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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색 Jan 07. 2024

내려놓는 것도 배워야 알아요.

내게는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라서

나름 특별하게 시작한 2023년이었다. 나름 30살을 알차게 즐겨보겠다고 시작한 올해였는데, 참 시간이 광속으로 흘러버렸다. 이번 해에 도대체 내가 무엇을 했는지 생각해보면, 사실 일 한 것 빼고는 딱히 한 것이 없다. 대신 느낀 점이 많기에, 허투루 보낸 한 해는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나름의 교훈을 얻고 그 교훈을 거름삼아 성숙해질 수 있는 한 해였다.


먼저 1월에 비행기표를 예매해 2월에 떠난 미국 여행. 샌프란시스코 여행이었다. 대학교 동기 언니가 샌프란시스코에 거주중이었기에 그 집에서 같이 머물고 언니의 차를 타고 곳곳을 돌아다녔다. 덕분에 '여행객'이라기 보다 실 거주자처럼 그 지역을 즐길 수 있었다. 멀리 떠나는 여행이 처음이었던, 언어도, 문화도 어색했던 내게 친구들이 없으면 가보지 못했을 경험이었다. 한번 다녀오니 두번 가보지 못할 것은 없다고, 다음에 반드시 한번 더 가보겠다는 꿈을 가졌다. 다른 부서로 이동하면 반드시 먼 지역을 다시 한번 방문해보리라.


미국에 다녀온 직후, 지금 있는 인사팀으로 발령이 났다. 남들이 보기에 있어 보이는 부서였고, 나 또한 내가 그 부서로 발령이 났다는 사실에 설레면서도 긴장했다. 그들의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는 생각에 쉽게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그리고 그 생각은 날 구렁텅이에 밀어 넣었다. 모든 일에 실수가 발생했고 매번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달고 살았다.나 스스로가 참 모자라 보이는 순간들이 이어졌다. 마음이 힘들었다. 내가 이정도밖에 되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이 나를 지배했다. 


상담을 받기 시작했다. 바쁘던 일이 마무리된 날, 폭식과 과음을 하는 스스로를 보고 내 자신에게 미안해서 상담을 예약한 것이었다. 잘 마시지 못하는 술을 한꺼번에 들이붓고 화장실에서 토악질을 하는, 거울에 비친 엉망진창인 나를 보고 펑펑 울었더란다. 이렇게 살아야 하나 싶었다. 처음 가 본 상담센터에서 상담 선생님은 내게 별 말을 하지 않았다. 그저, 어느 점이 가장 힘드냐고 물어볼 뿐이었다. 남들에게 항상 괜찮은 척하던 나는 담담히 이야기를 이어나가다 또 봇물 터지듯 눈물을 흘려보내고 말았다. 열심히 울고 난 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선생님은 내게 질문 한가지를 던졌다.


"그래서 어떻게 하고 싶어요? 그 곳에서 인정받고 싶어요, 아님 그 곳에서 탈출하고 싶어요?"


이 질문에, 이상하게도 난 당장 탈출하고 싶다는 말을 하지 못했다. 웃기게도 인정받고 싶었다. 일 잘하는 사람으로 인정받고 싶었다. 처음부터 인정받고 싶다는 생각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으니까 말이다. 상담 선생님은 내 대답에 고개를 끄덕였다. 일과 내 생활, 모두 포기할 수 없는 마음이 나를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힘들게 만들었다는 것을 나는 그 자리에서 객관적으로 알 수 있었다.


내 마음을 제대로 들여다 본 나는 강박적으로 해왔던 내 생활을 하나씩 내려놓았다. 매주 3-4번씩은 가야하는 헬스를 주말만 가도 괜찮다고 생각했고, 혼자 살던 자취 생활도 청산했다. 친구들과의 약속 욕심도 내려놓았다. 모든 생활이 '일'에 집중되었고 그 선택을 되돌아보지 않았다. 워라밸이라는 말이 있다. 일과 생활의 균형.  그 균형을 잘못 잡고 있었다, 나는.


올해 나는 내려놓는 법을 배웠다. 그 과정에서 내려놓는 것도 참 어렵다는 것도 알았다. 20대는 참 철이 없었다는 생각을 잠깐 한다. 모든 사람들이 하고 싶은 것을 다 하고 살지는 않을텐데, 나는 그걸 몰랐다. 그리고 잠시나마 이걸 이제야 깨달을 수 있게 해준, 모든 것이 부족하지 않게 나를 서포트해준 엄마아빠에게 감사했다. 뭐 하나 포기할 줄 모르고 눈가리개한 경주마처럼 앞만 보고 살던 나를 이해해주었던 가족. 비록 힘들었던 한 해였지만, 삶에서 중요한 것을 배웠다. 덕분에 차분해졌고 객관적으로 나를 볼 수 있었다. 


내년의 나는 어떨까. 이렇게 말하면서도 또 나는 가족과 싸우고, 회사에서는 실수도 하고, 배우고 싶은 일을 배우지 못한다며 투정도 부리고, 그렇게 살 것이다. 사람이 한순간에 바뀌면 죽는다고 했다. 뭐, 어쩌겠는가. 원래도 내 천성이 그런 것을. 그치만 30대의 나는, 이 순간들이 소중하다는 것을 안다. 적어도 지금의 내 삶이 불행하지 않다는 것을 안다. 내 행복과 사랑을 빌어주는 사람들이 더 많다는 것을 안다. 2023년, 힘들었지만 소중한 것들을 느끼고 배웠기에 마무리는 웃음으로 할 생각이다. 더 바람직한 내가 되는 건 바라지 않는다. 다만, 사랑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머물며 나를 사랑으로 채워주기를. 이기적일지도 모르지만,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을 소원을 이렇게 글로나마 적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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