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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나 Apr 30. 2024

잔인한 4월의 마지막 날.

엘리엇의 '죽은자의 매장 中'



간단한 단원평가를 보는 시간이었다. 잔인한 4월에 대한 이야기 중이었다.

꽃도피고 날도 따뜻해지는 4월을 왜 잔인하다고 했을까 질문을 하니,

공휴일이 없어서란다. 듣고 보니 맞는 말이다.


 오랫만에 엘리엇의 책을 꺼냈다. 문해력이 부족해 읽을수도 없고 이해하지도 못하여 단지 '잔인한 4월'부문만 죽어라 읽어보는 책이다. 다음은 일부내용을 발췌한 것이다.




  1. 죽은 자의 매장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 내고

  추억과 욕정이 뒤섞고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

  겨울은 오히려 따뜻했다.

  잘 잊게 해주는 눈으로 대지를 덮고

  마른 구근으로 약간의 목숨을 대어 주었다.

  슈타른버거 호 너머로 소나기와 함께 갑자기 여름이 왔다

  우리는 주랑에 머물렀다가

  햇빛이 나자 호프가르텐 공원에 가서

  커피를 들며 한 시간 동안 얘기했다.

  저는 러시아인이 아닙니다. 출생은 리투아니아이지만 진짜 독일인입니다.

  어려서 사촌 태공(太公)집에 머물렀을 때

  썰매를 태워 줬는데 겁이 났다.

  그는 말했죠, 마리, 마리, 꼭 잡아.

  그리곤 쏜살같이 내려갔다.

  산에 오면 자유로운 느낌이 드는군요.

  밤에는 대개 책을 읽고 겨울엔 남쪽에 갑니다.


  이 움켜잡는 뿌리는 무엇이며,

  이 자갈더미에서 무슨 가지가 자라 나오는가?

  인자여, 너는 말하기는커녕 짐작도 못 하리라.

  네가 아는 것은 파괴된 우상더미뿐

  그 곳엔 해가 쪼아대고 죽은 나무에는 쉼터도 없고

  귀뚜라미도 위안을 주지 않고

  메마른 돌엔 물소리도 없느니라.

  단지 이 붉은 바위 아래 그늘이 있을 뿐.

  (이 붉은 바위 그늘로 들어오너라)

  그러면 너에게 아침 네 뒤를 따르는 그림자나

  저녁에 너를 맞으러 일어서는 네 그림자와는 다른

  그 무엇을 보여 주리라.

  한줌의 먼지 속에서 공포를 보여 주리라.


  “일 년 전 당신이 저에게 처음으로 히아신스를 줬지요.

  다들 저를 히아신스 아가씨라 불렀어요.”


  -하지만 히아신스 정원에서 밤늦게

  한아름 꽃을 안고 머리칼 젖은 너와 함께 돌아왔을 때

  나는 말도 못하고 눈도 안 보여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니었다.

  빛의 핵심인 정적을 들여다보며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황령하고 쓸쓸합니다, 바다는.〉


  - 엘리엇 ‘황무지’ 전체 5부 중 1부 전문


잘 잊게 해주는 눈으로 대지를 덮고, 마른 구근으로 약간의 목숨을 내어주는 겨울이라니. 그저 메마른 계절인줄 알았거늘, 겨울을 이렇게 표현한 시인은 세상에 다시는 없을 것같다. 곁을 내주는 그 겨울에 비해 4월은 잔인한것이다. 추억과 욕정이 뒤섞이며, 잠든 뿌리를 깨워 혼란에 빠뜨린다.

아이들과 이 이야기를 함께 하고싶었지만 말을 아끼기로 하였다. 


당신들의 4월은 어떠했는지 궁금하다. 공휴일이 없어 슬픈지, 눈이 내리지 않아 두려운지, 혹은 흐드러지는 꽃에 마음을 빼았겼는지.

당신의 4월처럼 나의 4월도 그러하였다. 공휴일이 없어서 슬플뻔 했으나 선거날이 있어 한시름 놓았고. 또 눈이 내리지 않아 다소 섭섭하기도 하였다. 흐드러지는 꽃구경은 많이 하지 못했다. 꽃과 올해 나의 4월은 어울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4월을 통해 인생을 바라보는 시각을 다시금 재정비 했으며, 4월을 통해 큰 학교에 적응하는 법을 배웠다. 4월처럼 나의 마음도 언제나 불안정 하다는 사실을 다시한번 복기하였고, 그것을 위한 대책을 세워야했다. 

그리하여 운동을 시작하였고 새로운 친구들을 사귄다. 늘어가는 주름에 슬퍼하지 않으며 시간이 나를 관통해감에 감사한다. 내가 출제한 작은 단원평가가 뭐라고 이래 진지하게 시험을 치는 아이들과 함께 할수 있음에 겸손해진다. 좀더 좋은 사람이 되어야지. 좀더 안정적인 주춧돌이 되어야지 반성도 함께다.


작은것에 감사하고 살고싶다. 예를들면 운동장 아이들의 소음, 나를 찾아주는 친구들의 전화벨소리, 새로산 자동차의 빨간 가죽시트냄새, 내 옆에서 등을 긁고 자고있는 내 식구들, 후끈한 봄냄새, 아이와 함께먹는 야식, 우연찮게 채워진 하루의 운동량, 그리고 날 칭찬해주는 워치의 알람. 탕후루를 하나 더 얹어주는 인심좋은 사장님.


지금 이순간을 기억해야지. 그리고 마음 한켠에 잘 담아 놓아야지.


잘가라 4월아.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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