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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뮤하뮤 Jul 05. 2024

횡단보도 앞에 생긴 꽈배기집

만둣집의 수증기가 그대로 구름이 돼버려

  횡단보도 앞 하루에 한두 번은 지나가면서 보는 곳이다.  그전에는 빵집이 있었다. 제빵사의 이름을 걸고 하는 긍지 높은 집 같았는데 하나둘 짐을 빼더니 나가버렸다. 빈 가게에는 깔세라고 하던가 단기임대로 봇짐을 싸들고 온 사장님들이 싼 가격에 물건을 팔고 나갔다. 처음에는 스포츠 의류, 다음에는 만원 이만 원대의 여성의류, 그다음에는 가방집이 들어왔다. 다음은 어떤 업종이 들어오려나 궁금해하던 차에 큰 솥과 냄비 같은 것이 트럭에 실려왔다. 하루 만에 뚝딱뚝딱 설치를 하더니 간판 하나가 금세 달린다, 이반장만두, 색깔과 크기 모두 위풍당당하다.

오 만두집이로구나. 앞으로 저 길을 지나갈 때마다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수증기를 볼 수 있겠군. 누가 그러던데 만둣집 사장님들은 피부가 좋다고, 수증기에 얼굴이 촉촉해진다나(진짜일까?)


  오픈첫날, 플라스틱 진열장안에 도넛들이 먹음직스럽게 누워있다.  종류는 두 가지다. 아니 엄밀하게 따지자면 네 가지다. 밀가루 반죽을 해 길게 민 뒤 한번 접어서 가닥을 꼬아 기름에 튀겨낸 꽈배기, 찹쌀가루를 반죽해서 동그랗게 튀겨낸 찹쌀도넛을 철망에 잘 식혀둔다. 은색 스테인리스 쟁반에 설탕이 눈꽃처럼 흩어져있다. 집게로 꽈배기와 찹쌀도넛을 집어 기호에 맞게 설탕을 묻히기도 하고 그냥 포장해주기도 한다. 그래서 꽈배기, 찹쌀도넛, 설탕꽈배기, 설탕찹쌀도넛 총 네 가지의 도너츠가 준비되어 있다.


  그 옆에는 거대한 찜솥이 몇 개씩 층층이 쌓아져 있다. 솥이 커다란 것만큼 만두도 왕종류만 취급하는 것 같다. 만두종류는 두 가지가 있다. 김치 왕만두, 고기 왕만두. 만두 쪽은 유심히 안 봐서 자세한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 앞에는 반대편에서 걸어오는 사람들을 공략하기 위한 가판이 하나 나와있다. 그 위에는 노란색과 검은색술빵이 잔뜩 부풀어 투명한 비닐에 들어있다. 지나가던 사람들은 발을 멈추고 비닐봉지 안에 있는 뭔가를 먹으면서 고개를 끄덕인다. 술빵을 잘라서 맛보기로 둔 것이다. 신호등이 바뀌기 전에 시식용 이쑤시개를 봉지 속 빵에 찔러 넣고 입으로 가져가는 사람들, 그 모습을 보니 나도 먹고 싶어 졌다.


"꽈배기 두 개랑, 찹쌀도넛 아, 술빵도 하나 주세요."

"설탕 묻혀드릴까요?"

"(당연히)네!"

꽈배기와 도넛을 직사각형의 종이봉투에 담아준다. 종이봉투를 술빵과 함께 검은 비닐봉지에 넣어준다. 튀겨서 식히는 중인지 사람 체온보다 살짝 따뜻한 도넛과 꽈배기, 술빵이 흩뿌리는 비와 높은 습도에 행여 눅눅해질까 봐 노심초사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간식 먹기 딱 좋은 시간 오후 3시, 어떤 차를 곁들여먹을까 잠시 고민하다가 배도라지를 설탕에 재운 병을 냉장고에서 꺼냈다. 감기기운이 있는지 왠지 칼칼한 목을 만지며 "도라지가 목에 좋다지."라고 혼잣말을 한다. (요새 혼잣말하는 빈도와 재미가 높아졌다.) 설탕 묻힌 도넛에 설탕절임 배도라지 차, 정말 스윗하지않은가, 달콤함이란 장마철에 꼭 필요한 덕목이다. 주전자에 물을 끓이고 머그잔에 배도라지를 큰 숟갈로 세 번 넣는다. 너무 달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배도라지차를 빨리 먹어 없애고 새로운 차를 사고 싶은 마음에 무리를 한다. 얼음과 차가운 물을 넣고 아이스배도라지차로 할까 망설이다가 뜨거운 물을 붓고 잘 저어준다.


  도넛이 들어있는 종이봉투를 세로로 부욱 찢는다. 엄지손가락과 검지로 설탕이 듬성듬성 뭍은 꽈배기를 꺼내 들고 크게 한입 베어문다. 먼저 설탕이 어금니에 톡톡 씹힌다. 튀긴 갈색 밀가루를 입안 가득 넣고 씹다 보면 단맛과 고소한 맛이 어우러진다. 퍽퍽하게 목이 멜 것 같은데 생각보다 질감이 폭신폭신하다. 밀가루 반죽이 여러 번 꼬이면서 표면에 공기층이 많이 생성된 걸까(과학적인 건 모르겠다) 한입 두입하다보니 손에 든 꽈배기가 없어졌다. 남은 건 기름과 설탕이 범벅된 손가락뿐, 냅킨에 살짝 문질러 닦고 다음 목표를 공략한다. 이 틈에 배도라지차를 한 모금 마셔주는 것도 잊지 않는다. 아무리 목이 칼칼해도 그렇지 역시 얼음을 넣고 냉차로 마실걸 하는 후회도 곁들여준다.

이번에는 찹쌀도너츠다. 손으로 집으니 말랑 쫀쫀한 것이 바람 빠지듯 부피감이 푹 줄어든다. 한입 베어 물고 씹으니 꽈배기와는 다른 식감이 쫄깃하게 입안을 장악한다. 찹쌀도넛은 기름을 많이 먹는 편이라 느끼하자고 마음먹으면 얼마든지 느끼할 수 있는데 이 집 찹쌀도너츠는 꽤 담백하다. 베어물 때 귀에서 바삭바삭하는 소리가 날 정도로 겉은 바삭한데 속은 무척 쫄깃하다. 음. 합격


  꽈배기 하나와 찹쌀도넛을 먹고 남은 차를 다 마셨더니 배가 어느 정도 찼다. 좀 있다 저녁을 먹어야 하니까 적당히 해야겠다 생각하며 술빵 쪽을 흘긋 봤다. 포근한 질감에 구멍이 송송 나있다. 표면에는 건포도와 아몬드 슬라이스, 설탕 졸임 완두콩 따위가 듬성듬성 박혀있다. 맛도 안 보는 건 술빵에게 예의가 아니지(앗, 또 혼잣말을) 하며 모서리 부분을 조금 잘라낸다.

맛은 복잡하지 않고 단순하다. 나도 간단하게 평을 한다. “음 촉촉하고 달달하다. 내일 아침으로 먹어야지. “

(하지만 출출해서 밤 11시에 먹어버렸다.)

동네에 새로 생긴 집의 음식이 맛있으면 기분이 좋다. 이 집 장사가 잘 돼서 도넛 튀기는 기름소리, 만두 찌는 모락모락 한 수증기를 오래 보고 싶다.


간식 먹기 좋은 오후 네시, 선생님들도 하시던 일 잠시 두고 차 한잔 하시면 좋겠다.


(도넛 도너츠 마음대로 섞어 적었습니다. 도넛도 맛있고 도너츠도 맛있어서 그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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