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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묭 Jun 23. 2023

갓생이 힘든 이유

현생을 유지하기도 힘든 사람들을 위해

 어느 순간부터 사람들은 남들보다 부지런한 삶, 철저한 자기 관리를 하는 삶을 ‘갓생’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갓생을 사전에 검색하면 <‘갓’(God)과 ‘인생(生)’을 합친 합성어로, 부지런하고 생산적인 삶 또는 일상에서 소소한 성취감을 얻는 일을 규칙적으로 하는 것을 뜻하는 신조어. 생산적인 삶을 칭하는 MZ세대의 유행어로, 학업 및 운동 등을 열심히 하는 것을 아울러 말한다>라고 정의하고 있다.



유튜브에 갓생을 치면 ‘인터넷에서 유명하다는 갓생 사는 법 따라 해 보기’, 갓생 살고 싶다면 꼭 이렇게 해보세요’, ‘미라클모닝 새벽 5시 기상, 직장인의 갓생 브이로그’ 등 수많은 콘텐츠가 쏟아져 나온다. 갓생은 주로 새벽 기상, 운동, 일이나 학업에 대한 몰입과 성과, 독서, 외모관리 등을 성실하게 해내는 슈퍼인간의 모습을 보여준다.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나도 저렇게 살아보고 싶다는 동기 부여를 해주는 동시에 갓생을 살지 않으면 내 삶은 부지런한 삶이 아니라고 인정하게끔 한다.



대부분의 현대 직장인들의 일과는 통근 시간에 따라 오전 6-7시에 일어나서 회사에서 9시간을 보낸 후에야 저녁의 삶을 보낸다. 회사에서의 9시간에는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을 할 수가 없다. 일에 대한 열정과 관심사가 높은 사람이라면 회사에서의 시간이 즐겁고 보람될지도 모르지만 나와 내 주변만 봐도 그런 경우를 찾기는 힘들다. 주로 과중하거나 지루한 업무를 하면서 인류애가 사라지는 동료나 상사와 하루의 1/3 이상을 함께 보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집으로 돌아와 저녁을 먹고 나면 오후 7-8시가 되고, 그때부터 꿀 같은 하루 마무리를 위해 넷플릭스와 유튜브를 손에 끼고 새벽 1시까지 영상을 볼 지도 모른다. 여기에 야근이나 주말 출근까지 해야 하는 일이라면 회사 밖에서의 나만의 시간에 더욱 집착하게 된다.



일하지 않는 시간에 생산적인 일을 하기에는 내 에너지가 바닥인 데다, 고된 나를 위한 쉼을 주고 싶기 때문이다. 하지만 새벽까지 충혈된 상태로 휴대폰을 보는 것은 쉼이 아니다. 다음날 좋은 컨디션으로 일어나고 업무에 집중할 에너지를 미리 당겨 쓰는 꼴이다. 몸을 축 늘어뜨린 채 누워서 아무 생각하지 않고 눈알과 손가락만 이리저리 움직이는 것을 쉬는 것이라고 착각하는 것이다. 이런 생활 패턴을 탓하려는 게 아니라 회사를 다닐 때 내 모습이 딱 이랬다.



쉼 없이 몰아치는 업무, 경직된 소통 방식, 상사 간 갈등들은 회사에 있는 9시간 동안 전날밤 겨우 충전해 둔 나의 모든 에너지를 쫘악 빨아먹기에 충분했고, 기가 빨릴 대로 빨린 나는 저녁을 먹은 뒤에 의자나 침대에 몸을 딱 붙이고 조금이라도 움직이지 않으려 애를 썼다. 내일 일을 해야 하니까, 또 엄청난 에너지와 시간을 들여야 하니까 지금은 에너지를 비축할 수 있게 나를 쉬게 해주고 싶었다.



이런 삶을 사는 직장인들이라면 새벽에 일어나고 저녁 시간에 운동과 자기 계발을 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적어도 나는 절대 하고 싶지 않았다. 회사에서 하는 일 외에 무언가를 더 하면 더 이상 빨릴 에너지도 없을 것 같았다. 여기서 갓생을 시도한다면 하루 만에 미라가 되어 푹 쓰러지는 건 아닐까 생각했다. 갓생은 커녕 현생을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벅차 숨이 헐떡거릴 지경이었다.



지금 나는 퇴사를 하고 회사 밖에서의 삶을 살고 있기 때문에 직장인으로서 갓생 사는 법을 알려주지 못하는 것이 아쉽다. 그래서 ‘갓생 사는 직장인 되는 법’이라는 제목의 글을 쓸 수는 없다. 하지만 내가 나를 돌보는 일상을 살 수 있도록 안내하는 역할은 해줄 수 있을 거라 믿는다. 5시 기상, 새벽 운동, 꾸준한 독서 같은 것들은 갓생을 결심한 다음 날부터 갑자기 짠! 하고 되는 것들이 아니다. 하루 5분 일찍 일어나는 것도 알람을 미루면서까지 힘들어하는데, 이런 것들이 자동적으로 될 리가 없다. 아마 매일매일 엄청난 의지와 실행력을 수반한다면 가능할지도.



그래서 나는 책 하루 한 줄 읽기, 글 하루 한 줄 쓰기, 10분 일찍 일어나기 같은 작은 습관부터 시작하는 법을 소개하고 싶다. 벌써부터 지루하다고 느껴진다면 시도라도 해보고 직접 변화를 느껴보았으면 한다. 진짜 변화는 대단한 사건, 변화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도 흘러가고 있는 '반복되는 매일'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달려있기 때문이다.



이 시작은 ‘자동화’를 위한 루틴(routine)이다. 밥을 먹을 때 ‘손가락을 구부려 숟가락을 오므려 잡고, 놓치지 않기 위해 힘을 계속 주어야 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너무나 익숙한 동작이고, 익숙하다는 생각이 들지도 않을 만큼 내 몸은 숟가락 쥐는 법을 기억하고 있다. 혼자 밥 먹는 법을 익히는 유아기 때는 뇌에서 숟가락 쥐는 법을 열심히 가르쳤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몇 년 동안 매일매일 숟가락을 쥐게 된 이후 지금은 아무런 힘을 들이지 않고 숟가락을 쥘 수 있다.



루틴도 마찬가지로 몸과 마음이 기억하게 만드는 자동화를 위한 작업이다. 여기에 내가 나를 돌본다는 의식(ritual)으로 행하면 ‘리추얼 루틴’이 된다. 회사는 돈을 벌 수 있고 누군가에게는 재미와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좋은 수단이기도 하다. 그러나 나를 돌보는 것이 더 중요하다. 매일 숟가락을 쥐고 밥을 먹는 것처럼 매일 나를 돌본다는 마음으로 나만의 리추얼 루틴을 만들어보자. 다음 날 일하기 위한 상태를 유지하는 삶이 아닌, 일과 자기 돌봄이 양립하는 삶을 사는 것이 더 소중한 사람에게 내 글과 경험이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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