료에 소스가 살짝 졸아든 느낌이 들면 불을 끈다. 접시에 밥을 담고 가지마파두부면을 얹어서 먹으면 이곳이 사천인지 아닌지 헷갈린다. (사실은 매우 순한 맛이라 안 헷갈린다.)


  가지는 안 유별난 재료이기 때문에 마라나 깐풍기양념 불고기 양념과 두루 잘 어울리는 것 같다. 곁들여먹을 반찬을 생각해 본다면 땅콩을 간장과 설탕에 조린 땅콩 졸임이 어울릴 것 같다. 그리고 오이를 두들겨 때린 후 씨를 제거한 뒤 숭덩숭덩 썰어 레몬즙과  다진 마늘로 양념한 오이무침도 맛있을 것 같다. 가지와 오이를 썰어 넣은 가지 오이냉국도 시원할 것 같다. 곧 장마가 시작된다는 데 습한 부엌에서 땀을 흘리면서 가지가지 가지런한, 안 유별난 가지 요리를 많이 해 먹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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