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n년차 인생, 독립을 선언했다.
아침 7시 전에 일어나 화장실에 가서 퉁퉁 부은 내 눈을 보고, 네스프레소에서 갓 내린 스타벅스 캡슐커피를 내려 음미하고, 그리고 마지막으로 평온한 분위기에서 이렇게 글을 써 내려갈 수 있는 이 순간. 모든 순간에 나도 모르게 "아, 행복하다."라는 말을 내뱉고 있었다.
누군가에게는 당연할 이 순간들이 몇 달 전 나에게는 당연하지 않은 순간들이었다. 약 30평형 되는 평수의 아파트에서 부모님, 독립 않는 나 포함 3명의 자녀들이 꾸역꾸역 살아가며 내게 독립된 공간은 허용되지 않았었기 때문이다. 언니와 함께 쓰는 방은 프라이버시라는 사생활이 없었으며, 많은 짐으로 내 책상은 덮여버린 지 오래였다.
분명, 부모님과 함께 사는 것에도 장점은 있었다. 부모님이 해주시는 밥을 먹고, 깨끗하게 빨래가 된 옷을 입을 수 있었다. 내가 손을 대지 않더라도 집은 항상 깨끗하게 치워져 있었다. 언젠가 회사에서,
"세탁기 어떻게 돌리는 거예요?"
라고 물었다가 집에서 곱디곱게 자란 공주 취급을 받기도 했었다. 그 정도로 부모님의 둥지는, 우리 세 명의 형제들에게 편한 보금자리였다.
30살 안팎, 이상하게도 이 안락함이 문득 불편함으로 느껴지더랬다. 분명 편하게 생활하고 있음에도 안락함이 나에 대한 구속으로 느껴졌다. 내 생활을 간섭받는 대신에 느껴지는 보상이랄까. 부모님이 간섭하고 있는 것은 실질적으로 없었지만, 이 집이 나의 생활을 통제하고 있다는 느낌을 여러 번 받곤 했다. 그런 느낌을 받아도 사실 독립이라는 것을 실질적으로 옮기는 것은 힘들었다. 20+a 년을 부모님의 둥지에서 살다 나오는 것이었으므로 혼자 살 수 있을까 하는 걱정도 들었고, 직장도 멀지 않은 내가 독립을 한다고 하자 주변에서는 왜 굳이 독립을 하냐며 말리기도 했다.
독립 후 첫 한 달은 후회하기도 했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항상 식탁에 놓여있던 과일도, 주말만 되면 자동으로 되어 있던 청소도, 부모님의 시간과 노동에서 나온 것이라는 것을 체감하게 되는 시기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첫 한 달간 본가를 매주 두 번씩은 갔던 것 같다. 갈 때마다 반겨주는 부모님과, 츤데레처럼 굴어도 시끌벅적한 언니, 그리고 남동생이 있어 외로움을 달래주었기 때문이다.
독립 후 두 달이 지난 지금, 나는 독립을 한 것에 대해 절대, 전혀 후회하지 않는다. 지갑에 빵꾸가 뚫려 너덜너덜해졌을지언정, 내 시간을 내 통제하에 두고 계획할 수 있다는 사실이 내게는 너무나 소중하기 때문이다. 같이 취미생활을 하는 언니가 내게 말했다. 너는 극단적인 j성향일 것이라고. (mbti에서 j란 계획적으로 움직이는 사람을 말한다) 맞는 말이다. 나는 내가 스스로 짠 계획이 타인에 의해 뒤틀리는 것을 싫어한다. 그 타인에는 가족도 포함된다. 인구 밀도가 높았던 우리 집은 내 계획을 짜도 타인이 그 계획을 존중해줄 수 없었다.
요즘 들어 '행복하다'라고 말하는 순간이 늘었다. 아침 출근길에도 선선한 바람이 옷깃에 스며들면 행복했고, 하늘 높이 하얀 구름이 떠다니는 것을 볼 때도 행복했다. 심지어 화장실 거울에 비친 내 퉁퉁부은 얼굴이 얼마나 귀여운지 모른다. 매일매일의 삶에 하트가 그려지는 기분이다. 주변에서 이 기분이 얼마나 가는지 보자고 하지만, 그건 그때의 이야기다. 일단 성인으로서, 회사를 다니는 직장인으로서 이런 안정감과 행복을 느낄 수 있다는 자체에 감사하다.
그리고, 앞으로도 나 자신이 행복한 선택을 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