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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나 May 24. 2024

행복하냐고 묻는 그대들에게


요 며칠사이, 행복하냐는 질문을 두 번이나 받았다.

정답이 없는 철학적인 질문이고, 가깝지 않은 사이에서는 할 수 없는 질문을 받아서, 감사했다.

사실 백수린 작가님께서 '행복은 옅은 슬픔'이라고 하신 말에 꽤 감명을 받았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행복'에 옅은 슬픔의 프레임을 씌우는 건  '행복'이라는 관념이 너무 감성적으로 치우치게 되는 것 같다. 


한편으로는 이제는 옅은 슬픔을 걷어 때도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나 센티멘털의 셀로판지를 눈에 대고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셀로판지 때문에 뿌옇게 보이는 세상을 보고 살기에는 당신과 나의 시간이 너무 빠르게 흐른다.

이제, 직면해야 한다.

 '감성적인'이라는 형용사의 틀에 갇혀 바로 우리 옆을 지나가는 중요한 것들을 미처 알아보지 못한다면. 그대로 놓쳐버린다면, 그건 센티멘탈이 아닌, 멜랑콜리다.


그리하여 생각해 본, 오늘의 내가 행복한 이유.


1. 딸아이가 좋아하는 유투버의 팝업 스토어 티켓팅에 성공했다. 19시에 맞춰 가열차게 접속버튼을 누르고 한 시간에 걸쳐 5000명의 대기자 명단을 뚫었다. 그리하여 추앙받는 엄마로 등극.


2. 차를 바꿨다. 가장 큰 장점은 조금 졸면서 운전할 수 있다는 점이다. 퇴근길엔 자율주행모드로 놓고 반쯤 혼수상태로 집에 간다. 그래도 목숨을 붙여 무사히 집에 데려다준다. 고맙다.


3. 춘추전국시대와 비등한 혼란의 시기를 겪었다. 꽤나 긴 몇 달이었다.

다행히 인생에서 꼭 알아야 할 많은 것들을 피부로 깨달았다. 사랑했고, 사랑하고, 사랑할, 모든 것들의 윤곽이 잡혀간다. 이제 전국시대의 내림새다. 


4. 좋아하는 커피를 언제든지 딜리버리로 마실 수 있다. 배달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쿠팡도 나의 행복에 한몫을 한다. 자리를 빌어 쿠팡에게 감사드린다. 

100원이 없어 튀김계란을 못 사 먹던 시절이 엊그제 같은데(30년 전이다 ㅎ) 주저 없이(사실 조금 주저하며) 마카롱을 사 먹는 나는 어른인 게 분명하다.


5. 내가 터놓고 말할 당신들이 내 곁에 있다. 언제든지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한사코 나를 알아봐 주는 당신이.


6. 강아지 발바닥의 꼬순내를 언제든지 맡을 수 있다.


7. 급식을 먹기 시작했다. 아사의 시간은 이제 저 멀리. 조금 먹지만 고기는 많이 먹기로 했다. 동료들의 얼굴을 더 많이 마주할 수 있게 되었다. 


8. 블루투스 스피커를 구매했다. 아이폰으로 듣기에 귀를 먹먹하게 했던 음색들이, 이젠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행복해지는 것도 연습이 필요하다. 그저 노력 없이 행복을 찾으려고 했던 지난 시간들이 다소 아쉽다. 그저 행복이 당연히 내 것이 되어야 마땅하다고 생각했던 나 자신을 돌아본다. 사실 행복은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저 누릴 뿐. 매일매일 연습해야지.


그리하여 나에게 행복해질 수 있는 질문을 던져준 두 친구에게 감사하며. 

오늘 나의 글을 우연히 마주한, 당신들의 내일도, 온전히 행복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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