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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색 Oct 29. 2022

'행복하다'라고 내쉬는 순간

20+n년차 인생, 독립을 선언했다.

아침 7시 전에 일어나 화장실에 가서 퉁퉁 부은 내 눈을 보고, 네스프레소에서 갓 내린 스타벅스 캡슐커피를 내려 음미하고, 그리고 마지막으로 평온한 분위기에서 이렇게 글을 써 내려갈 수 있는 이 순간. 모든 순간에 나도 모르게 "아, 행복하다."라는 말을 내뱉고 있었다.


누군가에게는 당연할 이 순간들이 몇 달 전 나에게는 당연하지 않은 순간들이었다. 약 30평형 되는 평수의 아파트에서 부모님, 독립 않는 나 포함 3명의 자녀들이 꾸역꾸역 살아가며 내게 독립된 공간은 허용되지 않았었기 때문이다. 언니와 함께 쓰는 방은 프라이버시라는 사생활이 없었으며, 많은 짐으로 내 책상은 덮여버린 지 오래였다.


분명, 부모님과 함께 사는 것에도 장점은 있었다. 부모님이 해주시는 밥을 먹고, 깨끗하게 빨래가 된 옷을 입을 수 있었다. 내가 손을 대지 않더라도 집은 항상 깨끗하게 치워져 있었다. 언젠가 회사에서,

"세탁기 어떻게 돌리는 거예요?"

라고 물었다가 집에서 곱디곱게 자란 공주 취급을 받기도 했었다. 그 정도로 부모님의 둥지는, 우리 세 명의 형제들에게 편한 보금자리였다.


30살 안팎, 이상하게도 이 안락함이 문득 불편함으로 느껴지더랬다. 분명 편하게 생활하고 있음에도 안락함이 나에 대한 구속으로 느껴졌다. 내 생활을 간섭받는 대신에 느껴지는 보상이랄까. 부모님이 간섭하고 있는 것은 실질적으로 없었지만, 이 집이 나의 생활을 통제하고 있다는 느낌을 여러 번 받곤 했다. 그런 느낌을 받아도 사실 독립이라는 것을 실질적으로 옮기는 것은 힘들었다. 20+a 년을 부모님의 둥지에서 살다 나오는 것이었으므로 혼자 살 수 있을까 하는 걱정도 들었고, 직장도 멀지 않은 내가 독립을 한다고 하자 주변에서는 왜 굳이 독립을 하냐며 말리기도 했다.


독립 후 첫 한 달은 후회하기도 했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항상 식탁에 놓여있던 과일도, 주말만 되면 자동으로 되어 있던 청소도, 부모님의 시간과 노동에서 나온 것이라는 것을 체감하게 되는 시기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첫 한 달간 본가를 매주 두 번씩은 갔던 것 같다. 갈 때마다 반겨주는 부모님과, 츤데레처럼 굴어도 시끌벅적한 언니, 그리고 남동생이 있어 외로움을 달래주었기 때문이다.


독립   달이 지난 지금, 나는 독립을  것에 대해 절대, 전혀 후회하지 않는다. 지갑에 빵꾸가 뚫려 너덜너덜해졌을지언정,  시간을  통제하에 두고 계획할  있다는 사실이 내게는 너무나 소중하기 때문이다. 같이 취미생활을 하는 언니가 내게 말했다. 너는 극단적인 j성향일 것이라고. (mbti에서 j 계획적으로 움직이는 사람을 말한다) 맞는 말이다. 나는 내가 스스로  계획이 타인에 의해 뒤틀리는 것을 싫어한다.  타인에는 가족도 포함된다. 인구 밀도가 높았던 우리 집은  계획을 짜도 타인이  계획을 존중해줄  없었다.


요즘 들어 '행복하다'라고 말하는 순간이 늘었다. 아침 출근길에도 선선한 바람이 옷깃에 스며들면 행복했고, 하늘 높이 하얀 구름이 떠다니는 것을 볼 때도 행복했다. 심지어 화장실 거울에 비친 내 퉁퉁부은 얼굴이 얼마나 귀여운지 모른다. 매일매일의 삶에 하트가 그려지는 기분이다. 주변에서 이 기분이 얼마나 가는지 보자고 하지만, 그건 그때의 이야기다. 일단 성인으로서, 회사를 다니는 직장인으로서 이런 안정감과 행복을 느낄 수 있다는 자체에 감사하다.


그리고, 앞으로도 나 자신이 행복한 선택을 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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