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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나 May 11. 2024

김요섭 - 아름다움이 너를 구원할 때

아름다움의 본질에 대하여

한 권의 책이 아닌, 오랜만에 내편을 들어주는 친구를 만난 것 같았다.

읽는 내내 귀퉁이를 접었는데(필사할 부분이 있으면 꼭 접는다) 책이 오각형이 될 지경이다. 


오늘 친구가 그랬다. 인생이 10할이라면 8할의 보편성과 2할의 부정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대답을 선뜻 할 수 없었다. 2할의 부정성이 얼마나 큰 공백인지 알기에. 

친구는 2할이라고 했지만. 사실 그것을 감당하고 사는 나로서는 그 2할이 차지하는 공허함의 무게는 2할 그 이상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기에.


그런데 이 책은. 내가 쉽게 풀어 이야기하지 못했던 결핍된 감정에 대해서, 그런 부정성마저 정의해 주려고 애써주는 그런 책이다. 좀 더 먼저 이 책을 접했으면 좋았으련만. 그럼 너에게 좀더 들어줄 만한 대답을 할 수 있었을 텐데.


책의 장점을 개조식으로 나열해 본다.


1. 문답형식의 글과 에세이 형식의 글이 반복되며 철학 이야기를 쉽게 풀어나간다.

2. 이 시대의 배고픈 사자들을 대변해 주는 책.

3. 결핍 또한 아름다움이다

4. 필사할 문장들이 너무 많다. 필사라도 하여 나의 문장으로 스미면 좋으련만.

5. 아름다움, 진리, 죽음, 열정, 정의, 예술에 걸친 광범위한 스펙트럼을 다룬다. 

6. 적당히 어려워 매력적이다. 작가님의 말처럼 쉬운 것은 아름다움이 아니니.


하고 싶은 말과 蛇足은 많지만, 이미 책에 내가 풀어쓰고 싶은 말들을 흐르는 물처럼 풀어써놓아서. 그저 필사로 대신해 볼까 한다. 이 한밤중을 함께하는 그대들이 위로받을 수 있는. 그런 책.






# 부정성은 내가 아닌 것 과의 연결이며, 다 이해할 수 없는 아름다움의 이면에 머무를 때, 잠시 마주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 정리하자면 예술은 결코 단순한 '예쁨'일 수 없고 고통스럽지만 우리로부터 멀어지는 것 가운데 있습니다. 더 나아간다면 떠남을 그 자체로 받아들이는 일이지요.


# 우리를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게 만드는 어떤 상처는 존재를 찢기도 합니다. 살이 찢겨서 벌어진 모습을 떠올리면 끔찍하게 느껴질 겁니다. 하지만 고통받는 존재에게 라면, 열린 상처 덕분에 비로소 부정성에 머무르는 아름다움이 도착할 수도 있습니다. '헤겔'이라는 철학자는 부정성에 머무르는 일이 아름다움을 위해 꼭 필요하다고 말하기도 했지요. 


# 부정성에 머무르는 기다림은 마침내 상처의 흔적을 아름다운 이미지로 재탄생시킵니다. 


# 인상파 화가는 포착할 수 없는 찰나의 그 순간을 포착하고자 했습니다. 작품에 표현된 이상한 모순을 그들의 예술을 결코 단선적으로 해석하고 넘길 수 없도록 만들죠. 그것은 무엇보다 확실한 감각이 나 동시에 모호한 장소를 열어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어떤 고착된 이름으로 불릴 수 없는 가장 찬란한 순간. 오직 그 장소 없음이 아름다움, 사랑, 진리가 머무는 단 한 곳일 수 있습니다.


# 불꽃놀이는 예술의 완전한 형태다. 완성의 순간 사라져 가기 때문이다 -아도르노-


# S: 그럼 계속 사랑하려면, 반드시 이해될 수 없는 부분이 있어야 하는 거죠? 그걸 위반하고 싶으니까요?

   T: 맞습니다. 아름다움은 그런 위반의 욕망과 맞닿아 있습니다. 그것이 바타유가 말하고자 하는 지점이기도 하고요. -중략- 사랑은 마주침이라는 우발적 사건 안에서 시작되는 아름다움이라 말할 수 있어요. 생성된 것은 슈뢰딩거의 고양이처럼 '살아있기도 하고 죽어있기도 할'테지요. 기이한 장소는 둘이 함께 알 수 없는  곳에 들어가 불을 켜는 순간에만 생겨납니다.


#  각자 무엇보다 고유할 때 단 하나의 보편성에 가 닿을 수 있다.'라고 정의해 보면 어떨까요? 그럼, 단독이라는 '단 하나'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해 볼 수 있죠. 고립되고 유폐된 하나가 아닌 전체와 연결된 하나라는 의미로요.


