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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나 May 09. 2024

거대학교 체육대회, 그 감동

따뜻한 글은 왠만큼 따숩지 않고서야 타이핑이 잘 되지 않는다.

손가락이 모지란 탓인지 가슴이 모지란탓인지 모르겠다. 그런데도 오늘은 글을 꼭 써야겠다는 다짐을 하고 퇴근했다. 오늘은 체육대회 날이었다.


우리학교는 1학년이 17반까지 있다. 사진 한장에 다 담기지도 않는다.

선생님들도 사실 얼굴과 이름이 다 매칭되지 않는다. (죄송하게 생각한다). 그런 규모의 학교에서 총 3일에 걸쳐 3개학년 체육대회를 진행한다.


오늘, 그 감동을 개조식으로 함께 나누고 싶다.

아이고 끝도 안보이는 아이들


1. 체육선생님들 일곱분이 오롯히 진행을 맡으셨다.

교직에 있는 분들이라면 알 것이다. 당연히, 모든 교사가 자기 역할이 있다는것을. 예를들어 줄다리기 심판을 본다거나, 이어달리기에서 아이들을 줄세운다거나, 모두들 할 일이 주어진다.

그런데 우리학교에서는 모든 심판을 체육선생님 일곱분이 보셨다. 그것도 17반 '어치'를.

담임에게 주어진 일이라곤, 아이들과 함께 있어 주는 것. 아이들을 돌보는 것만 주어졌다. 친한 샘에게 당최 고생을 사서하냐고 반 농담으로 타박을 주었는데, 이게 왠말. 정말 멋지게 해내셨다.

앞에서 총대를 매신 체육샘들 뒤로 담임들은 아이들을 오롯히 맡았으며, 사고하나 없이 500명의 학생이 체육대회를 마쳤다. 모두 하루 종일 담임과 함께 웃고 떠들었다.


솔직히 난 해내지 못할줄 알았다. 일곱명의 교사가 500명을 전두지휘한다니. 그런데 그게 되더라.

담임이 임장하는 효과가 시너지를 발휘했다. 그걸 예측하고 계획한 선생님이 대단해보였다. 운영팀의 팀웍과 자신감 그리고 대담함과 통찰력, 예측력에 놀랐다.

역시. '원래그래'라는건 없어. 난 아직도 배울게 많다. 정말로. 더 겸손해 져야겠다.


협동심이 아름다웠던 태풍의눈.

2. 그래서 500명 모두 질서있었다.

세상에 모두 스탠드에 앉아서 응원에 열중하고 한목소리로 대회를 즐겼다. 다른반에 기웃거리거나 이탈하는 자는 분명히 생기기 마련인것을. 아, 이것도 되는구나. 우리학교. 쓸만하네.

처음으로 체육대회에서 목이 쉬지 않았다. 잔소리를 하지 않았다. 우와. 인정하기 싫지만 슬슬 학교가 좋아졌다.


3. 살아있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행복했다. 아이들은 따뜻했다. 같은반 친구가 넘어졌을때 모두 탓을하기보다는 걱정의 탄식을 하고, 괜찮아를 외쳤다. 이어달리기를 하는 아이들은 마치 삶을 경주하는 우리의 모습과 닮아있었다. 열심히 달려야만 하는 한 인생을 보는 듯했다. 그만큼 아이들은 진솔하게 대회에 임했다. 바톤터치를 하며 또 열심히 달리는 주자를 보며 눈물이 났다. 너희들도 인생을 달리고 있구나. 꿋꿋하게 그렇게 달리는구나. 아직 어른인 나도 비틀거리는데.

아이들이 내는 온갖 소리는 더이상 소음이 아니었다. 가만히 그 소리를 듣고있었다. 함성속에 고요히 놓여있자니 행복한 기분이 들었다. 나도 이들과 같은 일원임에 감사하게되었기 때문이다.


4. 구글 시트를 이용해 실시간 순위도 볼수 있었다. 기발하다. 오전시간에는 아이들이 응원문구를 넣어 각 반의 배너를 제작했다. 이것 또한 색다르다. 문득 나만 제자리 걸음을 하는것이 아닌가 하는 자아성찰의 시간이 엄습했다. 정말정말 이렇게 말하기는 싫지만!! 요즘 젊은 선생님들은 정말 일을 잘한다.(결국 말해버렸다 으악) 요즘 젊.은. 선생님들은 거침없다. 변화를 두려워 하지 않는다. 머물러 있지 않는다. 근거없는 자신감이 아닌 계획된 데이터 값에서 자신감을 속출한다.

세상에. 이 말도 하고싶지 않지만!!! 정말 젊은이들이 일구어낸 첨단!!!! 체육대회였음을... 고백한다.

또한 엄청난 팀웍에 할말을 잃었다. 우와. 저력이 다르다. (이 대목에서 고개를 저어본다)

교장 교감선생님은 저들을 믿은거구나. 알고계셨구나.(사실 체육대회를 체육 선생님들이 독박 쓰는것같아서 나는 무척 불쾌했다. 선생님들의 협조가 없었나 싶어서 말이다)


그리하여 나는, 따뜻한 온기 뿐만아니라, 반성의 시간도 갖을수 있었다.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구나, 변화를 두려워하면 '라떼'가 될수도 있겠구나,  배워야겠다 저들에게.


퇴근길에 우리반 아이 셋이서  내 차앞을 가로막더니 씩 웃고는 우다다 교문으로 달려가버렸다. 선생님 사랑해요 라는 소리를 거침없이 하는 녀석들. 난 사랑이라는 단어 하나를 말하기가 그렇게 힘들던데, 담임이 뭐라고 사랑해요 사랑해요를 외쳐주는지.

이 공간에 변덕을 부려 미안하지만. 세상은 어제 무너져 내릴것 같다가도 또 오늘은 살만한것 같다.

굉장히 가슴이 벅찬 하루였기 때문에.

그리하여 오늘 또 나는 한발 학교라는 공간과 그들에게 다가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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