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 구성 문체 인물 사건 배경이 발췌의 기준
최근 서사와 문체 모두 인상 깊게 읽었던 책 『마침내, 안녕』에서 발췌문 몇 개를 보여드리겠습니다.
밥을 싹싹 비운 동옥에게는 여자가 그 많은 밥을 다 먹으니 배가 나오는 것 아니냐는 둥, 키는 작은데 몸통이 굵어 공이 굴러가는 것 같다는 둥 어떤 식으로든 입을 댔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지금까지 지껄인 말을 덮는 ‘매직워드’가 등장했다. 농담이야, 농담. 이 사무관이 질척한 웃음을 터뜨리면 동옥도 따라 웃었다. 동옥의 웃음에는 익숙한 패배감이 흘렀다.
유월, 『마침내, 안녕』
이 부분은 가사조사관 사무실에 있는 이 사무관과 동옥의 인물됨을 추정할 수 있어 발췌했습니다. 내용을 보면 직장에서 사람이 언제 고통받는지 알 수 있습니다. 매일 먹는 점심 하나로 어떤 사람은 “배가 나왔다”, “몸통이 굵어 공이 굴러가는 것 같다”는 몸평을 들어야 합니다. 몸평을 하는 이 사무관은 ‘농담’이라는 말로 다양한 사회적·법적 문제를 가볍게 넘어갑니다. 저는 이 평가를 들은 동옥의 ‘패배감’을 묘사한 문장까지 포함해 발췌했습니다. 이렇게 공감을 얻을 수 있는 내용을 발췌하는 것이 좋습니다.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일들이 종종 일어납니다.
누구의 탓도 아닌, 그냥 발생하는 일들 말입니다.
지금이 그런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혼자 견디는 것보다 도움을 받아보는 게 어떨까요?
유월, 『마침내, 안녕』
이 발췌는 온라인으로 책 주문을 도와주는 민 교수가 도연에게 보낸 메일입니다.
제가 첫 번째로 읽어 낸 핵심어는 ‘위로’입니다. ‘누구 탓을 할 수도 없고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일이 종종 일어난다’라는 내용에서 위로를 읽었습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위로를 주제로 한 질문을 만들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발췌했습니다.
두 번째 핵심어는 ‘설득’입니다. 상대의 어려움을 읽었다면, 이제 문제를 해결하는 단계로 나아가야 합니다. 위 발췌문은 민 교수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도연을 설득한 장면으로 읽혔습니다. 이것을 바탕으로 “여러분은 누구를 제대로 ‘설득’한 경험이 있나요?” 같은 질문도 만들 수 있습니다.
매일 자신과 상관없는 이들의 이야기를 몇 시간이고 듣는 게 도연의 일이었지만, 생의 어느 구간에서는 그들의 이야기에 감정이 이입되곤 했다. 삶은 다양하지만 또 대체로 비슷하니까.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이렇게 해본 적이 없다고, 들어줘서 고맙다고 했다. 도연은 그런 인사를 받을 때마다 사람들은 어디까지 외로운 걸까 생각했다.
유월, 『마침내, 안녕』
여기서 읽은 핵심어는 ‘외로움’입니다. ‘사람들은 어디까지 외로운 걸까’라는 문장은 저 자신에게도 묻고 싶은 질문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언제 외롭다고 느낄까?”, “외롭다고 느끼면 무엇을 할까? 아니면 아무것도 하지 않을까?” 같은 질문이 줄줄이 나오는 문장에 저는 인덱스 스티커를 붙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렇게 동화나 소설은 이야기를 축으로 발췌하면 됩니다. 독서대와 인덱스 스티커를 준비한 뒤 소설 구성의 3요소인 인물, 사건, 배경에 주목하며 책을 읽어보세요. 마음에 드는 문장을 찾으면 인덱스 스티커를 붙이고, 그중에서 발췌할 문장을 고르면 됩니다. 주제, 구성, 문체도 잊지 마세요. 작가의 개성이 묻어 있는 문체도 좋은 발췌할 거리가 됩니다.
발췌하고, 질문을 만드는 것을 고려한 독서는 그저 내용을 따라가는 일반적인 독서와는 분명히 다릅니다. 여러분은 지금,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고 효율적인 진행자의 독서법을 얻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