# 멀어져 가는 곳에 아름다움은 머물 수 있다. 


# 그럼에도 희망은 있습니다. 힘들지만 레테의 강을 건너 보는 일, 즉 우리는 망각할 수 있기 때문이죠. 유한한 존재는 모든 것을 기억할 수 없다는 한계 때문에 불완전합니다. 그렇다면 기억상실은 단지 부정적 사건이 아니라, 다시 시작할 수 있게 만든다는 점에서 축복일 수 있죠.


# 중첩될 수 없는 단일한 겹은 사랑의 부재와 곧바로 연결됩니다. 아름다움은 결코 소유되지 않으며, 접촉의 순간만 생성되는 사건임을 잊으면 곤란하죠. 오직 타자와 겹친 틈에 잠시 머무는 사랑의 느닷없음을 긍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가깝고도 멀며, 멀지만 무엇보다 가까움의 존재사건. 아름다움의 비밀을 환대하며, 결코 쉽지 않겠지만 그 형태를 닮아가는 일이 우리의 존재가 아름다워지는 방법입니다. 


# 바깥에서 도착한 이상한 영감을 받드는 일은 낯선 손님을 환대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작가는 그 실체를 정확히 파악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자기에게 도착한 낯선 계시를 받듭니다. 이는 자신의 내밀한 욕망과 맞닿는 일이기 때문이죠. 창작자는 결코 자기 언어로만 작업할 수 없습니다. 이미 이해되어 버린 내 속의 언어는 결코 새로울 수 없고 낯섦을 생성할 수도 없죠. 바깥에서 도착한 영감과 섞갈리는 일 말고는 아름다움의 생성은 불가능할 수밖에 없습니다. 


#  이전과 미세하게 달라져 보는일, 나와 다른 어떤 지점을 향해 건너가는 일은 모두 그 자체로 아름답습니다. 낯선 존재를 품고 다른 사람이 되어 보는 일 역시 예술적이기 때문이죠. 자신에게 도착한 단 하나의 목소리를 무시하거나 억압하지 않는다면, 예술적 존재가 되는 일은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 아름다움이 도착하는 순간은 진리가 자유롭게 하듯, 우리를 모든 구속으로부터 해방시킵니다.


# 진실을 깨달은 순간, 자신으로부터 사라져 가는 것을 사랑하고 남아있는 삶을 제대로 살아야겠다는 결심을 할 수밖에 없겠지요. 그 결단을 '차가운 열정'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죽음에 대해 깊이 사유했던 철학자 블라디미르장켈레비치는 우리는 오직 이러한 순간만 죽음 안에 있지만, 동시에 죽음 바깥에 있다라고 했지요. 


# 배설물을 당신을 향해 사라져 간 타자의 흔적이며, 우리가 그곳에 있었다는 유일한 기억이기도 할 것입니다. 동시에 우리에게 당신도 죽는다 라는 서늘한 진실을 마지막까지 환기하죠. 무엇보다 직접적인 냄새와 참혹하게 분쇄된 형태로 이렇게 말을 건네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날 아름답게 볼 수 있어?"라고 말이죠


# 계산할 수 없음을 향해, 자신을 재구성하라


# 단지 진정한 나를 기다리기만 하는 존재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기다림을 향한'존재로 있게 합니다. 이는 철학적으로는 기다림 안에 있으며, 동시에 바깥에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어요. 


# 먼저 품크툼은 자신의 무의식 안에 있는 깊은 상처의 흔적과 같은 것이라 생각하면 좋겠어요. -중략- 품크툼은 우리가 잘 해석되지 않는 내면의 상처를 보듬어 안을 때, 온전한 나와 만나는  고독한 순간이라 할 수 있어요. 온전하는 나는 의식만이 아니라 무의식과 함께 있는 전존재적인 것이니까요.


# 제대로 상처받는 일은 무엇보다 중요하며, 진정한 자신을 만나는 출발점이라 하겠지요. 또한 감당할 수 없는 아픔을 경험한 이후에도 계속해서 살아가는 것, 그것이 체호프가 우리에게 말하는 서늘한 위로가 아닐까요?


# 빌리는 이렇게 응답합니다 '불길이 치솟고 새처럼 날아오르는 순간은 자신도 어찌할 수 없다'고요. 이렇듯 아름다움을 품은 존재는 결코 현실에 순응할 수 없습니다. 어떠한 어려움과 고통 속에도 계속하며 차이를 생성하죠. 


# 그러나 우리는 매 순간 자신으로부터 분리되며 다시 연결되는 단속적 존재일 뿐입니다. '나는 나로부터 멀어져 가며 내가 된다'혹은'내가 아닌 것으로부터 다시 내가 된다'라는 문장으로 쓸 수 있을 거예요


# 자신의 내밀한 아픔과 마주한 시간을 통과한 주체만이, 진정 사랑할 준비가 되었다고 말할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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