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나 May 22. 2024

원래, 그렇다는 것.


내가 어른이 되어가면서 쓰지 않는 말 중의 하나이다.


난 눈물이 없는 인간인 줄 알았다. "난 원래 눈물이 없어"라고 종종 말하고 다녔다. 사실 실제로도 잘 울지 않았었던 것 같다. 그런데 웬걸. '원래' 눈물이 없을 줄 알았던 나는 근래 완전 울보가 되었다. (절대 갱년기 때문이 아님을 밝히는 바이다 ㅎ) 친구의 이야기를 듣다가도 울고, 당신들이 그리울 때도 울고, 심지어 연주회 가서도, 전시를 보다가도, 책을 읽다가도 눈물을 짓는다. '너 원래 잘 안 울었잖아'를 수습하고 다녀야 할 지경.


친구가 몇 년 전 들려준 노래가 있다. 어반자카파의 음악이었는데, 그땐 가사가 무슨 이야기하는지 통 몰라서, '나는 원래 인디음악만 들어.'라고 이야기한 적이 있다. 그 노래가 그 친구에게 의미 있는 노래라는 것을 알고 이해하려고 여러 번 노력하였는데, 대체 무슨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거야, 하고 헛짚고 넘어갔었다.

며칠 전 알고리즘에 뜬 그 노래를 다시 듣게 되었다. 아름다운 그 노래는, 너와 나의 '삶'을 다룬 노래였다.

줄줄이 알고리즘에 뜨는 노래들도, 싱어송라이터가 아니라며 내가 등한시했던 노래 들이었다. 그런데 하필 그날따라 얼마나 코가 맵던지.


또한 나는, 깨어있는 인간은 결핍과 부정성에서 비롯된다고 믿어왔었다. 하지만 그렇게 고집하던 나도 '고독'을 스스로 선택해 가는 자율적인 인간으로 변모하고 있다. 물론 많은 노력이 필요하지만 말이다. 그저 나 자신을 공허함의 프레임에 가두는 것이 아니라, 나 스스로 적당한 고독을 선택하고 남은 에너지는 파지티브한 곳으로 전환시키고 있다. 이 또한 내가'원래' 그렇다는 인간이 아니라는 반증이다.


한편으로

'원래 그렇다는 것'이 없다는 것은 불안정과 불확신 속에 당신과 내가 놓여 살아간다는 이야기이다. 변수가 많아지면 불안해지고, 오히려 득보다는 실이 많은 일이 될 수가 있다. 그럼에도 '원래 그렇다는 것'이 들어맞지 않는다는 것은 우리의 가능성을 열어둔다. 얼마든지 유연성 있게 변모할 수 있는 인간이라는 기회가 열려있는 것이다.


그리하기 때문에 그대들이여.

오늘 당장 슬프더라도 내일 행복할 수 있으며, 오늘 눈물이 많더라도, 내일은 냉정한 나로 다시 돌아올 수 있다. 오늘은 그대들이 미워하는 그 사람도 내일은 사랑할 수 있을 것이며, 오늘 이 시간 당신이 외로운 사람이라고 생각된다 하더라도 내일은 풍요로울 수 있을 것이다.


원래, 그런 것은 없기 때문에.




매거진의 이전글 때로는 멋대로 살 권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